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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과 세금]①걸리면 패가망신

  • 2015.02.17(화) 10:13

뇌물은 '기타소득' 분류..종합소득세 추징 봇물
미리 돌려주면 '비과세'..국고 환수하면 '과세'

뇌물을 받고 처벌받은 사람들이 과세당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세청이 뇌물도 엄연한 소득으로 보고 소득세를 추징했지만, 정작 뇌물을 받은 사람들은 세금이 못마땅하다는 반응이다. 지난 5년간 뇌물수수 후 세금 불복에 나선 사람은 전직 국회의원부터 대기업 임원, 금융회사 회장, 학교재단 이사장, 정부 고위공무원, 과세당국 실무자까지 있었다. 그들의 뻔뻔한 세금분쟁 속에 숨어있는 사연과 결말을 들여다본다. [편집자]

 

 

2005년 5월31일 개정된 소득세법에는 뇌물도 기타소득으로 보고 종합소득세를 매길 수 있도록 규정됐다. 뇌물을 받았다가 적발되면 전액 국고로 환수 당하고, 징역이나 추징금까지 처벌을 받는다. 여기에 뇌물수수액의 절반에 가까운 소득세까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소득세법에 '뇌물'이 명시된지 1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뇌물수수에 대한 세금 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1년 이후 뇌물에 대한 세금불복 12건을 분석해보니, 소득세를 피할 수 있는 확률은 50%였다. 뇌물을 미리 돌려줬거나, 누군가에게 나눠주면 납세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미리 돌려주면 세금 없어

 

뇌물을 받고도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법칙이 있다. 국세청이 세금을 매기기 전에 뇌물을 반납하면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실제로 가져간 소득이 없으면 세금도 없다는 해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KT&G복지재단 김재홍 전 이사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4억여원의 뇌물을 받고, 2012년 6월에 뇌물 전액을 돌려줬다. 지난해 국세청이 뒤늦게 과세 처분을 내렸지만, 조세심판원은 실제 귀속소득이 없기 때문에 과세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2011년 박준형 효성 화학부문 사장과 2012년 송용운 고양학원 전 이사장도 각각 수억원의 뇌물을 받았다가 일찌감치 돌려줬다는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세기본법(제14조2항)에서 규정한 '실질과세의 원칙'이 그들에게 세금을 피할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비리에 연루된 국세청 직원들도 세금 만큼은 피해갔다. 지난해 국세청 조사반장 A씨는 세무조사를 나간 저축은행의 임원에게 뇌물을 받았지만, 팀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소득세를 줄였다. 세무서 과장 B씨도 건설사로부터 금품을 받았다가 발각돼 직접 뇌물을 돌려줬는데, 조세심판원에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 국고 환수되면 세금 내야

 

같은 공무원이라도 뇌물에 대처하는 자세에 따라 세금의 희비가 엇갈렸다. 뇌물수수에 대한 처벌을 받으면서 추징금을 통해 뇌물이 국고에 환수된 경우에는 소득세를 내야 한다. 당사자 입장에선 뇌물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추가로 세금까지 내야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관세청 서울세관 조모 조사관은 2004년 위스키 과세가격 결정을 봐준 대가로 1억원의 뇌물을 받았다가 적발됐다. 뇌물은 전액 국고에 반납했지만, 4800만원에 달하는 소득세를 추가로 내야 했다. 10년 후 관세청의 4000억원대 과세 폭풍을 몰고 온 디아지오코리아의 뇌물수수 사건의 발단이었다.

 

전직 국회의원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최철국 전 의원(17대, 18대)은 재임 당시인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소방기구 제조업체로부터 현금 2000만원과 미화 8000달러를 받았다가 절반에 가까운 소득세를 물어야했다. 국가가 뇌물금액을 추징했지만, 당사자가 업체에 직접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미 과세소득이 실현됐다는 이유였다.

 

김병철 전 울산지방경찰청장도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과 관련해 '함바 브로커' 유상봉씨의 뇌물을 받았다가 국고로 환수 당했다. 그는 복역중인 유씨에게 뇌물을 반환할 수 없어 경비부대 위문금으로 사용하고, 교회 무료급식소에도 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청장 본인의 뇌물 소득세는 되돌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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