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개오 轉迷開悟?, 무신불입 無信不立?”
“아니, 그 정도로는 안되지.”
“그럼, 주마가편 走馬加鞭? 아니면 선우후락 先憂後樂 이요?”
“글쎄… 찾았다, 집사광익 集思廣益은 어떨까?”
홍보실 박부장과 홍과장은 올해도 변함 없이 두 주째 연말 야근이다. 사장님의 신년사 준비 때문이다. 겨우 원고지 열 댓 장짜리 신년사 작성에 뭐 그리 용쓰냐고 묻는다면 참으로 야속하다. 간단히 전달 받은 5장짜리 내년도 사업계획서만으로 어떻게 훌륭한 신년사가 나올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해하기 쉽고 간략하게 정리해서 매끄러운 문장으로 뽑아내야 한다는데. 12월 초부터 머리에 쥐날 만큼 쓰고 지우고 고치기를 거듭해 초안을 올려드렸다.
문제는 김전무였다. “사장님, 요즘은 신년사를 사자성어로 마무리하는 게 대세랍니다. 자네들은 신년사에 쓸 만한 멋진 사자성어 좀 찾아보고.” 그렇게 예상치 못한 야근이 더 해졌다.
“죄송합니다….먼저… 나가겠습니다. … 오늘도 늦으십니까?”
“대세 형 신년사 쓰느라…. 근사한 사자성어 찾는 중. 도움 안 되는 비 한문세대는 그만 가라. ”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공모전에서 인턴으로, 인턴기간 중에 특채 된 홍보실 막내가 미안한 표정으로 퇴근한다.
며칠 간 고른 사자성어로 잘 마무리 된 신년사를 올려드리고 무사히 한 해를 마무리 한 홍보실.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신년회.
「임직원 여러분,
다시 한번 여러분과 새해를 맞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 회사는 올해로 열 다섯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생각이 많아지고 감정이 복잡해지는, 요샛말로 무섭다고 소문난 중2가 된 셈입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좌중과 달리 박부장과 홍과장의 얼굴은 하얗게 되기 시작한다.
“부장님, 혹시 신년사 앞부분 고치셨습니까? “
“아니. 우리가 올려 드린 게 아닌데…. “
「임직원 여러분 가운데 해마다 신년사를 제대로 들으셨던 분이라면 올해 제 신년사가 달라진 것을 벌써 눈치채셨을 겁니다. 작년 연말, 저는 홍보실 한 신입직원으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사업계획에 초점을 둔 진지한 신년사도 좋지만 솔직한 제 마음과 생각을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직원들의 각오나 생각도 들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직원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은 홍보실 막내가 어찌할 줄 모른다.
「올해 우리 회사의 목표는 열린 소통입니다. 통해야 목표도 달성하고 매출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사장과 임직원이 가슴과 머리를 주고 받는, 통하는 회사가 되어야 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 남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동의 하시면 박수 주십시오.」
박부장과 홍과장도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친다. 그렇게 모처럼 들어 보는 따뜻한, 살아있는 신년사가 십 여분 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끝으로 비 한문세대인 우리 젊은 직원들, 사자성어 모른다고 싫어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공부하십시오. 짧게 함축적인 의미를 담는 데에는 최고입니다.
이제 2014년 저의 각오와 의지에 우리 임직원 여러분이 응답하실 차례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새해 사력을 다해 달려봅시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연단을 내려오는 사장님이 달라 보인다. 거침 없이 자기 의견을 전하는 신입사원과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주저 없이 행동에 옮기는 사장.
‘그래 가는 거다, 이대로 쭈욱. 우리 회사 참 괜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