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을 지내고 은퇴한 정근철(가명, 62) 씨는 보유하고 있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84.4㎡ 2가구를 지난 3~4월 모두 팔았다. 은마는 대표적인 강남 재건축 추진 아파트. 정 씨가 7년전 이 아파트를 살 때 들인 돈은 각각 9억5000만원, 10억원이었다. 이번에 판 가격은 둘다 11억원 남짓이다. 김 씨는 이 집을 판 돈으로 동작구 인근 24억원 짜리 3층짜리 상가건물을 사기로 했다.
인근 단지가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가를 매기면서 지난 3~4월 강남 재건축 추진단지의 거래는 크게 늘었다. 이후 가격이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집을 처분한 이들은 "오히려 속이 편하다"고 한다는 게 주변 얘기다. 왜 일까? 최근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내려놓은 이들의 움직임을 들여다봤다.
◇ 재건축 장기보유자, 전고점 넘자 처분
단지 내 M공인 관계자는 "작년 봄에는 재건축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에 매수자들이 몰리며 거래가 이뤄진 반면, 지난달에는 이젠 팔 때가 됐다고 본 매도자들이 물건을 내놓으면서 거래가 많이 성사됐다"고 전했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대가 종전 최고가를 넘어서면서 '오를 만큼 올랐다'고 판단한 장기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의 전언이다. 실거래가격이 작년 초에 비해 2억원 가까이 오르면서 전고점을 넘어서자 "이제 손실은 피했다"고 본 재건축 장기 보유자들이 내놓은 것이다.
한 시중은행 강남구 소재 지점 프라이빗뱅킹(PB)센터장은 "주식시장에서 전고점 근처에서 거래량이 터지며 손바꿈이 많이 일어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최근 재건축을 내던진 이들 중 상당수는 가격 변동이 심했던 2007~2009년께 비교적 높은 가격에 매입했던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 증여나 수익형 부동산 갈아타기 많아
▲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일부 재건축 보유자들은 인근 단지의 고분양가로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자녀에게 증여한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값이 더 오르기 전에 보유 자산을 조정해 세금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한국감정원 집계를 보면 강남 3구의 지난 1~5월 아파트 매매거래 대비 증여거래 비율은 16.6%에 이른다. 이는 전국 평균 5.3%, 서울 평균 4.1%에 비해 크게 높은 것이다.
서초구의 경우 매매 1733건 가운데 증여는 364건으로 매매-증여 비율이 21%로 나타났고, 송파구는 매매와 증여가 각 2202건, 398건으로 18.1%, 강남구는 각각 2432건, 280건으로 11.5%로 집계됐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부동산 거래 추이를 보면 비교적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가 큰 시기에 증여가 많이 나타난다"며 "강남 3구 역시 재건축 가격 급등세와 맞물려 증여가 많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삽화/유상연 기자 prtsy201@ |
고가의 재건축을 처분한 이들은 고정적인 월세수입을 받을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는 게 대세다. 저금리 시대에 주택 매매차익에 대한 불확실성을 내려놓고 임대사업에서의 안정적인 수입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초동 소재 한 증권사 PB팀장은 "재건축이나 대형아파트 등을 팔고 월세를 놓을 수 있는 다가구·다세대주택 이나 오피스텔 등에 투자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20억원 이상 자산가들은 리모델링으로 가치를 높여 연 6~7%의 월세 수입을 챙길 수 있는 소형 상가건물을 찾는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