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의 분수령이 될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MBK-영풍 연합 측의 수 싸움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법원이 MBK-영풍 연합이 요청했던 1월 임시주주총회 통화 안건 의결권 제한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다시 '표싸움'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다.
업계에서는 어느 한쪽이 우세를 잡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집중투표제를 사수하기는 했지만 주주총회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MBK-영풍 연합 측은 최윤범 회장보다는 많은 지분을 확보하긴 했지만, 최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를 두고 부정적인 여론이 강해진 것이 상당한 부담이다.

정기주총 소집 두고 고심하나
11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아직까지 제51기 정기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내지 못하고 있다. 관련 법상 주주총회는 결산일 이후 3개월 이내에 주주총회를 개최하도록 돼 있다. 2024년에 대한 결산보고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달 31일까지가 '데드라인'이다.
이는 앞선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 고려아연은 지난 2007년 이후 통상 2월 중, 늦어도 3월 첫째주에는 정기주총 소집을 공시했다.
이처럼 주총 소집 공고가 늦어지는 이유는 안건 등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기 주총 소집은 이사회의 결의 이후 확정해야 하는데, 이사회 자체가 열리지 못하면서 지연되고 있다는 얘기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정기주총 안건을 논의하는 이사회를 이번주 중 개최하고 계획을 공시할 것"이라며 "2주 전에 소집 공고를 공시하면 되기 때문에 3월 19일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주총에 올릴 안건 자체를 두고 최윤범 회장측과 MBK-영풍 연합간의 수싸움이 이어지면서 이사회 역시 늦어지고 있다고 본다. 경영권 확보를 염두에 두다보니 어떠한 안건을 올릴 것이냐부터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번 임시 주주총회 때와는 다르게 집중투표제를 통해 안건 가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카드를 내야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고려아연의 외국인 주주비율은 12%가량인데 어느 한 쪽 편만 들지 않고 사안별로 투자에 유리한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자 의견에 따라 상황이 갈릴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한쪽에게만 유리한 안건을 상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떤 카드 내놓을까
업계에서는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의 핵심은 고려아연의 이사회가 어떻게 구성되느냐로 본다. 지난 임시주주총회 통화 안건 중 새롭게 선임된 7명의 사외이사 안건 효력이 정지됐기 때문에 다시금 이사회를 꾸릴 사외이사를 추천해야 하는 상황이어서다.
일단 MBK-영풍 연합 측은 또 한 번 고려아연의 이사회 수 상한을 없애는 안건을 도입하면서 대규모로 사외이사를 추천해 경영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MBK-영풍 측에서 지난 임시주주총회에서는 10명의 사외이사를 추천했는데,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이보다 많은 인사들을 추천해서 이사회 장악에 나설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사회 과반 확보에 나선 이후 추가 임시 주주총회 등을 연이어 개최해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하는 시나리오란 얘기다. 최윤범 회장 측 역시 이사회 수성을 위한 명단을 다시금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확실한 카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고심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며 "일부 기관투자자들의 경우 인사 성격에 따라 찬성과 반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단순히 우호적일 것이라는 판단으로 후보를 골랐다간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진짜' 표대결
앞선 임시주주총회에서는 최윤범 회장 측이 MBK-영풍 측이 보유한 의결권을 상호출자제한이라는 카드로 제한했던 것과 달리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찐' 표대결이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전날(10일) 최윤범 회장 측은 고려아연의 지분 0.54%를 추가로 보유하게 됐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최윤범 회장 측의 지분 비율은 종전 17.50%에서 18.04%로 증가했고, 총 우호지분 역시 39.70%로 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기 주주총회를 위한 주주명부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막판까지 표를 확보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MBK와 영풍측은 현재 46.72%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전체적인 우호지분은 최윤범 회장 측보다 앞서지만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특히 이번 주주총회의 핵심은 신규 이사 선임이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지난 임시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서 단순 지분율이 높다고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집중투표제란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고 이를 원하는 후보에게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투표방식을 말한다. 지분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주주총회를 주도하기 어려울 수 있어 이번 정기 주총의 결정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캐스팅 보트'가 될 수 있는 나머지 주주들이 어느 손을 들어주느냐가 이번 정기주총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됐다. 이전보다 더 치열한 '표싸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기 주총 이전에 양 측이 주주 설득을 위한 총력전에 나설 것으로 업계는 관측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 측이 회사 임직원, 지역사회 등을 중심으로 표심 모으기에 열중해왔고 최근에는 직접 메시지를 내며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반면 MBK-영풍 측은 최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으로 인해 MBK의 투자전략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강해지고 있어 섣부르게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MBK-영풍 측은 일단 지분 자체가 최 회장 측보다 많기 때문에 물밑작업에 더욱 열중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