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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수주 빛볼까]①말로는 늘 '클린수주'

  • 2020.02.18(화) 15:52

클린수주 강조해도 현실은 혼탁한 수주경쟁 반복
주택 의존도 커져…대형 사업장 건설사 자존심대결로
"여전히 처벌 약하고, 사례도 없어 정착 걸림돌"

'클린수주'가 주택정비업계 화두로 떠올랐다. 한남3구역 재개발 시공사 선정 과정에 참여한 건설사들이 클린수주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정부 규제와 건설사들의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공사가 되기 위한 입찰 과정은 여전히 혼탁하다. 그동안 클린수주가 자리 잡지 못했던 이유와 클린수주가 부각되면서 수주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실제 클린수주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최근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건설사의 과잉영업 등의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고 그 후진성을 지적 받고 있는 점에 대해, 업계의 일원으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GS건설)

"깨끗한 경쟁, 선의의 경쟁,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내 재건축 수주전에 새로운 모범을 제시하기 위한 결의를 다진다"(현대건설)

반성문은 '겉치레'일 뿐이었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은 2년여 전 반포주공1단지 수주전에서 진흙탕 싸움을 펼친 것을 두고 반성의 의미와 새롭게 변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자료를 각각 발표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GS건설은 한남3구역 재개발 수주전에서 이 회사가 고용한 홍보대행업체 직원(OS 요원)이 특정 조합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에 GS건설은 서둘러 '클린수주'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경쟁자인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역시 개별 홍보를 취소하며 클린수주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행태는 비단 한남3구역 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 규제와 업계 스스로 자정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갈수록 주택사업 먹거리가 부족해지고, 대형 사업장일수록 각 건설사들의 자존심 대결 양상이 펼쳐지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건설사들이 외치는 클린수주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린다.

◇ 반복되는 진흙탕 싸움

2017년 9월 펼쳐진 반포주공1단지(공사비 2조7000억원) 재건축 시공사 선정 과정은 건설업계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이 맞붙은 가운데 양사는 무상 특화 공사비와 후분양제 도입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고, 서로를 향한 비방전도 불사했다.

특히 현대건설이 무상으로 이사비를 제공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됐다. 당시 GS건설은 수주전을 흐리는 법 위반사항이라며 공격했고, 양측은 대형 로펌을 앞세워 법 해석 대리전까지 펼쳤다. 이 논란은 국토교통부가 나서 '무상 이사비 지급은 금품 제공에 해당할 수 있다'며 조건을 시정하도록 하면서 일단락 됐다.

진흙탕 싸움 끝에 현대건설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업계의 곱지 않은 시선은 물론이고, 국토부가 반포주공1단지를 포함한 정비사업 수주전이 과열되자 합동 점검반을 구성해 정비사업 시공자 입찰 내용 적정성 등을 점검했다.

무상 이주비로 논란을 일으켰던 현대건설은 이외에도 최대 5000억원 수준의 무상 품목(특화)을 유상으로 중복설계 한 점도 드러났다. 이렇게 되면 향후 조합원 부담금이 늘거나 분쟁으로 연결될 소지가 크다. 이를 포함해 5개 재건축 조합에서 76개의 부정사례가 적발됐다.

반포주공1단지 시공사 선정 투표장에서 건설사 직원들이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진흙탕 싸움은 공사비만 약 1조9000억원에 달하는 한남3구역 수주전에서 재현됐다.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과 GS건설, 대림산업은 이 지역을 초호화 단지로 만든다는 계획 아래 과도한 특화설계를 제안했고, 최저 이주비 보장과 통상 분양단지보다 훨씬 비싼 일반분양가를 보장하는 내용 등을 제시했다.

국토부는 이례적으로 시공사 선정 전 3개 건설사에 대해 입찰 무효와 재입찰 시정권고를 내리기도 했다. 다만 검찰 수사 결과 입찰 제안 내용이 불기소되면서 3곳의 건설사에 다시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이 맞붙은 또 다른 사업장인 한남하이츠 재건축 수주전(GS건설 수주)에서는 사업촉진비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GS건설 OS요원이 특정 조합원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한남3구역)이 불거졌다. GS건설이 서둘러 '클린수주'를 선언하고, 경쟁사들도 OS요원 철수 등을 선언했지만 반복되는 수주 비리에 건설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 규제 강화에도 혼탁한 수주전…왜?

정부는 수주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했다. 2018년에는 주택법 개정을 통해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금품‧향응 등을 제공한 경우 시공권을 박탈하는 등 행정 처분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해에는 삼진 아웃제를 도입, 수주비리를 반복한 업체는 지역 등을 막론하고 앞으로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럼에도 수주비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클린수주를 내세웠던 삼성물산은 지난 몇 년간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재건축 수주전은 주로 OS를 활용한 영업이나 과도한 제안 등을 통해 이뤄졌는데 클린수주는 이런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지난 몇 년간 수주전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도 클린수주를 하겠다는 회사 방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혼탁한 수주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건설사들의 주택사업 의존도가 큰 까닭이다. GS건설과 대우건설, 대림산업은 최근 3년간 매출 가운데 주택 사업 비중이 50%를 웃돈다. 현대건설은 현대엔지니어링 등 연결재무제표 기준이어서 이보다 낮은 31.2%, 최근 주택사업에 소극적인 삼성물산은 15~20% 수준이다.

규모가 작은 주택사업 여러 단지를 수주하는 것보다 똘똘한 대형 정비사업장 하나를 수주하는게 낫고, 대단지에 자사 브랜드의 랜드마크 단지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은 향후 다른 지역 수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각 사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우고 보유한 기술력을 쏟아 붓는 만큼 자존심이 걸려있다는 점도 과당 경쟁이 펼쳐지는 이유로 꼽힌다.

강남 대형 정비사업장 조합장 출신 A씨는 "건설사들이 수주할 수 있는 사업장 자체가 줄면서 이전보다 수주하려는 욕심이 더 커졌다"며 "클린수주 정착은 조합 의지도 중요한데 그 동안에는 조합장과 건설사 간의 유착관계 등이 계속돼 자정 움직임이 적었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처벌받는 건설사는 거의 없다"며 "처벌이 약하다는 점도 클린수주가 정착되지 못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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