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인상, 부동산경기 침체 등으로 전국 정비사업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업성을 우려한 건설사들이 '선별 수주'에 나서면서 시공사를 찾기 어려워졌다. 각 조합은 공사비를 증액하고 입찰 보증금을 낮추는 등 시공사 모시기에 나섰다.
가까스로 공사를 시작해도 사업 진행이 쉽지 않다. 시공 중에 설계 변경 등으로 공사비가 증액되면서 시공사와의 갈등이 빈번하다. 금리 인상으로 사업비 조달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정비사업장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공사 선정부터가 '애로사항'
울산 최대 재개발 사업인 중구 B-04구역은 지난 14일 '제4차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를 냈다. 이날 오전 10시 열린 현장 설명회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아 3차 입찰 공고가 무산됐다. 조합은 지난 7월 시공사 선정 절차에 들어갔지만, 지금까지 시공사를 찾지 못해 사업이 표류 중이다.
중구 B04구역은 지하 4층~지상 29층, 55개동, 4080가구의 대규모 사업으로 예상 공사비만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일반분양 물량도 전체 72%인 2946가구에 달해 사업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등 대형사들의 2파전이 될 전망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2곳 모두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최근 부동산경기가 급격히 침체하면서 분양시장 또한 직격타를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 미분양 우려가 커지면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모두 사업성 재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은 3차 공고부터 컨소시엄 불가 조항을 삭제하며 입찰 문턱을 낮췄지만, 결국 시공사 선정은 해를 넘기게 됐다. 4차 입찰 공고에 대한 현장설명회는 오는 23일 열리며, 이때 참석한 건설사가 있을 경우 내년 1월13일 입찰을 진행한다.
시공사 찾기가 어려운 건 서울도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 신당8구역은 지난달 첫 시공사 입찰 공고를 냈지만 포스코건설이 단독 참여해 유찰됐다. 도시정비법에 따라 시공사 입찰에 경쟁이 성립하지 않으면 유찰된다. 다만 같은 조건으로 진행한 2번째 입찰 때도 단독 입찰이면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
영등포 남성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달 4번째 시공사 입찰 공고를 냈다. 1~2차 때는 무응찰로 마감했고, 3차 때는 롯데건설이 단독 응찰해 무산됐다. 조합은 이 과정에서 예정 공사비를 1051억원에서 1441억원까지 올렸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금융위기 때 분양시장 초토화되고 그 여파가 몇 년간 지속됐던 걸 떠올리면 쉽게 수주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금까진 분양 후 이익을 먼저 계산했다면 이젠 아주 사소한 리스크라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이대론 정비사업 멈춤?
어렵게 시공사를 구해도 문제다. 금리와 자잿값이 급격히 오르면서 공사비 인상 움직임이 거세다. 조합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요구에 갈등 조짐까지 보인다. 비용 인상을 두고 갈등 끝에 공사가 멈췄던 '둔촌 주공' 사태가 반복될 수도 있다.
서울 서초구 신반포4지구 재건축(메이플자이)조합은 최근 공사비를 4700억원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 비용, 물가 상승에 따른 재경비가 1800억원에 달한다. 조합은 착공 후 물가 상승 등에 따른 인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근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래미안 원베일리)조합 역시 시공사와 공사비 증액을 두고 갈등 중이다. 시공사는 설계 변경 등에 따라 공사비를 기존 1조 1277억원에서 2540억원 인상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건설사로선 원가가 상승했으니 부담이 되겠지만 조합도 사업비 대출 등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을 함께 지고 있다"며 "가뜩이나 분양시장도 안 좋은데 비용을 더 들이겠다고 하면 조합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가 없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실제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은 최근 조합원에게 제공했던 이주비 대출 이자에 대한 후불제 혜택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대출 이자가 연 3.58%에서 6.94%로 급등하면서 부담이 대폭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부동산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정비사업이 당분간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리 인상, 집값 하락이 진행되는 한 조합의 부담이 날로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고금리에 집값이 우하향하면 재개발, 재건축 등 모든 게 멈출 수밖에 없다"며 "개발 사업은 앞으로의 가치가 오를 것을 기대하고 진행하는 건데 집값이 하락하면서 동력 자체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