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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 의견 내면 출입금지"..눈치보는 애널리스트(續)

  • 2014.02.06(목) 16:21

한파가 몰아친 입춘(立春) 즈음 한 애널리스트를 만났다. 업력이 10년이 넘는 그는 작심한 듯 말했다. 질문 하나 던지면, 평소 쌓였던 생각들이 툭하고 쏟아졌다.

질문. 왜 애널리스트는 ‘매도’(SELL) 투자의견을 내지 않는가?

“매도 의견이 담긴 투자보고서를 쓰면 난리가 난다. 개인투자자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밤길 조심해라, 집 주소와 전화번호도 알고 있다 등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기업은 자신의 회사에 매도 보고서를 낸 애널리스트에게 기업탐방을 오지 못하게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한다.” (☞
눈치 보는 애널리스트..땅에 떨어진 가치)

 

지난해 2만5000개가 넘는 보고서 중 ‘매도’ 보고서는 단 2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부분이 매수(BUY)와 중립(Neutral)이다.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사라’고 권하는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투자자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 센터장은 “매수 일관 투자의견과 뻥튀기 실적 전망 탓에 애널리스트의 신뢰는 땅에 추락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2014년 전망' 이틀만에 빗나갔다)

 

 

질문. 최근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삼성전자 실적 전망을 둔 자존심 경쟁에서 외국계 증권사에게 완패했다. 실력 차인가?

“국내 애널리스트는 기업들의 부정적 실적 전망치를 직접적으로 보고서에 잘 쓰지 못한다. 특히나 삼성전자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대신 우회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 삼성전자에 대한 경고는 2012년 말부터 국내 애널리스트가 줄곧 제기해왔다. 다만 숫자로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 작년 중순 한 외국계 증권사가 삼성전자 실적 전망치를 숫자로 쓰면서 파장이 커졌다.”

작년 6월 “갤럭시S4 모멘텀이 약화됐다”는 JP모건 보고서 한 장에 삼성전자 주가가 6.18% 폭락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15조원이 증발했다.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한달 뒤인 7월 삼성전자가 발표한 2분기 실적은 국내 애널리스트의 장밋빛 전망(10조원)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다. 2분기 영업이익은 9조5000억원으로 외국계 증권사 전망치에 근접했다. (☞삼성전자 14조 증발 외국계 보고서 잔혹사)

올해 초에도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삼성전자 실적 전망치는 빗나갔다. 9조원대를 전망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4분기 영업이익은 8조3000억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는 이번에도 8조원대 영업이익을 전망하며, 국내 애널리스트 자존심을 구겼다.(☞삼성전자 실적전망..이번에도 외국계 勝)

“요즘은 CJ E&M사건 때문에 분위기가 더 안 좋다. 옆에 동료가 조사를 받으니, 나도 뭐 잘 못한 것이 없는지 몇 달 간의 메신저 기록을 찾아봤다. 그러니 요즘 기자나 투자자에게 전화가 오면 ‘보고서 참고해라, 그 이상 할 말 없다’고 끊는다. 업계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없는 관료들이 망치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CJ E&M 담당 애널리스트를 줄줄이 불러 조사했다. 회사 측이 예상보다 부진했던 3분기 실적을 애널리스트에게 귀띔했고, 이 미공개 정보를 애널리스트들로부터 전해 들은 펀드매니저는 주식을 미리 팔았다는 것이다. 기업-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간의 관행이 ‘실적 유출 의혹’으로 번지면서 애널리스트들은 움츠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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