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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과 세금]②돌려주면 괜찮아

  • 2015.02.18(수) 09:00

국세청 과세 전 뇌물 반환..소득세도 없어
'소득 있는 곳에 세금'..실질과세 원칙 적용

"국세청이 과세할 당시에는 뇌물을 준 사람에게 이미 돌려줬습니다. 저에게 실제로 귀속된 소득이 없기 때문에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은 부당합니다."

 

뇌물을 받은 사람이 세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는 전형적 패턴이다. 세금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소득세의 기본 원칙인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논리가 뇌물수수범을 구제해준다.

 

국세청이 뒤늦게 뇌물에 세금을 매겨도 소용이 없다. 조세심판원이나 법원은 뇌물에 과세 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직접 당사자에게 반환하면 세금을 물리지 않고 있다.

 

 

◇ 한발 늦은 국세청

 

김재홍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은 2008년 9월부터 2011년 4월까지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4억2000만원의 뇌물을 챙겼다. 김 전 이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촌처남으로 금융감독당국에 잘 얘기해서 저축은행 영업정지를 막아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2011년 말 검찰에 구속된 그는 재판이 진행중이던 2012년 6월 자신이 받았던 뇌물을 유 회장의 경영관리인에게 돌려줬다. 두 달 후 서울고등법원은 김 전 이사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국세청은 2014년 4월부터 6월 사이 김 전 이사장에게 종합소득세를 더 내라고 통보했다. 비록 뇌물은 돌려줬지만, 2008년부터 2011년 과세기간에 반환한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은 국세청 과세 당시에 이미 반환됐기 때문에 김 전 이사장에게 납세 의무가 없다고 결정했다.

 

▲ 김재홍 전 KT&G 복지재단 이사장

 

◇ 세금 피하기 '선구자'

 

뇌물의 세금을 돌려받은 '선구자'가 있었으니, 바로 박준형 전 효성 화학부문 사장이다. 그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여천NCC의 비상근이사로 근무하면서 뇌물 6억3000만원을 받았다. 가스터빈발전기 사업과 관련한 납품업체의 청탁이었다.

 

그는 검찰의 수사가 개시되던 2007년 말부터 뇌물을 모두 납품업체에 돌려줬고, 2009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국세청은 2년 후 박 전 부사장에게 1억4000여만원의 종합소득세를 추징했지만, 조세심판원 불복을 통해 세금을 취소했다.

 

이때부터 뇌물을 미리 돌려준 사람들은 심판청구에서도 대부분 인용(납세자 승) 결정을 받아내고 있다. 국세청이 과세할 당시에는 뇌물이 반환된 상태여서 납세자에게 담세력이 없다는 논리가 적용됐다. 일단 뇌물수수 사실이 적발되면 재빨리 돌려주는 것이 상책이라는 웃지 못할 '재테크'도 만들어졌다.

 

◇ 무통장입금과 처벌불원서

 

경기 고양학원의 실질적 이사장인 송용운씨는 2006년 말부터 2009년까지 고양예고 실습관 시설공사 과정에서 건설업체와 전기통신업체로부터 수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학교의 실습동 건축공사와 전기통신 공사를 발주하면서 형식적으로는 경쟁입찰 방식을 해놓고, 뒤에서는 쎄데코건설과 인터컴이 낙찰받도록 꾸몄다. 그는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돼 2010년 8월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법원 판결을 한달 앞두고 송씨는 건설업자 박모씨에게 무통장입금을 통해 뇌물을 반납했다. 박씨는 "뇌물을 돌려줬으니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처벌불원서까지 법원에 내주기도 했다. 결국 추징금을 내고 석방된 송씨는 종합소득세까지 취소 결정을 받아냈다.

 

◇ 국세청 직원도 '뇌물 재테크'

 

세금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국세청 세무공무원들 역시 뇌물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세무서 과장으로 근무하던 A씨는 2005년 11월 건설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가 2009년 8월에 직접 돌려줬다.

 

국세청은 2011년 5월 A씨에게 "뇌물은 기타소득이니 종합소득세를 내라"고 통보했지만, 그는 이의신청과 심판청구를 통해 세금을 못 내겠다고 버텼다. A씨는 법원에서도 '공소제기 후 뇌물반환'이라는 사유를 인정받아 처벌을 줄였고, 세금도 피할 수 있었다.

 

국세청 조사반장이었던 B씨는 저축은행 전무에게 뇌물을 받았다가 팀원 2명에게 나눠줬다. 뇌물수수 사실을 뒤늦게 포착한 국세청은 B씨에게 뇌물 전체에 대한 종합소득세를 과세했지만, 조세심판원은 팀원에게 건네준 뇌물은 과세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뇌물에 대한 소득세는 팀원들이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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