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마트 2위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홈플러스에 돈을 빌려준 증권사들이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홈플러스가 밝힌 금융권 채무 1조4000억원 가운데 메리츠증권과 하나증권이 각각 6500억원, 500억원의 담보대출을 내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부동산 신탁자산을 담보로 잡고 있어 기업회생절차에도 자금회수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홈플러스가 신탁자산 공매 시기를 미루는 안을 내밀 수 있다. 이 경우 자산회수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일단 증권사들은 부실채권에 대해 충당금을 쌓아야 할 처지다. 이 경우 회사 손익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개로 홈플러스가 운영목적으로 발행해 온 기업어음(CP), 전자단기채에 투자한 개인도 손실을 볼 위험이 높아졌다. 기업회생 신청 직전까지 CP를 통해 자금조달이 이뤄진 가운데 개인 및 법인에 CP와 전단채를 판 증권사도 책임을 물어야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7000억 빌려준 증권가‥자금회수 진짜 문제없나
홈플러스에 따르면 금융권 익스포져는 1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중 증권사가 직접 빌려준 차입금은 7000억원에 달한다. 메리츠증권이 6500억원으로 가장 많고 하나증권도 500억원의 대출을 내줬다. 신용평가사들은 아직 홈플러스가 회생계획안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금융권 익스포져가 존재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앞서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5월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과 함께 홈플러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 계약을 체결했다. 이때 홈플러스의 62개 점포를 신탁해 담보로 잡았다. 하나증권도 같은 자산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내줬다. 메리츠금융그룹과 하나증권은 해당 부동산 신탁에 각각 선순위, 중순위 수익권자다.
메리츠증권과 하나증권은 신탁자산을 담보로 잡고 있어 자금회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들이 담보로 확보한 부동산 수익증권의 감정가치는 4조8000억원으로 차입금 합계보다 많다. 담보 대비 대출금 비중(LTV)도 약 25%로 여유롭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에 돌입하면서 이들이 내준 담보대출채권은 당연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했기에 채권단은 언제든 담보로 잡아둔 부동산을 매각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법조계에서는 신탁수익권 처분을 통한 자금회수 시나리오에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과거 대법원은 저당권 등 일반적인 담보물권과 다르게 담보신탁 수익권은 회생절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른바 '도산절연' 수단이라고 판단해왔다. 따라서 기업이 회생절차에 도입하더라도 채권자에게 담보 우선수익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도산절연을 인정할 경우, 신탁수익증권을 공매에 넘겨 회생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티몬·위메프 사태 당시 채권자 변호를 맡았던 최효종 법무법인 린 변호사와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23년 4월 기고한 '담보신탁의 경제적 분석' 논문에 따르면, 담보 신탁의 도산절연을 인정할 경우 채무자의 계속기업가치(기업이 계속 영업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음에도 담보신탁 채권자의 버티기 전략에 따라 회생에 실패하는 채무자가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다.
최효종 변호사는 "(홈플러스와 메리츠금융지주) 양측이 이자율을 두고 치열하게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며 "만일 협상이 잘 되지 않아 메리츠금융지주가 공매를 밀어붙이면 홈플러스도 처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충당금 적립 부담은 불가피
만일 증권사들이 기한이익상실(EOD)을 선언하고 신탁자산 매각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실제 회수까진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자산건전성 훼손이 불가피하다.
한국신용평가는 금융권 중 홈플러스 관련 익스포져가 가장 큰 메리츠금융그룹의 재무건전성과 관련해 "각 업권별 건전성 분류기준 등을 참고할 때, 홈플러스에 대한 대출은 요주의이하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며 "담보자산의 환가(자산을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룹의 유동성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사는 채권이 '요주의'로 분류될 경우 의무적으로 채권 2%를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고정'으로 분류된 채권에 대해선 20%를 충당금으로 쌓는다. 충당금은 영업비용으로 분류돼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에 악영향을 미친다.
다만, 자금 회수가능성이 높은 만큼 반드시 쌓아야 하는 충당금 비율을 뺀 나머지는 대손준비금으로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손준비금은 충당금과 다르게 영업비용으로 잡히지 않고 세법상으로만 자산 차감 계정으로 분류된다. 즉, 손익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신평사 관계자는 "IFRS 회계기준에 따라 홈플러스 담보가치의 회수 가능성을 감안하면 상당 부분을 대손준비금 형태로 적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휴지조각 된 CP…불완전판매 가능성도
이와 별개로 홈플러스가 최근까지 찍어낸 CP, 전단채를 판매한 증권사들은 불완전판매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홈플러스가 운영자금 목적으로 발행한 CP와 전단채 발행잔액은 4일 기준 1880억원으로 집계된다. 홈플러스는 매월 25일 CP를 발행해왔는데,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일주일 전인 2월 25일에도 CP를 발행해 시장에서 돈을 빌렸다.
신영증권과 한양증권, BNK투자증권 등이 CP를 인수했으며, 물량 대부분을 대형증권사 리테일 창구를 통해 개인과 법인에게 재판매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에 들어가면서 단기채 신용등급은 A3-등급에서 가장 낮은 D등급로 하락해 사실상 휴짓조각이 됐다.
홈플러스의 최대주주이자 실질적인 경영주체인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가 발행한 CP와 전단채는 물론 홈플러스의 신용카드매입채무를 기초자산으로 증권사들이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모두 회생절차에 따라 승인되는 회생계획에 의해 변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관련 민원이 접수되진 않았다"며 "민원이 제기되면 내용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