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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의 '밥상머리 소통'

  • 2013.08.26(월) 13:48

대통령의 유머와 레이저

박 대통령이 오는 28일 청와대에서 10대 대기업 수장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한다. 박 대통령이 10대 재벌 총수들만 따로 만나는 것은 지난 2월 취임한 지 6개월 만에 처음이다.

 

지난 5월 미국 방문과 6월 중국 국빈 방문에서 박 대통령은 동행한 기업인들과 만나기는 했지만, 대기업 총수들과 별도로 식사자리를 갖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이 식사 자리에서 참석자들과 소통하는 '밥상머리 대화' 스타일은 대통령 되기 전과 후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박 대통령과의 '밥상머리 소통'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 긴 은둔이 가져온 '낯섬'

 

1999년 봄 당시 한나라당 초선 의원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처음으로 마주 앉아 점심 식사를 했다. 여의도 국회 앞이 아닌 건너편 동여의도쪽 증권타운에 위치한 그의 단골 한정식 식당에서였다. 20년 가까이 오랜 은둔 생활을 마치고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박 대통령이 상견례 차원에서 국회 출입 기자들과 밥을 먹는 자리였다.

 

기자 둘과 박 의원, 셋이서 한정식 '런치세트'를 함께 했던 조촐한 점심 식사. 그 당시의 정치 얘기, 과거 청와대 시절 추억, 초선 정치인의 포부 등을 2시간 가량 나눴다.

 

그런데 별 재미가 없었다. 박 대통령은 조근조근 말을 잘하는 편이었지만,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았다. 잘 웃지도 않았고 경직돼 있는 표정에 별다른 제스처도 없었다. 사람을 만나는 데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워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샤이'한 그는 기자들을 낯설어했다.


◇ 정치인 10년의 변화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9년 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한식당, 박 대통령 맞은 편에서 식사를 함께 했다. 정치인 10년,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스탠포드대에서 그의 복지관, 대북관이 농축·집약돼 있는 연설을 매우 잘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은 여유가 넘쳤다. 미국 방문과 정치 얘기를 주된 화제로 기자들과 재밌는 수다를 떠는 분위기였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유머 전담 보좌관을 뒀다는 얘기에 귀를 솔깃하며 특유의 '썰렁유머'를 다양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자신이 '제조해' 기자들에게 돌리며 폭탄주에 관한 농담도 했다. 폭탄주 맛있게 만드는 3원칙 중 마지막에서 말그대로 '빵' 터졌다.

 

"폭탄주 만들 때는 만드는 이의 정성과 소주,맥주 비율이 아주 중요해요. 하지만 술을 따르는 각도를 잘 계산해야하고요, 손에서 나오는 열과 원적외선를 얼마만큼 잔에 남기느냐가 더 중요해요. 폭탄주는 공학이에요. 나 전자공학과 나왔어요~~~"


◇ 썰렁유머와 리액션

 

사실 박 대통령도 자신의 유머가 '썰렁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내 유머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재미있어서 웃고, 썰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고 말한다.

 

유머 내용도 내용지만 박 대통령은 유머에 대한 동석자들의 반응을 신경쓴다. 참석자들이 '빵' 터지면 아이 처럼 좋아하고, 가끔은 아줌마 처럼 박수를 치며 깔깔 웃는다. 그런 그의 모습이 더 우습다는 사람도 있다.

 

박 대통령이 하는 유머는 대부분 유머 관련 책에 나오는 게 많다. 외국어 공부하듯이 유머를 외워서 구사한다고 말한다. 공부한 사람이 기대하는 건 당연히 좋은 성적이다. 유머를 구사했을 때 박 대통령은 상대방의 '리액션'을 유심히 본다.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그의 썰렁유머는 이어지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처럼 유머를 챙기는 비서관을 두지는 않았지만, 유머를 열심히 공부하는 박 대통령의 노력은 계속되는 듯 하다.

 

"한 유부남이 늘씬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자 친구가 '정신차려. 아이가 다섯이야'라고 했답니다. 그 유부남이 '저렇게 늘씬한 여자가 아이가 다섯이나 있느냐'고 놀라자, 친구는 '자네 집 아이가 다섯이잖아'고 핀잔을 줬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실장 및 해설위원실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눈에서 나오는 레이저

 

한나라당 시절 어느 오찬 간담회 자리에서 기자가 박 전 대표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표님의 대북관이 매우 보수적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세요"라고. 박 대통령은 잠시 그 기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전혀 그렇지 않은데, 왜 그런 평가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잘라 답했다.

 

이런 상황, 박 전 대표를 담당했던 기자들은 한마디로 정리한다.  "00씨, 어제 점심 먹으면서 대표 레이저 맞았다면서?"  기자들이 까칠한 질문, 불편한 질문을 하면 박 전 대표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된다는 농반진반의 얘기다.

 

레이저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썰렁유머를 구사하며 인정하기도 했다. "제 눈에서 그런게 나와요? 근데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요?"

 

취임후 6개월만에 청와대에서 갖는 10대 그룹 총수들과의 오찬. 경제민주화 입법과 상법개정안 등  재계가 안고 있는 현안은 적잖다. 하반기 경제활성화에 방점을 찍은 대통령이 어떤 주문사항을 내놓고, 무슨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을 지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통령이 점심 분위기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한 총수들은 대통령의 유머에 어떤 리액션을 보일까.  혹시 레이저를 맞는 사람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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