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닷새만의 사과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가 지난 9일 처음으로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지난 4일 오전 기습적으로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지 닷새만의 일입니다.
홈플러스는 9일 오전 배포한 '신용평가 관련 입장문'의 가장 마지막에 "당초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도록 했어야 했으나 이런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깊이 사과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절차를 시작한 이후 연일 입장문을 쏟아내고 있지만 '사과'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건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같은 입장문에서 홈플러스는 "이번 회생절차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상거래채무의 결제를 포함해 모든 부분을 정상화 함으로써 협력사, 임대점주 및 고객들의 불안과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단기자금 채무를 포함한 금융채무를 회생계획에 따라 모두 변제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표현도 이전 입장문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말인데요. 이 입장문에서는 두 번이나 등장하죠. 홈플러스가 최근의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 한편 강한 해결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입장문은 공식적인 사과문은 아니었습니다. 해당 입장문은 홈플러스가 여러 재무지표가 개선되고 있던 상황이어서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해명하는 글이었죠. 기업회생 사태가 벌어진지 닷새가 지나서야, 그것도 긴 해명을 끝내고서야 단 두 문장으로 사과의 뜻을 드러낸 건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회적 파장 큰데...
홈플러스는 전국 126개 점포를 운영하는 국내 2위의 대형마트 사업자입니다. 연간 매출액은 7조원 수준이고 거래액은 10조원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그만큼 홈플러스와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이해관계자의 수가 많습니다.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직고용 인원은 2만명에 달합니다. 홈플러스에 물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는 1800여 곳, 입점 테너트는 7000여 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증권사, 은행, 국민연금 등 투자자들도 홈플러스와 채무로 얽혀 있죠.
이들 이해관계자 모두가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에 영향을 받습니다. 기업회생 제도는 자체적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벗어날 수 없게 된 채무자의 회생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기업이 파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제도죠. 이 과정에서 기업은 일부 채무의 상환을 연기하거나 탕감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홈플러스에게 투자한 돈을, 누군가는 홈플러스에게 받아야 할 대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이미 홈플러스의 금융채무 상환은 이미 유예됐고요. 일부 금융채권의 경우 상환 불능 상태로 전환되기까지 했습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 협력업체들과 임차인들 사이에서는 정산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홈플러스의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다 보니 사회적 파장도 상당합니다.
물론 홈플러스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펼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 7일 법원으로부터 회생채권 변제 허가 신청을 받으면서 모든 상거래채권을 순차적으로 지급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게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기습적인 기업회생 신청으로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사과가 한참 늦었다는 점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MBK는 어디에
일각에서는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책임론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던 건 MBK파트너스의 경영 실패 탓입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지난해부터 홈플러스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MBK파트너스의 책임은 더욱 막중할 겁니다.
하지만 MBK파트너스는 대주주로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대신 최후의 수단인 기업회생 절차를 택했습니다. MBK는 아시아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입니다. 자금 여력도 충분하죠. 그런데도 기업회생에 앞서 유상증자와 같은 자구 노력도 없이 빚을 다 갚지 못하겠다고 손 들었다는 점에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기습 기업회생 신청을 한지 일주일 여가 다 된 현재도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의 뒤에 숨어있을 뿐입니다. 홈플러스는 지난 4일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할 당시 입장문에서 "불가피하게 회생절차를 신청했으나 임직원, 노동조합, 주주 모두가 힘을 합쳐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라면서 MBK파트너스가 함께 이 사태를 해결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요.
이후에 홈플러스가 내놓은 여러 입장문, 설명문에서는 대주주, 즉 MBK파트너스의 역할에 대해 거론된 적이 없습니다. 홈플러스가 사과를 거론한 지난 9일의 입장문에서도 MBK파트너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물론 홈플러스가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는 것처럼 이번 사태는 '티메프' 때와는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MBK파트너스가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합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대주주로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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