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법 개선에 착수하자 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계획대로 폐지 수준의 고강도 개편이 이뤄지면 전월세시장에 또다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현 제도를 유지하되 상생임대인 혜택 강화, 민간 등록임대사업자 확대 등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집주인이 임대료를 올려 받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 자연스레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취지다. 최근 전세시장이 안정세라는 점도 폐지 대신 민간 등록 임대 등을 통한 공급 확대방안 쪽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전세대란도 없는데…"폐지 대신 미세조정"
국토교통부는 최근 법무부와 함께 주택임대차 제도개선 TF를 발족했다. TF에선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의 임대차2법이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2법은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애초 취지와 달리 이중·삼중가격을 형성해 전월세시장을 혼란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제도 개편에 나서면서 개편 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달 29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는 부작용이 커 폐지하고 아예 새로운 방식의 임차인 주거권 보장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부의 의지와 달리 시장에선 폐지보다 '미세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금리 인상 등으로 전세 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면서 시장이 잠잠해진 상황이다. 임대차2법의 주요 부작용으로 꼽혔던 8월 '전세대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임대차2법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해결해야겠지만 현 정부의 발표에선 정확한 문제점이 무엇인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며 "전세대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거대 야당의 협조를 받을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넷째 주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전국 94.4, 서울 91.9였다. 이 지수가 100 아래면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의미다.
전셋값도 하락하고 있다. 같은 기간 아파트 전세가격지수 변동률은 전국 –0.05%, 서울 –0.03%이다. 전국은 지난 5월9일부터 12주 연속, 서울은 6월13일부터 7주 연속 내리막이다.
더욱이 이들 제도를 폐지하면 전셋값 폭등 시 임차인을 보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임대차2법을 완전 폐지하면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적 울타리가 사라지게 된다"며 "4년치 임대료를 미리 올리는 식의 악·오용 사례가 문제가 된다면 이를 해결할 구체적 방안을 찾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구원투수는 다주택자? "임대인 혜택 확대해야"
미세조정 방안으로는 현재 임대차2법을 유지하되 상생임대인의 혜택을 확대하는 방법 등이 꼽힌다. 임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상생임대인은 직전 계약 대비 임대료를 5% 이내로 인상한 임대인이다. 정부는 지난달 이미 한 차례 상생임대인 혜택을 확대키로 하고 2일부터 시행했다.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에 따라 1가구 1주택자인 상생임대인은 조정대상지역에서 양도세 비과세 거주요건(2년)과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을 위한 거주요건(2년)이 면제된다. ▷관련 기사:'8월 전세대란 막는다'…착한 집주인 늘리고 혜택 확대(6월21일)
김인만 소장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대립하는 지금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상생임대인 제도 확대가 최선"이라며 "현행 상생임대인 제도 혜택에 추가로 종합부동산세 합산배제 등을 연계한다면 굳이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올려받을 이유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민간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도 제기된다. 등록임대사업자들은 임대료 인상률에 제한을 받고 있어 기존 계약분의 5%까지만 올릴 수 있다. 2020년 7월 폐지된 단기민간임대주택과 아파트 장기일반민간임대주택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관련 기사:다주택자, 달라진 위상…'사회악'에서 주택공급 구원투수?(6월24일)
국회 입법조사처도 등록임대인의 주거안정 효과를 지적하며 현재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안들을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입법조사처는 2일 발표한 2022 국정감사 이슈분석 보고서에서 "민간 임대사업자 등록을 통한 임대주택 공급 확대 및 임차인의 주거안정 효과가 있다"며 "민간임대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등록임대사업자 제도 관련 법령개정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