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가 투기 목적으로 많은 집을 사고 있고, 그 과정에서 집값 불안을 야기했다." - 2017년 8월 2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 문재인 정권은 다주택자와 그야말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첫 국토교통부 장관이었던 김현미 전 장관은 취임 날부터 다주택자를 콕 집으며 당시 집값 과열 양상의 주범이라고 비판했는데요. 이후 문재인 정권 내내 다주택자를 압박하는 규제가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이 영향으로 다주택자를 사회악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5년을 지내고 나니 이제는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들은 시장에 유익할 게 전혀 없는 존재처럼 여기는 여론도 있는데요.
임대차 시장서 '물량 공급' 역할 유도
새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시각도 다른 듯 합니다. 다주택자를 시장을 혼란하게 하는 투기 세력이 아닌 다주택자 역시 주택시장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 방안에서 다주택자도 이른바 '상생 임대인'이 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관련 기사: '8월 전세대란 막는다'…착한 집주인 늘리고 혜택 확대(6월 21일)
상생임대인은 집주인이 임대차계약을 신규로 맺거나 갱신할 때 보증금이나 월세를 기존 계약 대비 5% 이내로 결정하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이런 '착한 집주인'에게는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주기로 했는데요. 여기에 더해 향후 1주택자로 전환할 계획이 있는 다주택자도 같은 조건이면 상생 임대인으로 인정해주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또 추가 대책으로 등록임대사업자에게도 상생 임대인 혜택을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들 역시 임대 의무 기간 동안 임대료 증액을 5% 이내로 제한하는 등 공적 의무를 이행하는 만큼 형평성에 맞게 같은 혜택을 주겠다는 겁니다.
결국 다주택자라고 해서 무작정 규제하기보다는 '착한 임대인' 제도에 끌어들여 '시장 안정화'에 동참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둔 셈입니다.
'다주택자'와 관련한 규제 완화를 통해 임대 물량을 확대하는 방안도 눈길을 끕니다. 지금은 규제지역 주택 구입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기존 주택을 6개월 이내에 처분해야 하는데요. 이를 2년으로 늘리고, 신규 주택 전입 기한을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1주택자가 주담대를 받아 아파트를 한 채 더 매입할 경우 2년간은 해당 주택에 세입자를 둔 상태에서 2주택 상태를 유지해도 되게끔 한 겁니다.
분양가 상한제 대상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도 완화했는데요. 이를 통해 새 아파트 집주인이 바로 입주하지 않고 임대 매물로 내놓는 것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민간임대 등 다주택자 역할 부각
사실 다주택자는 집을 여러 채 사서 전·월세 물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한데요. 이를 '사적 임대 매물'이라고 합니다. 공공이 모든 임대 매물을 만들 수 없으니 다주택자가 이른바 임대 물량의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에 임대사업자 등록을 독려하고 여러 혜택을 줬던 것도 이런 역할을 인정했기 때문인데요. 물론 나중에 갭투자 우회로라는 비판에 혜택을 모두 거둬들이긴 했지만요.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그간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주택자를 투기 수요나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봤다면, 이번 정부에서는 다주택자를 임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공급 기능'의 한 축으로 보겠다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새 정부는 다주택자들이 매매 물량을 내놓도록 하는 방안도 시행한 바 있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1년간 한시적으로 배제해준 건데요. 당장 시장에 있는 공급 물량이 부족하니 다주택자들이 큰 부담 없이 집을 내놓도록 한 겁니다. 결국 이 역시 다주택자들의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 거로 볼 수 있고요.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지난 정부에서는 1주택자와 다주택자를 이분법적으로 봤는데, 이런 개념을 바꿔 다주택자가 갖고 있는 순기능을 살리려는 정책 기조로 보인다"고 언급했습니다.
대출 규제 속 '매매 독점' 등 부작용 우려도
그렇다면 정부의 의도대로 다주택자들은 앞으로 시장에서 '순기능'만 하게 될까요. 우려의 목소리도 여전히 있습니다. 취지 자체는 좋지만, 자칫 규제만 완화해주고 순기능은 나타나지 않는 않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지난 16일 다주택자의 종부세를 완화해주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는데요. 그간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가 다소 '징벌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관련 기사: 보유세 2020년 수준으로…다주택자 종부세도 완화(6월 16일)
하지만 이는 '부자 감세'라는 논란으로 이어졌고요. 결과적으로 다주택자들이 시장에 물건을 내놓지 않아도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를 통해 매물을 늘리려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워지는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추가적인 규제 완화를 통해 다주택자의 갭투자를 터 주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아직은 대출 규제 탓에 현금이 많지 않으면 집을 사기 어려운 게 사실인데요. 이런 환경 속에서 다주택을 보유한 '현금 부자'들만 매물을 독점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고 원장은 "결과적으로는 돈이 많은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독점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여전히 강남 등 일부 지역의 경우 집값이 올라가는 분위기 속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주면 시세 차익 등을 노리는 수요를 용인해주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다주택자에 대해 세금 폭탄을 때리는 것도 문제지만, 무작정 규제를 완화해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사실 다주택자로 인해 집값이 오를 수 있는 것도 맞기 때문에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관련 기사: 다주택자, 보유세 받고 '집값 상승' 베팅?…'버티기' 언제까지(5월 31일)
아직은 시장이 뚜렷한 하락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투기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되레 가격이 오르고 시장을 왜곡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요.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 기조가 달라지는 분위기입니다.
과연 새 정부가 내세운 '명분'대로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완화가 시장 정상화에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부작용만 초래하는 결과를 낳게 될까요. 새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다주택자 규제 완화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