1971년 7월 9일, 헨리 키신저 박사가 미국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비밀리에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중국과의 화해 가능성을 타진하라는 닉슨 대통령의 밀명을 받고 극비 방문한 것이다. 키신저는 이틀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회담을 가졌다.
대화는 팽팽한 긴장과 줄다리기의 연속이었다. 핵심 쟁점은 타이완 문제였지만 위기는 예상치 않는 곳에서 터졌다. 중국이 마련한 성명 초안에 담긴 "닉슨 대통령의 방중 요청을 중국이 수락한다"는 표현이 문제가 됐다. 미국과 중국 대표단은 점심식사도 거를 정도로 대립했고 협상은 깨질 위기를 맞았다.
이때 돌파구를 마련한 사람이 저우언라이다. "밥이나 먹고 합시다"라며 분위기 전환을 모색했다. 오찬에는 북경 오리구이(사진)를 비롯해 모두 12가지 요리가 나왔다. 저우언라이는 직접 키신저에게 밀전병에 오리고기를 싸주며 북경오리 먹는 법과 요리의 역사를 설명했다.
'주공토포(周公吐哺)'
주나라의 성인 주공이 갑자기 손님이 찾아오면 씹고 있던 입안의 음식까지 내뱉으며 손님을 맞이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자 주변에 인재가 모이고 민심이 그를 따르는 천하귀심(天下歸心)이 이뤄졌다. 저우언라이는 '주공토포'를 실천했던 인물이다.
저우 총리는 중국인의 특성인 '적당히(差不多)'라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손님접대도 마찬가지여서 국빈 만찬이 있을 때면 자신은 먼저 국수로 간단히 배를 채운 후 손님을 맞았다. 그리고 연회가 열리는 동안 자신은 먹는 시늉만 하면서 국빈과 대화를 나누고 손님이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챙겼다.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고 싶으면 먼저 상대방의 공감을 얻으라고 한다. 상대편과 감정적 교감이 이뤄지면 쉽게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인데 저우언라이가 키신저에게 대접한 것은 요리가 아니라 중국문화를 통한 교감이었다.
오찬 후 협상 분위기는 한껏 부드러워지면서 대립적이었던 감정이 수그러들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한 끝에 미국과 중국이 동시에 주체가 되는 역사적인 담화문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일찍이 닉슨 대통령이 중국 방문을 희망했다는 사실을 안 저우언라이 총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대표해 닉슨 대통령이 1972년 5월 이전, 적당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 닉슨 대통령은 이 초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1972년 2월 21일, 드디어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고 1979년 1월 1일, 양국은 정식으로 국교를 맺는다. 이때 막후에서 북경 오리구이가 결정적 역할을 했기에 미중 외교를 핑퐁외교, 마오타이외교, 오리외교라고 말한다.
오리외교라는 말까지 만들어 낸 북경 오리구이는 도대체 어떤 음식일까?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을 오르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고 북경오리를 먹지 못하면 평생 한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북경 오리구이는 먹는 법이 특이해서 맛의 중심이 잘 구워진 오리껍질에 있다. 살짝 기름지며 바삭하게 구운 오리껍질을 양념장과 생파, 오이와 함께 밀전병에 싸먹는다. 청나라 서태후가 특히 좋아했는데 바삭한 껍질만 먹고 고기는 아랫사람들에게 남겼다.
미국과 중국은 북경 오리구이를 매개체로 한때 전쟁에서 싸웠던 적에서 친구가 됐다. 저우언라이와 키신저, 두 사람이 먹은 것은 오리구이였지만 나눈 것은 공감이고 우정이다. 음식도 잘 먹으면 훌륭한 비즈니스 도구가 된다.
▲ 필자 소개 : 청보리 미디어 대표이며 음식 문화와 역사를 소재로 글을 쓰는 음식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에서 베이징 특파원을 지냈고 편집국 사회부장, 국제부장, 과학기술부장, 중소기업부장과 부국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