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입자 입장에서는 격년마다 전셋값을 올리는 집주인들의 인심은 참 고약하다. 집값은 떨어진 게 뻔한데 전셋값은 더 올려부치니 부아가 치민다. 그래도 평생 한 번 할까말까 한 내 집 마련을 요즘처럼 집값이 떨어지는 판에 할 수는 없다. 결국 은행 빚을 더 내 집값에 육박하는 전세금을 주고라도 셋집에 눌러 앉는다. 대출이자 부담을 지더라도 월세보다는 돈이 덜 나가니까.
#2. 돈이 급한데 집을 팔지 못해 답답한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 살 돈이 있는데도 전세만 찾는 이들이 얄밉다. 얼마간 손해를 보더라도 집을 처분하고 싶은데 사겠다는 사람은 없고 전세 달라는 사람만 많다. 전셋값은 오르지만 팔려고 내놓은 집값은 줄곧 떨어지기만 한다. 전세금을 은행에 넣어놔도 금리가 낮아 생활에 보탬이 안된다. 세입자들은 월세를 내기도 싫단다. 차라리 전세금을 더 쳐주겠다는 사람들만 많다.
◇ "전세금은 올라도 집값은 떨어지니"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전세난은 세입자는 물론 집주인에게도 달갑지 않다. 전세로 나오는 집은 한정돼 있는데 세를 살겠다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데 매매시장에서는 급매물도 소화가 되질 않아 가격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
4일 부동산114(r114.com)에 따르면 8월 첫주(2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 주보다 0.10% 올라 50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신도시와 수도권 전셋값도 각각 0.05%, 0.03% 올랐다.
서울에서는 관악(0.28%), 동대문(0.26%), 강북(0.23%), 구로·금천(0.21%), 도봉·동작·마포(0.17%), 중랑(0.15%)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KB부동산 알리지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의 아파트·단독·연립 등 주택 전세가격은 전달보다 0.52% 상승했다. 이 같은 상승률은 2011년 10월 0.86% 이후 21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직전 6월(0.2%)과 비교해도 상승폭이 부쩍 커졌다.
반면 7월 서울 주택 매매가격은 0.24% 하락했다. 6월말 취득세 감면 종료후 거래수요가 끊겨서다. 부동산114 조사에서 서울 주택 매매가격은 10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 전세자금 확대보다 '매매시장 물꼬' 절실
전세난이 깊어지면서 최근 정책금융기관인 주택금융공사(HF)는 전세금 대출 한도를 높이고 보증료율을 인하하기로 했다.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종전보다 싼 금리로, 은행으로부터 더 많이 빌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관련기사☞ 주금공, 세입자 ‘수호천사’로 나선다 2013-08-02 11:44)
하지만 이런 조치는 오히려 전세난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세 품귀 속에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기조가 전셋값 상승을 거드는 상황에서 대출 확대는 불씨가 피어오르는 전세시장에 부채질 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처럼 전세 수요를 더 부풀려 가격 앙등을 부를 수 있는 조치에 앞서 전세 수요자들이 매매시장으로 빠져나갈 길을 열어주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다가올수록 셋집을 구하지 못한 전세 수요자들이 조급해져 전셋값 상승폭은 더 커질 수 있다"며 "취득세 영구인하 시행과 소급 적용으로 매매거래 물꼬를 트는 것이 전세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근본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