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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과 세금]③알만하신 분이 왜

  • 2015.02.19(목) 09:00

전직 국회의원·고위공무원·농협중앙회장도 '불복 릴레이'
추징금 내면 세금환급 불가능..'도덕적 해이' 지적도

뇌물수수 혐의로 처벌을 받고 추징금까지 내고도 세금을 더 내야하는 경우도 있다. 발 빠르게 뇌물을 돌려줬다면 세금을 피해갈 수 있지만, 미처 반환하지 못했다면 뇌물의 절반에 가까운 소득세를 내야 한다.

 

어차피 뇌물을 받았다가 발각된 사람의 입장에선 남는 것이 없지만, 국세청의 과세는 직접 돌려줬는지 여부로 판가름난다. 뇌물에 상응하는 추징금을 납부한 것은 처벌의 일환이기 때문에 '실질과세의 원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전직 국회의원을 비롯해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뇌물 때문에 명예를 잃고 세금까지 내는 등 두 번 울어야 했다.

 

 

◇ 국회의원도 못 피한다

 

17대와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철국 전 의원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소방기구 제조업체로부터 현금 2000만원과 8000달러의 뇌물을 받았다. 신기술인증과 미분무 소화설비의 판로개척 등에 대한 편의를 봐준 대가였다.

 

그는 2012년 6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을 선고받았고, 이듬해에는 국세청의 뇌물 종합소득세까지 추징 당했다. 국세청 과세에 대해서는 "의정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사용했을 뿐, 개인의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며 뇌물을 필요경비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뇌물을 준 사람에게 환원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상 과세대상 소득은 이미 실현된 것"이라며 최 전 의원의 주장을 묵살했다. 조세심판원도 "위법소득에 대한 국가의 추징은 범죄행위에 대한 부가적 제재"라며 소득세 과세가 적절했다고 판단했다.

 

▲ 뇌물에 대한 세금을 못 내겠다고 주장한 최철국 전 국회의원

 

◇ "뇌물 돌려주려고 했는데"

 

2010년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에 연루된 김병철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은 뇌물을 돌려주고 싶어도 여건이 허락치 않았다. 그가 검찰 수사를 받던 중 뇌물을 준 '함바 브로커' 유상봉씨가 구속 수감중이었기 때문이다. 뇌물을 반환하려고 검찰에 접견 신청도 해봤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유씨의 가족들도 행적을 확인할 수 없었다.

 

김 전 청장은 뇌물의 일부를 경비부대 위문금으로 사용했고, 교회 무료급식소에도 기부하는 등 좋은 일에 썼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축적한 돈이 없으니, 소득세를 납부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국세청과 조세심판원은 김 전 청장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만약 뇌물을 돌려줬더라면 세금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상태여서 국세청 과세 처분을 되돌릴 수 없었다.

 

◇ 박연차 게이트의 최후

 

2010년 정관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연차 게이트'에서도 뇌물의 세금 논란이 불거졌다.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농협 자회사인 휴켐스 인수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그는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뇌물에 대한 추징금도 2011년 2월에 모두 냈다. 국세청이 2012년 5월에 뒤늦게 소득세를 과세하자 정 전 회장은 "실제로 귀속된 소득이 없다"며 세금을 못 내겠다고 버텼다.

 

조세심판원은 정 전 회장의 불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뇌물 수수에 대한 형벌로 추징금이 부과됐는데, 뇌물을 준 사람에게 반환한 것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정 전 회장이 뇌물의 일부를 반환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국세청에 세금을 재조사해보라고 결정했다.

 

▲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

 

◇ 세관 공무원의 뒤통수

 

관세청 사상 최대의 세금 분쟁으로 남은 디아지오코리아 사건에서도 뇌물이 도마에 올랐다. 2004년 서울세관 조모 조사관은 디아지오코리아의 위스키 과세가격을 낮게 봐주고, 1억원의 뇌물을 받았다.

 

무심코 받은 뇌물 1억원의 대가는 혹독했다. 조 조사관은 징역 5년에 뇌물 전액을 추징금으로 냈지만, 국세청은 4800만원의 종합소득세까지 부과했다. 소득세법에서 뇌물이 기타소득에 규정된 것은 2005년인데, 자신은 2004년에 뇌물을 받았으니 과세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무공무원 답게 '소급과세 금지의 원칙'과 '엄격해석 및 유추해석 금지의 원칙'을 어겼다는 논리를 제시하며 과세당국의 뒤통수를 쳤다. 하지만 디아지오 측에 뇌물을 직접 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세금환급 시도는 실패했다.

 

뇌물을 받은 당사자는 세금이 억울할 수 있지만, 심판당국에 불복을 제기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과세당국 관계자는 "뇌물을 미리 돌려주면 세금을 피할 수 있다는 빈틈을 이용해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며 "뇌물에 대한 세금부과 규정을 강화하고, 무분별한 불복 제기도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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