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폐지 무산위기…정부 믿은 수분양자만 발 동동'
지난해부터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 중 하나로 '실거주 의무 폐지'가 있는데요. 1년이 다 돼가는 동안 이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실거주 의무' 존폐 갈림길…혹한 속 혼돈의 주택시장(2023년 12월25일)
정기국회가 끝난 지는 오래고 간간이 임시국회가 열리고는 있긴 합니다. 하지만 총선 정국 속에 법안이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죠. 정부 말만 믿고 분양 후 전세를 들여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던 수분양자와 분양권을 매수한 사람들은 속을 태우는 상황이에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야 간 의견 대치로 법안 통과를 미룬다며 비난의 화살이 국회로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만 탓할 상황은 아닙니다. 잘 뜯어보면 정부가 준비도 없이 '공수표'를 날린 까닭입니다. 국회에서 논의 진척이 어려웠던 데 이유가 있었던 거죠.
실거주의무 폐지…국회에 떠넘긴 정부
실거주 의무는 '2021년 2월19일 이후 수도권 분양가상한제(이하 분상제) 적용 아파트 일반분양 계약자에게 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간 실거주를 의무화'한 제도예요. 이 기간에는 집을 팔 수도 전세를 놔 잔금을 치를 수도 없죠. 만약 법을 어기면 최대 징역 1년 혹은 1000만원의 벌금 처분을 받을 수 있어요.
실거주 의무 규제는 집값이 가파르게 올라 청약 과열사태가 빚어진 2021년 2월 도입했는데요. 이후 침체된 시장과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지난해 주거시장 안정화 방안(1.3 대책)을 내놓으며 전매제한 완화와 함께 실거주 의무 폐지를 약속했어요.
분양가상한제 적용 지역을 강남 3구와 용산을 제외하고 모두 해제하고, 이들 규제지역에 적용했던 전매제한 기한을 최대 10년에서 1~3년까지 줄인 거죠. 전매제한을 푸는 만큼 거래가 원활히 이뤄지려면 '세트'인 실거주 의무도 폐지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작년 4월 풀린 전매제한 완화 조치와 달리 법 개정이 필요한 실거주 의무 폐지는 여전히 발이 묶였죠. 규제를 반만 푼 '미완'이 된 겁니다.
정부를 믿고 자금 계획을 세웠던 수분양자와 입주 시기를 앞두고 분양권을 거래한 이들도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에요. 위장전입 등 편법을 비롯해 위법, 탈법 등을 고민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지만 당장 마땅한 해결책은 없는 거죠.
여야, 폐지보다 '보완'…정부는 준비 안 돼
정부는 여전히 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에서의 논의는 실거주 의무 '유지'로 의견이 모인 게 의사록에 담겨 있습니다. 여야 간 의견 대치보다는 사실상 국회와 정부 간 대치상태인 거죠. 야당뿐 아니라 규제 폐지에 대해 정부와 호흡을 맞추는 여당도 당초 규제 취지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은 "기본적으로 집을 청약 받고 강제적으로 5년을 살게끔 하는것은 비민주적인 법안"이라며 "그럼에도 실거주 의무를 둔 것은 높은 분양가와 실거래가 차이로 어떻게 보면 재산증식, 일확천금의 하나의 도구로 활용돼 실수요자로 제한하고자 여건을 둔 것으로 안다"고 말했어요.
김 의원은 "아예 없애는 것(법안 폐지)은 부작용이 우려되고 형평성도 문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어요. 대신 "처음에 못 들어가도 (전세 등으로 잔금을 마련해) 자기집으로 만들어 5년을 살면 인정해 주는 것이 지금 여건에 부합한다"라고 대안을 제시했어요.
