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랄 발표가 있을 것."
3년 전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기업 총수가 공개 석상에서 취재진에게 '깜짝 놀랄만한 일'을 예고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깜짝 놀랄 일이라고 했는데 사실 별것 아니라면 김만 새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고요. 게다가 호기심이 생긴 이들이 온갖 추측을 쏟아낼 경우 쓸데없이 시달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정 부회장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아마도 준비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지난 2017년 5월 '깜짝 발표'를 하겠다고 언급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8월에도 기자들을 만나 "연말께 깜짝 놀랄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깜짝 발표 시리즈'라고 할 만한 일입니다. 이후부터 정 부회장이 기자들과 만나는 공식 석상이 예정된 경우 '이번에도 과연 깜짝 발표가 있을지'를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정 부회장이 처음 예고한 '깜짝 발표'는 바로 편의점 사업과 관련한 일이었습니다. 그간 위드미로 영업해왔던 편의점의 사명을 '이마트24'로 바꾸면서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건데요. 국내 유통업계 대표 격이었던 '이마트'의 이름을 활용하기로 한 만큼 편의점 업계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마트24는 이후 공격적으로 점포를 확장하면서 눈길을 끌기도 했고요.
정 부회장이 그해 8월에 예고한 두 번째 '깜짝 발표'는 온라인 사업이었습니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의 온라인 사업부를 통합하고 1조원을 추가로 수혈해 이커머스를 전담하는 신설 온라인 법인을 만들겠다는 건데요. 이를 그룹 내 핵심 유통채널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이게 바로 SSG닷컴(쓱닷컴)이라는 자회사입니다.
신세계는 이전에도 쓱닷컴이란 이름의 통합 플랫폼이 있긴 했는데요. 이 플랫폼을 구성하는 신세계몰과 이마트몰의 인적·물적 자원이 분리돼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아예 통합 법인을 설립하겠다는 게 구상의 핵심이었습니다.
정 부회장이 신세계그룹 내에서 담당하는 이마트 부문의 맏형은 단연 대형마트입니다. 그런데 쿠팡 등 온라인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대형마트 산업은 제자리걸음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이 편의점과 이커머스를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지목한 건데요. 신세계가 앞서 이마트를 국내 대형마트 업계 1위로 키워낸 만큼, 과연 신사업에서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이마트의 편의점과 이커머스는 사업 초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듯했습니다. 사업 초반에는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아야 하기 때문에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비용도 늘게 마련인데요. 결국 실적은 안 좋을 가능성이 큰데, 시장에서는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습니다. 이마트라는 이름에 비해 실적 개선이 더딘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편의점과 SSG닷컴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안 그래도 어려워지고 있는 그룹에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9월 한 증권사 연구원은 "SSG닷컴과 이마트24 등의 부진으로 연결자회사 영업이익이 적자 전환될 것"이라면서 "올해 4분기까지 부진한 실적 흐름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SSG닷컴의 경우 81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고요. 이마트24는 281억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증권가의 예상대로 지난해 4분기 역시 쓱닷컴은 362억원, 이마트24는 103억원의 적자를 내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마트 측에서는 사업 초기이기 때문에 시장에 자리잡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적자도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서서히 '반전'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계기가 됐는데요. 순식간에 비대면 소비가 '대세'가 되면서 SSG닷컴이 주목받기 시작한 겁니다. 이에 따라 쓱닷컴의 올해 1분기 매출은 91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급증했습니다. 여전히 영업적자가 197억원에 달하지만, 매 분기 적자 폭을 줄여나가며 내실도 갖춰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증권가에서는 SSG닷컴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이마트가 보유한 신선식품에 대한 경쟁력이 SSG닷컴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온라인 신선식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쿠팡이나 G마켓, 11번가와는 차별화한 경쟁력으로 점유율을 키워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마트24에 대한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마트24는 이미 포화 상태로 평가받는 국내 편의점 시장에서 몸집을 키울 여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인데요. 이런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점포를 늘리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점포수는 209개가 늘었고요. 이에 따라 총 점포 수는 4697개점이 됐습니다.
이마트24 측에서는 손익분기점 달성을 위해서는 점포가 최소 5000점은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고지'가 멀지 않습니다. 실제로 점포를 늘어나는 만큼 적자가 줄어들고 있기도 합니다. 이마트24는 올해 1분기 영업적자 8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적자 폭을 13억원 개선한 실적을 내놨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편의점 산업 자체가 활성화하는 분위기인데요. 이마트24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실적 개선의 속도가 더욱더 빨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니 이마트 부문에 대한 전망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DB금융투자는 최근 리포트를 통해 "이마트24의 적자 감소와 쓱닷컴의 시장지배력 강화 등을 고려하면 이마트의 분기 실적 턴어라운드가 기대된다"라면서 "변화하는 유통 시장에서 이마트의 중장기적 헤게모니 강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실 2~3년 전 정 부회장이 '깜짝 소식'을 연달아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도 없지 않았습니다. 속 빈 강정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마트가 차기 주력 사업으로 공언했던 SSG닷컴과 이마트24가 꾸준한 실적 개선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 업체들이 이미 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장은 언제 또 변할지 모릅니다. 과연 정 부회장이 공언했던 깜짝 놀랄 만한 사업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될까요. 앞으로 이 주인공들이 어떤 행보를 펼쳐나갈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