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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의 아마추어리즘

  • 2016.01.25(월) 18:14

[Watchers' Insight] 청사진 없이 소송만

 

신동주(사진)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아마추어 행보가 구설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가 지난해 10월 SDJ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동생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압박하기 시작한 때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처음엔 동생인 신동빈 회장을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뜻을 저버린 패륜아로 몰더니(10월8일) 어느 순간 동생도 이용당했을 뿐이라며 쓰쿠다 등 일본 롯데홀딩스 전문경영인을 상대로 칼을 겨눕니다(11월12일). 그러고는 "1주일 안에 아버지와 자신을 원상복귀 시키라"며 신동빈 회장에게 최후통첩 같은 얘기를 던집니다(11월17일).

◇말뿐인 최후통첩


그 뿐이었습니다. 거대한 폭탄을 터뜨릴 것 같던 기세는 사그라들고 어느 순간 가십성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데 열중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롯데월드타워 공사현장을 찾았는데 롯데측이 이를 막았고(12월1일), 신격호 총괄회장이 조치훈 9단과 바둑을 뒀다(12월8일)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롯데의 경영권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아버지가 건재하다는 사실은 앞서 신동주 회장이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을 언론에 공개하며(10월16일) 기자들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눈뜨고 당한 신동주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건재함이 아니라 신동주 회장 자신이 한·일 롯데를 아우르는 경영능력을 갖췄느냐 입니다. 동생이 주도한 중국사업에 문제가 있다면, 나라면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겠다는 식의 청사진이 있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신동주 회장은 '동생과 싸움에서 밀려난 형' 이상의 각인을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참모들입니다. 지난달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를 동원해 한국 롯데제과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진행했습니다(12월9일). 공개매수 기간 중에는 신동주 회장 등 특수관계인은 장내외에서 주식을 사들이는 게 금지되는데요. SDJ측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동해 롯데월드타워에서 경찰을 부르는 '촌극'을 연출할 때 동생인 신동빈 회장은 신동주 회장의 손발을 묶는 작업을 준비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신동주 회장은 눈뜨고 당한 셈이죠.

 

◇손발 안맞는 참모진

신동주 회장의 참모진은 과거 산업은행장을 지냈던 민유성 회장과 민 회장의 지인들로 구성돼있습니다. 이들은 내부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신동주 회장은 롯데면세점 재승인 심사(11월14일)를 코앞에 둔 시점에 일본에서 새로운 소송 사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엽니다(11월12일). 동생은 형제간 다툼으로 싸늘해진 여론을 되돌리기 위해 "롯데면세점을 면세점업계의 삼성전자로 키우겠다"며 동분서주하는데 형은 "법대로 하자"며 일본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자회견을 하더라도 언제, 무슨 주제로 할지 등을 조율했어야 하지만 신동주 회장 주변에는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SDJ측 관계자는 "원래 면세점 심사는 그 전에 끝나는 것 아니었냐"며 엉뚱한 대답을 하더군요.

 

◇아흔아홉을 놓치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SDJ측의 어설픈 대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날(1월25일) SDJ코퍼레이션은 호텔롯데에 대한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자료가 배포되기 20여분 전 모 언론이 '단독'이라는 컷을 달고 기사를 이미 게재한 뒤였죠. 이른바 '물먹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언론사 속성상 '신동주의 재뿌리기', '딴지', '발목잡기'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릅니다. 어느 한 곳만 생각하다가 아흔 아홉명을 적으로 돌린 결과라고 할까요.

지금 돌이켜보면 신동주 회장이 지난 10월 언론사 수십곳을 찾아다니는 읍소 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태생적 한계


SDJ측의 아마추어 행태는 예견된 결과일수도 있습니다. 동생인 신동빈 회장 쪽에는 수십년간 롯데에 몸담으며 자신의 젊음과 꿈을 불사른 참모들이 포진해있습니다. 좌장격인 이인원 부회장만 하더라도 롯데에서 40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경영권 분쟁이 터지자 부랴부랴 참모들을 끌어모은 신동주 회장과는 인적구성 자체가 다릅니다.

 

신동주 회장의 참모들은 '롯데가 아니어도 살 수 있는', '롯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의 조합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두드러진다고 할까요?

 

◇전염되는 아마추어리즘

한가지 재미있는 건 상대방(신동주)이 허술한 모습을 보이자 신동빈 회장쪽도 은연중 초심과 거리두는 모습이 감지된다는 점입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8월 대국민 사과를 통해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제고를 약속했는데요. 그 일환으로 호텔롯데를 상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최근 호텔롯데가 국내 상장시 제값을 받지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그렇다면 해외에서 상장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얘기가 돌았던 모양입니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를 한국기업이라고 했는데요. 설마 투명성은 싱가포르 등 해외투자자들에게 보여줄 생각은 아니겠죠? 현재 롯데는 "호텔롯데의 해외 상장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만약 신동주 회장이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투명성 문제에 대해 동생과 날카롭게 각을 세웠더라면 어땠을까요? 롯데가 해외에서 상장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나 있었을까요? 동생만을 탓하는 신동주 회장과 그 참모들의 어설픈 시도들이 그 자신과 롯데를 동시에 아마추어리즘으로 빠져들게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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