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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회계사의 눈물]②올라갈 수 없는 사다리

  • 2016.10.21(금) 15:44

떠나는 저연차, 버티는 고연차
월급, 능력보다 '지분'이 결정

청년실업률이 10%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치열한 취업경쟁부터 고용불안까지 최악의 일자리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청년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자본시장의 파수꾼을 꿈꾸는 청년 회계사들의 말 못할 고민을 들어본다. [편집자]
 
▲ 그래픽: 유상연 기자 prtsy201@
 
A회계법인 감사본부에서 일한 4년차 공인회계사 한모씨는 지난 여름 사직서를 냈다. 회계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고 감사 업무도 적성에 맞았지만 반복되는 야근과 피로감,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연봉 등 근로조건이 그의 마음을 떠나게 했다. 
 
'감사=영업'으로 통할만큼 클라이언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회식 자리 등에서 이른바 '갑질'을 하거나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클라이언트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한씨는 감사 업무를 한마디로 '자료 구걸'이라고 표현했다. 
 
비단 한 씨만의 일이 아니다. 매년 회계법인을 떠나는 회계사는 1000명을 넘는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빅4 회계법인(삼일·안진·삼정·한영)을 그만 둔 공인회계사는 총 1189명에 이른다.
 
# 빈자리 '돌려막기'
 
회계법인은 이들이 떠난 자리를 경력직 회계사로 채운다. 소속 직원들의 고충을 해소해 주는 대신 타 법인에서 불만을 안고 퇴사한 회계사에게 조금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업무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이른바 '인력 돌려막기'다. 지난해 삼일회계법인에서는 418명이 떠나고 241명이 새로 들어왔다. 안진에서는 270명이 나가고 253명이 들어왔으며 삼정과 한영에서는 각각 332명, 169명이 퇴사하고 412명, 196명이 입사했다.
 
타 법인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근무조건을 바꾸는데 성공한 회계사도 있지만 아예 업계를 떠난 이들도 상당하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휴업 회계사는 8월31일 기준 2011년부터 2016년까지 5년 사이 총 2043명 늘었다. 2011년 4683명이던 휴업회원이 2012년 5003명, 2013년 5359명, 2014년 5921명, 2015년 6331명, 2016년 6726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한 결과다. 휴업회원은 법인을 떠나 회계사의 주된 업무인 감사를 하지 않고 민간·공공기관 등에서 일하는 회계사 자격증 소지자를 말한다. 
 
특히 10년차 미만 회계사들 사이에서 퇴사가 잦았다. 빅4 회계법인 중 삼일과 안진 등 2곳에서는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경력이 10년을 밑도는 구간에서만 '인력유출'이 발생했다. 삼일의 경우 1~3년 미만 회계사가 연평균 15.4%씩 줄었고, 3~10년 미만에서는 7.2%씩 감소했다. 안진에서도 1~3년 미만 회계사가 연평균 2.3%씩 줄었고 3~10년 미만에서는 8.2%로 감소폭이 더 컸다. 
 
 
# 10년차 회계사의 '용퇴(?)'
 
저연차 회계사의 퇴사율이 높지만 빅4 회계법인의 인력구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1~10년차 회계사다. 그만큼 신입 회계사가 매년 상당수 유입된다는 의미다.
 
2011년 이래 회계사 시험 합격자 수는 최소선발인원(850명)을 매년 웃돌았고 2012년에는 최대 998명에 육박했다. 회계법인에서 3년 가까이 몸 담고 올초 퇴사한 한 회계사는 "회계법인은 저연차 회계사가 나간 자리에 매년 1000명 정도씩 쏟아지는 신입들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계법인의 인력구조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경력 10년을 기준으로 그 이상에서 수가 급감한다는 점이다. 통상 경력 10년차 이상의 회계사는 지분을 가진 '파트너'가 돼 고액 연봉을 받게 되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 승진에서 밀려난 다수가 공식·비공식 압박을 견디다 못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자진 용퇴'를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회계법인들의 인력구조는 경력 계층마다 경사율이 높은 피라미드 구조를 보인다. 1~3년차 회계사의 퇴사율이 유독 높은 삼일회계법인에서는 이 마저도 갖추지 못한 채 '항아리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관련기사: 빅4 회계법인 파트너 되려면 '14년' 걸린다
 
이처럼 청년 회계사들이 법인을 떠나는 핵심 이유로는 높은 업무 강도를 못 따라가는 낮은 보상 체계라는 구조적 원인이 꼽힌다. 4년 간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지난 7월 퇴사한 또 다른 회계사는 "연봉 계약을 포괄임금제에 맞춰 하기 때문에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을 받을 수 없다"며 "하지만 회계법인에는 노조가 없어 이를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업무량 아닌 '짬'이 연봉 결정
 
포괄임금제에 묶인 연봉 계약으로 인해 일한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인 셈이다. 포괄임금제란 연장·야간근로 등 시간 외 근무수당을 연봉 협상시 미리 급여에 포함시켜 매달 고정적인 월급을 지급하는 제도다. 업무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도 월 수령액은 그대로라는 얘기다. 
 
감사 클라이언트 대다수가 결산을 연말에 하는 '12월 결산법인'인 탓에 연초 몇 달 간은 새벽 퇴근이 일상이 된다. 이어 용역 마감이 가까워지면 주말 근무도 흔하지만 포괄임금제로 인해 추가 수당은 기대할 수 없다. 이른바 '스페셜'이라 불리는 상여금이 지급되지만 이 역시 회계사 개인의 업무 역량과는 별 연관이 없다. 더욱이 최근에는 회계법인의 주된 수입원인 감사의 단가 하락 등으로 상여금마저 과거보다 크게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결국 법인 소속 회계사의 월급을 결정짓는 요소는 경력년수와 지분율이다. 그런데 지분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파트너가 된 고연차 회계사만이 쥘 수 있다. '억대 연봉 회계사'는 회계법인 내 고위직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도진 중앙대 회계학과 교수는 "상후하박식 임금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회계업계의 사활이 걸린 회계 투명성 개선을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했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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