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잇단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은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눈치보기에 한창이다. 실수요자나 투자자, 매수자와 매도자 모두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에 대한 진단과 향후 시장 전망, 그 속에서 시장참여자들의 전략을 부동산 고수들에게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정부가 시장을 어르고 달랬다. 9.13 대책을 통해서는 대출 장벽을 높이고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면서 투기 수요에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동시에 '9.21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하면서 시장이 줄기차게 강조했던 수도권 주택 추가공급 목소리도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과열됐던 집값은 다소 잠잠해졌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 생각도 다르지 않다.
김규정 연구위원은 중‧단기적 관점에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시장 흐름을 바꿀 변수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인상과 정부가 발표할 주택 추가공급 대책 등이 그것이다. 이들에 따라 집값은 안정세를 유지할 수도 이전처럼 다시 급등할 수도 있다.
김규정 연구위원을 만나 현재 시장 상황과 향후 전망,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입 전략 등 구체적인 생각을 들어봤다.
▲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정부 대책 발표후 현재 시장 상황 평가는
▲가격 상승세는 일단 잡힌 것으로 본다. 9.13대책 내용을 보면 유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가 만만치 않다. 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기준금리 인상 이슈가 확대되는 등 금융환경 변화로 전체적인 주택수요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대책이 발표될 즈음에는 시장 자체적으로도 가격이 너무 비이성적으로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던 시기였다. 급등한 집값에 대한 부담도 커졌기 때문에 매수자들의 관망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다만 정책 효과나 시장 안정세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확신이 어렵다. 지난해 8.2 대책 발표 후에도 1~2개월 정도 안정세를 보이다 이내 과열이 시작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시장에는 유동성 자금이 많고 부동산 외에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시장을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 주택 공급정책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 30만가구 공급계획이 발표됐는데 이중 20만가구 정도가 10년 이내에 공급된다고 가정해보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택지조성에 따른 개발 이슈와 인프라 조성 등은 집값 강보합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주택 공급이 풀리기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주택 수요를 분산시켜 시장 안정세를 이끌 것으로 본다.
이번 공급대책은 단계적인 입지 발표 일정 등 기존 계획 지연만 아니라면 오히려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어디에 어떻게, 누구에게 주력으로 공급할 것인가 등이 정해지지 않았고, 대략적인 내용만 발표된 상황이라 향후 시장에서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 특히 서울은 구체적인 입지가 공개되지 않았는데
▲ 어떤 입지에서 어떤 형태(임대 혹은 분양)로 주택이 공급될지 알 수 없다는 게 변수다.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달리 도심내 유휴부지 활용과 용적률 등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인데 서울 외곽 그린벨트를 활용한 택지조성보다는 이 방법이 더 나은 것으로 본다.
다만 서울시가 추진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시장 반발이 많고, 도심내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면 사업 수익성이 낮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택지 조성에 따른 토지보상이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 지역에 따라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다만 토지보상 진행 속도나 전체 규모로 보면 아주 큰 편은 아니라서 영향 자체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이같은 자금들이 수도권에 몰려있다는 점, 수도권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양극화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부분은 유의해야 한다.
과거에도 수도권 공급계획이 발표된 후 해당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 토지보상에 따른 자금 유입으로 집값이 오르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주택 공급이 본격화되면서 집값은 다시 안정세로 가는 패턴을 보였다. 참여정부 시절에도 위례신도시나 판교에서 주택 공급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상승세가 멈춘 바가 있다.
- 서울 주택공급 방안으로 재건축‧재개발도 있는데
▲ 현 시점에서 정부가 재건축 관련 규제를 풀어 시장을 활성화하기는 어렵다. 겨우 집값을 안정시켰는데 재건축을 풀면 시장이 또 다시 요동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건축 규제를 통해 마냥 사업을 지연시킬 수는 없다. 서울에는 1970~80년대 지어진 아파트가 많은 까닭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건축 이슈가 시장에 미칠 영향이 최소화되는 시점을 찾아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함께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개발이익 환수에 대한 조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전부터 재건축이 문제가 된 것은 정권마다 재건축 사업을 경기 부양 도구로 삼은 탓이다. 시장 침체기에는 규제를 풀어 재건축을 활성화하고, 과열되면 다시 조이는 현상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재건축 단지가 투자 상품화된 것이다.