실거주 의무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 아파트 중 일반분양을 받는 사람들에게만 적용하는데요. 분상제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살 수 있게 한 만큼 해당 주택을 투기 목적으로 전매하지 않도록 했다는 게 '이유 있다'는 거죠.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소위원장)은 "실거주의무제를 유지하면서 조금 유연성 있게 적용하자는 쪽으로 (여야) 논지가 모아졌다"면서 "법안은 유지하되 매매 이전까지 혹은 거주의무 기간을 줄이는 등 예외조항을 넣어 탄력적으로 하는 방안 등 논의가 이뤄졌다"고 하기도 했죠.
이 때문에 국회에서는 '실거주 의무' 법안 자체는 유지하되, 정부 정책 발표 후 잔금마련 등 어려움을 겪게 될 수분양자들을 위한 지원책이나 적용 완화 방안을 고민 중이에요. 현재는 어떤 기준으로 지원가구를 정하고 지원책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가 관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가구가 어느 정도 되는지 국토교통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국토교통부는 매번 실거주 의무 적용 아파트가 약 '4만8000가구'라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는 해당 기간 공급된 주택 전체일 뿐이죠. 실제 자금조달 등 어려움을 겪게 될 세대수는 파악을 하지 않은 상태예요.
실제 지난해 11월 말 열린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해당 사안에 대해 국토부를 질타하기도 했죠. 국토부 관계자는 "2023년 실거주 의무를 새롭게 적용받는 가구는 5000가구, 2024년에는 한 1만5000가구 정도"라며 "그런데 이중 누가 실입주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지는 전수조사를 해보지 않아 알 수 없고, 통계에 애로점이 있다"고 말했어요.
이에 대해 의원들은 "정부가 현실을 반영해 법안을 고친다면서 현실이 아닌 예측이나 가능성만 들고 와 법안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질타했어요. 대안을 내놓으려 해도 대상이 명확지 않으니 기준 마련이 어려워 논의가 공회전을 거듭한다는 거죠. 결국 피해는 정부의 공언만 믿었던 수분양자들이 떠안게 됐어요.
전세난 등 시장 불안 키웠다는 지적도
그래서 정부가 시장 불안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나와요. 실거주 의무 폐지로 기대감을 키운 상태에서 법안 통과가 번번이 무산되자 불안심리가 커져 '전세난' 등 극단적 우려로 번지고 있다는 건데요.
실제 올해는 서울 입주 물량이 줄어들며 전세공급 부족이 예상되고 있어요. 실거주 의무 폐지 시 전세물량이 일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기대가 꺾이면서 시장에 더 큰 실망감이 반영됐기 때문이에요.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분양을 받은 수분양자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다"면서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신뢰성 측면에서 볼 때 시장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어요.
그러면서 "특히 전세는 하나가 공급되면 승수효과로 연이어 4~5개가 새롭게 공급되는 효과가 있다"면서 "예상보다 전세시장에 미칠 영향이 더 클 수 있다"라고 말했어요.
과도한 우려라는 지적 역시 있어요. 실거주가 불가능한 가구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란 예측에 기반한 건데요.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1만가구 이상이 실거주 의무가 적용된다고 해도 서울에만 1000만가구 이상이 있는데 이들이 부동산 시장 전체를 흔드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과도한 부분이 있다"면서 "실거주 의무 폐지와 관련한 불안감의 고조는 '둔촌주공 살리기 시즌2'의 느낌도 있다"고 지적했어요.
1만2000가구가 넘는 대단지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은 일반분양만큼 조합원 물량이 많아 이 중 전세 시장 공급물량이 추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요. 입주 시기도 지역별로 나뉘는 만큼 전세난이 터질 우려는 크지 않다는 시각이에요.
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올해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1만가구 중 실거주를 하는 가구도 꽤 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해당 가구에는 필요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 테지만 이 문제가 전세난이나 전체 부동산 시장에 파장을 미칠 정도의 파급력은 크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했어요.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시장이나 전체 시장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보지만 정부 정책의 신뢰를 잃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책 발표 후 자금 마련에 차질을 빚게 될 가구나 그 사이 분양권을 불법으로 판매한 이들의 경우 심각한 문제를 빚을 수 있어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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