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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병사의 요리책

  • 2014.02.21(금) 08:33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가 요리책을 챙겨서 가져갔다. 병사의 정신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월남 스키부대 출신도 아니고 죽을 지 살지 모르는 전쟁터에 요리책이라니...” 군기가 확실하게 빠졌다고 얼차려를 주어야 할까?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싸움터에서 제한된 전투식량이나마 요리책을 보고 맛있게 조리해 먹으며 사기를 드높여 용감하게 싸우라고 격려를 해주는 것이 옳을까?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6년, 정글의 진지에 매복 중이던 미군 병사들에게 소포가 배달됐다. 고향에 계신 부모형제, 아내와 애인이 부친 것인데 소포 상자 속에는 요리책이 한 권씩 들어 있었다. 

 

전장에 나가있는 병사들에게 왜 고국의 부모형제들이 단체로 요리책을 보냈을까 싶지만 요리책이 보통 요리책이 아니었다. 야전의 전투식량을 이용해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C-레이션 요리책』이었다. 

 

다양한 요리법이 적혀 있는데 예를 들어 야전용 생일 케이크 만드는 법도 나온다. 미군들에게 전투식량으로 지급되는 파운드케이크와 초콜릿, 그리고 우유를 이용해 고향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한 초콜릿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병사가 생일을 맞았을 때 차가운 깡통으로 쓸쓸하게 식사를 하는 것보다, 아니면 초코파이에다 성냥개비 꽂아 놓고 전우들의 생일축하를 받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있는 야전용 음식을 잘 활용해 그럴듯한 초콜릿 생일케이크를 먹으며 전우들과 나름의 생일파티를 한다면 사기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요리책이 들어 있는 소포 상자 속에는 별도로 방수포장된 핫소스도 한 병도 들어있었다.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 뿌리 먹는 타바스코라는 상표의 핫소스다.

 

사실 소포는 고향에서 보내 온 것이지만 C-레이션 요리책을 포함한 대부분의 내용물은 핫소스인 타바스코 제조회사, 매킬레니 식품에서 만든 것들이었다. 회사에서 군에 납품해 직접 나누어 줘도 될 것을 굳이 고향의 부모형제와 아내 애인을 통해 보낸 이유는 고향의 맛을 느껴보라는 의도였다.

 

매킬레니 식품에서 펼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지만 따지고 보면 제품을 더 팔겠다는 마케팅 차원의 이익 추구만도 아니었다. C-레이션 요리책 보내기 운동은 맥킬레니 식품 회장으로 예비역 해병 준장 출신이었던 월터 S. 매킬레니의 아이디어였다.

 

매킬레니 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악명 높았던 과달카날 전투 참전용사였는데 이때 전쟁터에서는 맛있는 음식 하나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장병들의 사기를 높여 준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고 한다. 당시의 경험을 살려 베트남 전쟁 때 병사들에게 요리책 보내기 캠페인을 펼쳤고 실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병사들은 이 요리책을 이용해 전투식량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베트남에 C-레이션 요리책이 전달된 지 약 25년이 지난 1991년, 아랍 주둔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노만 슈와르츠코프 장군이 맥킬레니 회사로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사막의 폭풍 작전 때, 모래폭풍 속에서 야전 전투식량만을 먹어 질린 병사들이 매운 고추 소스 덕분에 입맛을 되찾고 이로인해 사기가 올랐다는 내용이다.

 

이때부터 미군의 전투식량인 MRE에는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핫소스인 타바스코는 포함돼 있다. 전쟁터와 요리책,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작은 배려가 가장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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