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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난을 즐기는 '수전노'

  • 2013.08.06(화) 17:05

전세는 일종의 사(私)금융이다. 세입자가 목돈인 전세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내주고 이자를 받는 대신 집의 사용가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집주인은 전세금을 밑천으로 집을 사기도 하고, 임대기간 동안 이를 융통해 금융 소득을 올린다.

 

하지만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런 구조는 흔들리고 있다. 집값이 떨어지는 마당에 전세금을 레버리지로 집을 추가로 살 이유가 없고, 이 돈을 은행에 맡겨도 수익은 미미하다. 세금이나 관리비를 빼면 오히려 손해다.

 

그래서 요즘 집주인들은 전세를 반전세, 월세로 돌리려고 한다. 전세금을 줄이고 월세를 받으면 중소형 아파트는 연 6~8%, 도시형생활주택 등 소형주택은 연 10%까지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금리 시대에 전세금을 받아 얻을 수 있던 금융 소득을 월세로 대신하려는, 집주인들의 지극히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이다. 요즘 주택 임대시장에 순수전세 물건이 줄어드는 것은 이런 이유다.

 

[서울 송파구 잠실우성아파트 일대. /이명근 기자 qwe123@]

 

반대로 세입자들이 집을 사거나 월세 내기를 마다하고 비싼 전세금을 주더라도 전세에 눌러앉으려 하는 것 역시 합리적 선택이다. 값이 떨어질 수 있는 집을 사는 것보다 원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전세가 안전하기 때문이다.

 

또 매달 월세를 내는 것보다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올려주는 게 더 경제적이다. 월세 30만원을 내는 대신 5000만원을 대출받아 전세금을 올려주면 한달 이자는 20만원 안팎이면 된다.

 

하지만 이런 갑을(甲乙)간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는 어느 한쪽도 만족스럽지 못한 '전세난'으로 번지고 있다. 전세난 속에 집주인은 집값이 더 떨어져서, 세입자는 주거비용이 늘어나서 속이 썩는다.

 

그런데 이런 전세난을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시중은행들이다. 저금리를 바탕으로 전세대출 잔고가 쑥쑥 불어나고 있어서다.

 

지난 7월 말 기준 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외환·농협 등 7개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10조5000억원에 달해 2009년 말 1조263억원의 10배가 넘게 늘어났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 /이명근 기자 qwe123@]

 

특히 전세대출은 주택금융공사(HF)나 서울보증보험 등이 대출액의 90~100%를 보증해 위험이 거의 없는 데도 금리가 주택담보대출보다 0.5~1%포인트 높게 매겨진다.

 

주금공 90% 보증 대출상품의 경우 은행별로 2.6~3.1%의 기준금리에 제각각 1.0~3.8%의 가산금리가 붙어 적용금리는 최고 6.63%(2일 기준 대구은행)까지 오른다.

 

가산금리는 대출자의 신용 등을 평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산정한 것인데 공기업이 거의 전액을 보증하는 대출에 이런 높은 가산금리를 붙이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셋값은 뛰고 서민들의 전세자금 수요도 점점 늘어간다. 물론 전세대출 금리를 낮추는 것이 전세난을 해결하는 근본 방안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은행이 가만히 앉아 버는 돈을 전세대출을 받는 세입자들의 부담을 더는 쪽으로 돌리면 전세난 곡소리는 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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