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텐과 무신사가 유니클로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불황형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 유니클로가 '나 홀로 독주'를 이어갔던 SPA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지키려는 자
유니클로는 올해 국내에서 1조원대 매출을 거둬들일 전망이다.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던 2019년 이후 5년 만의 '1조 클럽' 재진입이다. 이는 지난해부터 유니클로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시선이 우호적으로 바뀐 영향이 크다. 엔저(엔화 약세) 현상에 따라 일본을 찾는 내국인 수요 증가로 현지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것이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는 국내 유니클로 매장에서의 재구매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곧 유니클로의 실적 반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작년 회계연도(2022년 9월~2023년 8월) 기준 국내 유니클로 운영사 에프알엘코리아의 매출은 921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30.9%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413억원으로 23.1% 성장했다.
올해부터는 매장 출점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되찾은 인기에 힘입어 한국 소비자와의 접점을 더욱 확대하겠단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 유니클로가 운영하는 국내 매장은 총 133곳으로, 지난해(127개) 대비 6개 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지난 9월 롯데월드몰점과 동대문점을 오픈했다. 이후 지난달에는 일산 덕이점, 롯데몰 광교점, 스타필드마켓 죽전점, 홈플러스 상봉점 등 4개의 매장문을 잇달아 열었다. '노(NO) 재팬' 영향과 코로나19 여파로 줄줄이 폐점을 단행했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질 수 없다
다만 유니클로가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진 미지수다. 그간 SPA 시장에선 유니클로를 견제할 만한 경쟁상대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 탑텐과 무신사가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짠물 소비' 흐름으로 저렴한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브랜드 간 파이 나누기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곳은 신성통상이 운영하는 탑텐이다. 한때 탑텐은 유니클로를 제치고 2년 연속 SPA 브랜드 1위 자리에 오르며 입지를 공고히 했다. 탑텐은 올해 유니클로와 함께 매출 1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탑텐이 '조 단위' 매출 달성에 성공한다면 국내 토종 브랜드 가운데 최초가 된다. 지난해 매출은 약 9000억원이다.
SPA 시장 내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무신사 스탠다드는 올해 오프라인에서만 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무신사 스탠다드가 향후 무신사의 외형 확대에 기여하는 바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소비 주축인 젊은 세대를 주요 고객층으로 두고 있어서다.
특히 이들 사이에서 무신사 스탠다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무신사가 지난달 오픈서베이에 의뢰해 20대 남녀 소비자 800명을 대상으로 SPA 브랜드 선호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무신사 스탠다드가 48.1%로 1위를 차지했다.같은 듯 다른 전략
탑텐과 무신사 스탠다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유니클로와 차별성을 둔 전략에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 힘을 쏟고 있다는 공통점 속에서도 탑텐은 '초저가', 무신사 스탠다드는 '온라인 결합'에 초점을 맞췄다.
탑텐은 다점포 전략을 통해 이미 상당수의 고객 수요를 선점한 상태다. 탑텐의 전국 매장 수는 유니클로의 4배를 훌쩍 넘어선 575개다. 여기에 상품 기획부터 생산과 유통, 판매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 가격을 최대한으로 낮추면서도 품질은 높였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을 가진 상품을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락인' 효과를 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자사의 강점인 온라인 채널을 오프라인과 연계한 전략을 구사했다. 일례로 무신사 스탠다드는 오후 7시까지 온라인 스토어에서 상품을 주문하면 당일 매장 수령이 가능한 'O4O(Online for Offline)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매장 영업시간 이후에는 외부에 설치된 '픽업라커'를 통해 상품을 받아볼 수도 있다. 이 같은 서비스를 더 많은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연말까지 2개 매장 추가 출점도 계획 중이다. 현재 무신사 스탠다드 점포 수는 18개다.
업계는 물가에 대한 부담이 계속되고 있어 무엇보다도 가격 인상 폭이 크지 않은 브랜드가 인기를 끌 것으로 내다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의류와 신발 소비자물가지수는 114.79(2020년=100)로 전년 동월보다 2.2%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 니즈와 스타일, 트렌드를 발 빠르게 캐치해 신상품으로 선보일 수 있다는 것과 한국인 체형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국내 브랜드의 강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