재건축이 시장의 변수가 아닌 주택 공급 방안이 되려면 재건축에 대한 인식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 '3기 신도시'에 대해 2기 신도시 등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데
▲ 중‧장기적으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김포 한강신도시의 경우 베드타운이기는 하지만 최근 이 지역으로 이사 간 사람들을 보면 신혼부부나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가 많다. 서울 출퇴근이 가능하고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아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3기 신도시 개발 이슈로 중간 중간 가격이 떨어지는 부침을 겪을 수는 있지만 유입된 인구가 많고 소비력 있는 젊은 직장인이 다수라는 점에서 자족할 수 있는 도시로 형성됐다. 이런 이유로 추가 조성되는 택지와 관계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서울 집값의 지속적인 상승 원인은 무엇인가
▲ 먼저 수도권 주택시장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오랜 시간 떨어졌다가 반등하고 있는데 반등이 생각보다 강력하고 길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나 시장 참여자 등도 자금 유동성과 소비력을 갖춘 수요층을 안일하게 봤던 것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시장 자체에 돈이 많이 풀린 상태고, 금리가 낮아 부동산만큼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시장이 없었다.
앞으로도 다르지 않다. 글로벌 경제는 미국 시장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버텼는데 지금은 미국 시장도 예측이 힘들다. 최근 금리가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그 동안 국내 경제를 이끌었던 주력 산업 경기는 계속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할 곳은 부동산 외에 딱히 없는 게 현실이다.
- 그렇다면 부동산 시장을 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하나
▲부동산 자산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이전보다 더 커졌다. 적어도 손실은 나지 않고, 잘하면 대박 날 수 있다는 투자형 자산으로써의 인식이 강해졌다.
현 정부는 부동산을 투자(투기)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각종 규제를 쏟아내고 있지만 투자 트렌드나 자산 운용 전략이 정부 정책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의 인식이 바뀌었다면 부동산 시장에서도 투자용으로 운영되는 상품시장, 그외 시장으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똘똘한 한 채' 현상은 어떻게 보는지
▲ 똘똘한 한 채 현상보다 먼저 나온 것이 양극화 현상이다. 지방은 재정과 SOC(사회기반시설) 투자가 많으면서 2010년 이후 시장이 좋았는데 최근에는 망가진 상태다. 무엇보다 조선과 자동차 등 지역 기초 산업이 악화되거나 망가진 반면 미래산업 발굴은 하지 못한 상태라 개선 여지가 없다.
이를 감안하면 인구와 돈이 몰리는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은 피하기 힘들 것이다. 이에 따라 부동산에 대한 투자도 수도권 위주로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그 안에서도 늘어나는 세금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부동산 자산 선호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똘똘한 한 채처럼 주택이 아니어도 입지와 개발 가능성 등 미래 성장성이 높은 지역 부동산으로 돈이 몰릴 것이다.
- 지방 부동산 전망과 회생 방법은
▲ 지방 경제 버팀목이던 기존 2‧3차 산업으로는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수도권과 지방 부동산 양극화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묘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가 늘고 주택 구매력이 생겨야 하는데 지방은 실물 경제가 무너졌다.
정부가 주요 기관들의 지방 이전 등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꾀하고, 지방 주택공급 조절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방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 전체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 연이어 굵직한 정책이 발표됐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정부 정책 목표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집값을 떨어뜨리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집값은 안정화하면서 서민을 대상으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인지, 혹은 공급 대상이 중산층인지 등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어떤 계층에게 어떤 방법으로 주택을 공급해 결과를 이끌어 내겠다는 구체적 내용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시장의 동의도 필요하다. 이번 대책을 두고도 질타를 받은 것은 정책 목표가 불확실해서다.
정책 목표를 명확히 하고 시장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 세부적인 사항은 정부와 시장간 소통, 협조를 통해 맞춰나가면 될 것으로 본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 남아있는 시장의 변수는, 그에 따른 내년 전망은
▲ 이미 시장에 반영됐을 수도 있지만 금리가 가장 큰 변수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 금리가 오르면 중산층 이하에서는 주택 수요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에도 현 추세의 가격 안정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와 함께 정부의 공급정책도 민감한 이슈다. (국토부는 9.21 발표 이후 연내 1회, 내년 상반기까지 택지개발 입지와 구체적인 공급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명확한 목표(주택 가격, 공급 대상 등)을 설정해 공급계획을 발표한다면 불안 심리로 집을 사려고 했던 사람들이 대기수요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값의 하향 안정세가 지속될 수 있다.
-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실수요자들에게 조언한다면
▲ 서울은 계속해서 수요층이 몰리고 있는 만큼 집값이 급락할 수 있는 변수가 많지 않다. 때문에 집을 사려고 하는 경우 구매자에게 유리한 시기가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자금 마련이 가능한지 여부가 중요하다.
서울은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이 많아 대출 장벽이 높다. 이를 고려해 집을 살 수 있는 여력만 된다면 서울에 있는 주택은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볼 수 있다. 서울에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라면 시기를 최대한 빨리 하는 것이 좋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은 3기 신도시 입지 발표 등의 영향으로 일시적인 가격 하락 시기가 올 수도 있다. 또 2025년까지 분양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면 조금 기다려도 될 것 같다. 다만 정부의 공급대책이 예상과 달리 기대 이하일 경우 수도권도 서울 집값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