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세대도 여유가 있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생각을 할 텐데…."('임대주택 면적 제한 폐지에 관한 청원' 내용 중)
1인 세대를 울린 공공임대주택 면적 기준이 '전면 재검토'된다. 지난달부터 적용된 공공임대주택에 세대원수별 적정면적 기준에 따라 1인 세대는 '원룸' 크기로 제한되면서 여론 공분을 산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수요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상반기 중 대안을 내놓기로 했다. 면적 기준 유지, 수정, 폐지 등 다방면으로 검토 가능성을 열어뒀다. 면적 제한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뿔난 1인 가구들에 '전면 재검토' 선언
이기봉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정책관은 24일 국토부 기자단을 대상으로 백브리핑을 열고 공공임대주택 면적 제한과 관련해 "전면 재검토해 상반기 중 대안을 만들어 내놓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3월28일 '저출산 정책 과제 및 추진 방향'에 따라 자녀가 많은 가구에 임대주택이 우선 공급되도록 '통합공공임대주택'을 신설했다. 세대원수에 맞는 면적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세대원수별 면적 기준도 만들었다.
기존엔 공공임대주택의 1인 세대에만 '전용면적 40㎡ 이하' 공급 규정이 있었지만 3월25일부터 시행된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 공포안에서 세대원수별로 적정면적 기준을 규정토록 했다. 1인 세대 공급 면적 상한은 낮추고 2~4인 세대 면적 규정을 신설한 게 골자다.
영구·국민임대,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의 적정면적 기준은 세대원수 △1명 전용 35㎡ 이하 △2명 전용 25㎡ 초과~44㎡ 이하 △3명 전용 35㎡ 초과~50㎡ 이하 △4명 전용 44㎡ 초과 등이다. 그러자 면적 기준이 5㎡ 줄어든 1인 세대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전용 35㎡는 10평으로 사실상 원룸형 주택이다. 1인 가구들은 주거의 질, 형평성 등의 문제를 꼽으며 면적 제한을 없애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달 4일엔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임대주택 면적 제한 폐지에 관한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청원인은 "세대원수별 규정 면적이 너무 좁게 산정돼 있다"며 "면적 제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면적이 너무 작은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1인가구들이 방 하나 있고 거실 있는 36형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마저 없애버리는 정책"이라고 했다.
해당 청원글이 여러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되면서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및 입주 대기자들의 면적 제한 폐지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이 청원글에는 3만2200명(24일 기준)이 동의한 상태다.
그러자 국토부도 이같은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면적 제한 폐지까지 가능성을 두고 제도를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검토를 거쳐 확정한 대책은 올 상반기 중 내놓기로 했다.
이기봉 정책관은 "1인 가구도 결혼 및 출산해서 2~3인 가구로 발전하려면 넉넉한 데 살아야 가능하지 않겠냐는 문제제기가 있었다"며 "가볍게 넘기기엔 의미있는 문제제기라고 생각하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이 반드시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폐지까지도 포함해서 열린 자세로 재검토하겠다"며 "다만 유지하는 것도 포함돼 있고 어떤 선입견을 갖거나 가정을 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 올 상반기까지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면적 제한 있어야? 없어야?
국토부가 면적 제한 손질 가능성을 대폭 열어두긴 했지만 '단순 폐지'로 결론 맺긴 어려워 보인다. 세대원수가 적은데 넓은 평수에 살게 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어서다. 아울러 저출산 문제에 따른 출산 가구 지원도 무시하기 힘들다.
이 정책관은 "효율적으로 공급돼야지 한두명이 편하게 살고 싶다고 해서 무작정 넓은 평수에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건 오히려 공정·공평 개념에 안 맞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며 "원래 제도 취지 자체도 국가 비상상황이라고 보는 저출산 문제 해소"라고 설명했다.
제도 재검토 원칙 세 가지도 밝혔다. 그는 "공공재원으로 지은 공공임대주택이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배분되게끔 그 틀은 유지돼야 한다"며 "아울러 저출산의 심각한 문제를 감안할 때 출산·다인 가구가 공공임대주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어 "1인 가구가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소외되거나 기회가 봉쇄되게 하진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3월에 발효된 규정을 없애고 과거로 회귀하거나, 면적 제한 규정은 유지하고 1인 가구가 1~2인 기준 주택까지 신청할 수 있게 하거나, 면적 기준을 넓히는 등의 대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했다.
시장에서도 세대원수별 면적 제한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저출산, 주거 질 등을 고려해 세대원수별 면적 기준은 두되 면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지금 세대들은 넓은 아파트에 사는 게 익숙하고 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런 수요도 감안해야 한다"며 "아울러 세대원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사를 가야 한다는 점도 불편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공공임대는 주거취약계층에 주거 복지를 실현하는 취지로 공급하는 주택이라 면적을 더 넓혀줘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한 1인 최소 거주 면적이 있는데 여기서 1.5배 정도 넓히거나, 그보다 더 넓힌 다음 1~2인 가구가 살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일률적인 면적 제한은 수요 및 시장과 맞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역이나 건설 상황 등에 따라 작은 평형을 짓지 않는 주택도 있고 오히려 큰 평형이 인기가 없는 사례 등도 있어서다.
진미윤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이학박사(한국주택학회 회장)는 "시장 상황과 니즈에 따라 제도나 법을 탄력적으로 바꿔줘야 한다"며 "지역마다 모든 평수가 골고루 있는 게 아니고 선호도 다르기 때문에 지자체나 사업 주체에게 공급 권한을 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지역에선 유형별로 세분화해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다 보니 해당 유형에 맞는 입주자가 없어서 공실로 남겨둔 경우도 있었다"며 "공공임대주택은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하는 게 1순위고 세대원수를 고려하는 건 그 다음이 돼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세대원수별로 면적 제한을 두면 정부가 만든 틀에 사람을 끼워맞추는 셈"이라며 "물리적 면적보다 심리적 면적이 더 중요하고 욕구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면적 제한을 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