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3구역이 다시 예열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검찰 수사까지 의뢰했던 3개 시공사(현대‧대림‧GS건설)의 입찰 제안 내용이 불기소되면서다. 공사비만 2조원에 달하는 거물급 재개발 사업장인 한남3구역이 두 달만에 재출항하게 되자 정비업계에도 화색이 도는 분위기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서둘러 '그래도 주시하겠다'며 행정조치 등의 엄포를 놨지만 이미 검찰로부터 '면죄부'를 받은 격이어서 이전만큼의 공포감은 조성되지 않는 모습이다.
한남3구역에서 문제로 지적됐던 무상 이주비 지원, 금융비용 지원 등의 항목이 '무혐의' 판결이 나면서 시공사 선정 가이드라인이 모호해져 향후 수주전이 더 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문제 많다더니 '무혐의'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지난 21일 한남3구역 시공입찰에 참여한 3개 건설사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앞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한남3구역에 제출한 시공사들의 입찰 제안서에서 ▲사업비 무이자 지원, 이주비 금융비용 무이자 지원 등(조합원 재산상 이익 제공) ▲특별품목 보상제, 분양가 보장, 단지 내 공유경제 지원 등(사실상 이행 불가) ▲분양가 보장, 임대주택 제로 등(거짓‧과장)을 문제 삼았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같은 해 11월 한남3구역 조합에 대해 '입찰 무효 및 재입찰' 권고를 내린 데 그치지 않고 이례적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시공사들의 과도한 입찰 경쟁을 뿌리뽑겠다는 의지로 풀이되며 정비업계는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정작 검찰 수사에선 혐의가 아무것도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재산상 이익 제공에 대해선 형사처벌 규정이 없거나 계약 체결과 관련되지 않았고 ▲입찰방해죄는 위계‧위력 등으로 공정을 방해해야 성립되며 ▲거짓‧과장 제안의 경우 미이행 했을 때 민사상 손해배상채무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모두 불기소했다.
만약 검찰 수사 결과 '기소' 처분이 나왔다면 3개 시공사는 한남3구역을 비롯해 2년간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에 입찰 자격이 제한될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법적 조치를 받지 않게 되자 정비업계를 뒤흔들었던 한남3구역 사태는 조용히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조합은 그동안 사업이 지체된 만큼 최대한 빨리 재입찰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설 연휴가 지나고 2월 1일 재입찰 공고를 한 뒤 13일 시공사 현장설명회를 개최해 새롭게 만든 '입찰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시공사들이 입찰제안서를 제출하면 3월 27일 재입찰 마감하고 5월 16일 시공사를 선정한다.
3개 시공사는 조합의 입찰 가이드라인을 보고 입찰제안서를 원점에서 다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이들 시공사 관계자는 "아마 조합에서 이전에 문제됐던 입찰 제안 항목은 다 뺄 것"이라며 "조합이 정한 가이드라인 선에서 법리적으로 따져보고 새롭게 제안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 국토부‧서울시, 과한 행정…수주전 다시 격화할 수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규제당국으로서 영(令)이 안서는 분위기다.
한남3구역을 콕 집어 합동점검을 실시하고 검찰 수사까지 의뢰하며 판을 키웠지만, 정작 별다른 처분 없이 마무리 되면서 되레 '과한 개입이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남3구역을 시범 케이스로 제재해 업계에 경고를 주려고 한 것 같다"면서도 "시공사가 조합원에게 몰래 돈이나 선물을 줬다면 비리에 해당하지만 입찰 경쟁을 위해 공개적으로 제안한 조건들로 검찰 수사까지 한 건 과하다"고 말했다.
한남3구역의 조합원 전 모씨도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지 않았느냐"며 "이때까지 사업이 지연되면서 조합원들의 사유 재산이 침해당했으니 국토부와 서울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국토부와 서울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혐의의 근거가 있는 만큼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직후 공동 입장 자료를 통해 "현행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제30조 및 '서울시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 제9조를 위반한 것으로 도정법 113조(감독)에 따라 행정청의 입찰무효 등 관리‧감독 조치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도정법113조는 정비사업의 시행이 도정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처분이나 사업시행계획서 또는 관리처분계획에 위반됐다고 인정되는 때 국토부, 서울시가 추진위원회, 사업시행자 등에게 처분의 취소‧변경 또는 정지, 공사의 중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해당 조치에 따르지 않으면 도정법 제137조(벌칙)에 따라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이 적용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국토부와 서울시가 한남3구역에 대해 할만한 조치는 없어 보인다. 이미 검찰에 수사를 의뢰할 때 '재입찰 권고'로 관리‧감독 조치를 했고, 문제가 됐던 '재산상 이익 제공'에 대해선 위반 시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서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남3구역에 대해선 이미 재입찰 권고를 해서 조합이 받아들였으니 우선 재입찰 과정을 지켜보고 또 문제가 생길 경우 행정처분하겠다"며 "형사처벌이 미비한 부분은 국토부가 법령을 개정하기로 한 상태고, 서울시는 정비계획 승인, 관리처분 인가 등 승인권자인 만큼 우리 권한 범위 내에서 통제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시공사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형사처벌'에서 면죄부를 받으면서 정비업계의 시공사 경쟁에 불을 지필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서진형 경인여자대학교 교수 겸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정부가 시공사 경쟁 과열을 진정시키려고 충격요법을 썼지만 정작 검찰에서 시공사들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 됐다"며 "시공사들의 입찰 내용이 무혐의로 판결되면서 오히려 재건축 정비사업 수주 마케팅 활동이 격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울러 공공택지 공급이 부족하고 정부의 규제로 정비사업이 올스톱 돼 있는 상황이라 시공사들이 점점 더 사활을 걸고 경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