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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부잡]내 아파트인데 입주 못하는 이유

  • 2023.04.04(화) 15:04

기존 집 안 팔리는데…세입자 구하기도 어려워
공사비 분쟁에 입구 차단…법원도 유치권 인정

신축 아파트 입주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청약, 계약, 중도금 납부까지 마치느라 수년이 걸렸는데, 이제 와 입주를 못 한다니 무슨 일일까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가장 많은 사례는 기존 집에 발이 묶이는 경우입니다. 현재 거주하는 집을 팔아야 새집의 주택담보대출을 유지할 수 있는데, 부동산시장 침체로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새집 입주를 포기하고 세를 주려 해도 세입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최근들어선 시공사가 아파트 입구를 가로막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최근 자잿값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건설사가 많습니다. 입주예정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해도 법원은 건설사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입니다.

그래픽=비즈워치

급락한 아파트 입주율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에 따르면 올해 2월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63.3%로 역대 최저치입니다. 입주율이 2개월 연속 60%대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때 89%에 육박했던 입주율은 작년 11월 처음으로 60%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입주율은 해당 월에 입주해야 하는 아파트 가구 수와 실제 잔금을 치르거나 입주한 가구를 비교한 것입니다. 주산연이 매월 한국주택협회와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원사 등 주택사업자를 대상으로 조사합니다.

처음 조사를 시작한 2017년 6월 이후 입주율은 주로 70%대를 유지했습니다. 이후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며 집값이 급등했던 2020~2021년에는 입주율이 80%대로 올랐습니다. 역대 최고치는 2021년 2월에 기록한 88.9%입니다.

작년 12월(71.7%)에 반짝 반등했을 때를 빼면, 입주율은 작년부터 쭉 하락세입니다. 금리 인상 등으로 집값 하락이 본격화된 시기입니다. ▷관련 기사: [집잇슈]부동산 과열 후폭풍…불 꺼진 아파트 어쩌나(3월28일)

월별 입주율 추이 / 그래픽=비즈워치

기존 집 안 팔려 입주 못해

입주예정자들이 입주를 포기하는 건 주택시장이 침체한 영향입니다. 주산연에 따르면 2월 미입주 사유는 '기존 주택 미매각'이 44.4%로 가장 많았습니다. 최근 매수심리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집을 사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전국 매매수급지수는 77.4입니다. 지수가 100 이하면 집을 팔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결국 급매만 간간이 거래됩니다. 가격을 충분히 낮춘다면 매도가 수월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집을 손해 보고 팔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작년 서울 PIR(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은 18배까지 치솟은 바 있습니다.

물론 일시적 2주택자라면 기존 주택 처분을 조건으로 일단 신규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작년 6월까지는 처분 기한도 6개월로 빠듯했는데, 올해 1월부터 3년으로 확대됐습니다.

그래도 입주를 망설이는 건 침체기가 장기화할 경우엔 기존 주택 처분 기한 안에 처분할수 있을지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기한 내 기존 주택을 팔지 못하면 대출금 전액을 일시 상환해야 하고, 3년간 주택 관련 대출 제재를 받습니다. 즉시 상환하지 못하면 연체차주로 등록돼 금융거래가 제한되고 연체 이자를 내야 합니다.

새집 입주를 포기하고 세입자를 들이기도 어렵습니다. 위의 주산연 조사에서 '세입자 미확보'를 미입주 사유로 꼽은 응답자가 33.3%에 달합니다. 3월 말 기준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전세수급지수는 76.6으로 임차 수요보다 임대 수요가 많습니다.

간신히 세입자를 구해도 전셋값이 하락해 전세보증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 과거보다 줄었습니다. 특히 처음부터 세입자를 들일 목적으로 중도금까지 연체했다면 부랴부랴 부족한 현금을 마련해야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최근 입주를 시작한 강남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전용 59㎡ 전셋값은 작년 말 13억원 대에서 7억원 대로 반토막 났습니다. 작년 말 입주가 몰렸던 검단신도시는 전용 84㎡ 전셋값이 1억원 대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관련 기사: '강남 전셋값이 정말 이 가격?'…언제까지 떨어질까(2월27일)

입주 막힌 신목동 파라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조합-시공사 공사비 싸움에 '새우등'

입주예정자가 모든 준비를 마쳤더라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됩니다. 정비사업장에선 조합과 시공사 간에 갈등이 종종 발생하는데, 최근엔 자잿값이 오르면서 공사비 분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입주가 막히면 조합원이 아닌 일반분양자도 똑같이 피해를 봅니다.

한 달째 입구가 굳게 막힌 서울 양천구 '신목동 파라곤(신월4구역 재건축)'이 대표적입니다. 지난 3월1일 입주가 시작됐어야 하는데, 시공사인 동양건설산업이 아파트 입구를 컨테이너 등으로 막고 입주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시공사가 약 100억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는데, 조합이 거부하면서 유치권 행사에 들어간 겁니다. 조합이 시공사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조합은 시공사로부터 지난 2021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수회에 걸쳐 공사비 단가 조정 협의 요구를 받았음에도 관련 회의를 1회만 개최하면서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이 시공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입주예정자 299가구 중 절반이 넘는 일반 분양자(153가구)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오는 5월 입주 예정인 대치 푸르지오써밋도 공사비 갈등 끝에 조합원들의 입주 제한을 검토하기에 이르렀지만 다행히 일단락됐습니다. 

이처럼 최근 건설 자잿값이 상승하면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시공사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공사비 변경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유치권 행사에 들어가도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상, 앞으로 이같은 입주 중단 사례가 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앞서 강동구 둔촌주공, 서초구 방배 신성빌라, 마포구 공덕1구역 등도 공사비 분쟁으로 공사 중단을 겪은 바 있습니다. 아직 공사비 검증을 마무리 못한 둔촌주공을 비롯해 2~3년 내 입주 예정인 단지들은 공사비 분쟁의 불씨가 살아있습니다. ▷관련 기사:  원자재값 상승 후폭풍…둔촌주공 처럼 공사 멈출라(2022년 4월21일)

이에 서울시는 3월 말 '공사계약 종합 관리방안'을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사비 증액이 예상되는 사업장은 입주 전 협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공사비 증액 사유가 생기면 공공기관 등의 검증을 통해 결과를 반영하도록 합니다. 다만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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