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대형 유통기업은 저마다 PL(Private Label), PB(Private Brand)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PL은 유통사가 제조업체에 주문, 생산한 상품에 자체 상표를 붙여 파는 자체 브랜드 상품을 말한다. 판로가 이미 마련돼 있으니 제조업체가 직접 상품을 알릴 필요가 없다. 그런 만큼 마케팅, 유통비용 없이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것이 장점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PL 상품은 값만 싸고 품질은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높은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을 모두 잡은 브랜드가 등장하며 PL 시장 판도를 완전히 바꿔놨다. 바로 국내 1위 대형마트 이마트의 PL 브랜드 '노브랜드'다.
2015년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탄생한 노브랜드는 이마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까지 사랑 받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국내외 소비자를 사로잡은 노브랜드의 비결이 무엇인지 김혜영 이마트 NB상품담당PN개발팀장에게 들어봤다.
소비자가 먼저 알아본 품질
이마트가 노브랜드 론칭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이미 시중에 여러 경쟁 PL 브랜드가 있었다. 이마트 역시 노브랜드 이전에도 많은 PL 상품을 개발해 판매해왔다. 하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NB(National Brand), 즉 일반 제조사 제품을 더 선호했다.
김혜영 팀장은 "이마트는 당시 이미 10년 이상 많은 PL 상품을 선보였고 노하우도 갖추고 있었다"며 "그런데도 왜 PL 상품은 일반 상품보다 소비자들에게 덜 선택 받는지, 그저 가격만 싼 것이 문제인지 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좋은 상품들이 참 많았지만 소비자들에게 선택 받지 못해 사라지고 또 새로운 상품이 개발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PL 상품도 '브랜드'로 만들어야겠다는 니즈가 생겨났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시작된 노브랜드는 마케팅을 비롯한 제반 비용을 최소화 하고 상품에만 집중해 가격, 품질을 모두 잡는 브랜드로 탄생하게 됐다. 노브랜드가 처음 론칭한 제품은 1호 제품인 '뚜껑 없는 변기 커버'를 비롯한 9가지 제품이었다. 현재 노브랜드의 인기 제품 다수가 식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호 제품이 변기 커버라는 점은 다소 의외다. 하지만 이 제품의 탄생도 노브랜드의 콘셉트와 관련돼 있다.
김 팀장은 "노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불필요한 요소를 줄여서 최적화된 가격의 상품을 보여주겠다는 콘셉트로 출발했다"며 "당시에는 변기에 뚜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적을 때여서 불필요한 뚜껑을 제거해 원가를 낮춘 변기 커버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상품은 1호라는 상징성은 있었지만 판매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마트는 소비자들이 저렴하면서도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먹거리로 눈을 돌렸다. 이마트가 꽂힌 상품은 감자칩이었다. 김 팀장은 "감자칩은 당시 유명한 NB 브랜드 제품이 있었지만 다소 값이 비쌌다"면서 "식품 박람회에도 가보고 제조사를 찾으면서 감자칩을 1호 가공식품으로 선보이게 됐다"고 밝혔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현재 누적 판매량 6000만개의 '노브랜드 감자칩'이다. 노브랜드의 첫 히트 상품이었다. 잇따라 선보인 '노브랜드 버터쿠키' 역시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쿠키의 맛도 좋았지만 쿠키를 담은 통이 입소문을 탔다. 감자칩과 버터쿠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노브랜드의 브랜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브랜드 대신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마케팅을 해준 셈이다.
김 팀장은 "상품이 나온 후 고객들이 온라인에서 제품이 좋다고 알려주셨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상품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며 "이렇게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내놓을 수 있는 선순환으로 브랜드가 빠르게 성장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브랜드 론칭 이듬해인 2016년에는 노브랜드 상품만 판매하는 오프라인 전문점을 내는데도 성공했다. 김 팀장은 "1호점을 오픈할 당시 잘 될 수 있을지 회사에서는 정말 걱정이 많았다"면서 "많은 고객들이 저희 상품의 가치에 대해 알아봐 주시면서 점점 매장도 확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까다롭게 철저하게
노브랜드의 상품은 △소비자 분석 △제조사 발굴 △상품 개발 △검증 △품질 관리를 거쳐 출시된다. 소비자 분석은 이마트의 매출 데이터나 SNS, 시장 트렌드 등을 살펴보는 과정이다. 소비자가 반복 구매한 상품이 무엇인지, 최근 인기를 끄는 품목이 무엇인지 등을 살핀다. 이 과정에서 상품이 결정되면 가격대도 설정한다.
김 팀장은 "상품을 하나 개발하기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상품의 가격을 평상 시의 가격, 프로모션 가격, 온라인 최저가 등까지 모두 정리한다"며 "일반 NB 브랜드보다 30%~50% 가량 싸야하고 다른 유통사의 PL 브랜드보다도 20% 가량 저렴한 가격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제조사 찾기다. 계획된 상품을 잘 생산할 수 있는 우수 제조사를 찾는 것이 가장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부분이다. 그는 "제조사와 함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한다"면서 "하지만 원료, 품질 측면에서 비용을 낮추지 않고 포장재, 디자인 등을 줄이고 검사 비용은 이마트에서 지원하는 식으로 원가를 낮출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낮추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상품 개발 단계에서는 같은 상품이더라도 합리적인 가격과 우수한 품질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차례 테스트 생산을 한다. 이렇게 개발된 상품은 노브랜드 담당 30여 명의 바이어가 모인 바이어 컨벤션을 통해 품질과 가격을 점검한다. 식품이라면 다같이 맛을 보고 품평한다. 노브랜드 담당 임원부터 막내 사원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장점이다. 김 팀장은 "다양한 연령대, 성별의 임직원들이 직설적으로 의견을 교환한다"며 "젊은 친구들이 트렌디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면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품 개발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가격과 품질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개발이 힘들었던 상품은 2016년 출시된 '노브랜드 라면 한그릇'이다. 김 팀장은 "라면은 제조사가 소수의 대기업으로 한정돼 있는 데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정말 다양하다는 점 때문에 개발이 어려웠다"면서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상품이라 최저가를 맞추기 어려웠지만 '든든한 한끼'가 돼야 한다는 점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이 상품에 대해 노브랜드 담당 직원들의 애정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마트는 제조사와 수십 차례의 협의를 진행했다. 바이어 컨벤션에서도 수십차례 면발과 스프를 테스트했다. 이렇게 라면 한그릇 제품을 개발하는 데만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가격은 5개 묶음에 1980원, 개당 400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책정됐다. 원자재 상승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가격을 인상하긴 했으나 여전히 라면류 중 가장 가격이 낮다.
김 팀장이 개인적으로 재밌게 개발했던 화장품이다. 김 팀장은 2016년 처음 노브랜드에 합류했을 당시 화장품 바이어였다. 당시에는 로드숍 등 저렴한 화장품들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었다. 김 팀장은 "브랜드 없이 화장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며 "이마트에서는 화장품이 상대적으로 매출 비중이 작기 때문에 어떤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김 팀장이 만들어낸 상품은 9900원 짜리 '쿠션' 화장품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품질이 높아 소비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 노브랜드 전문점에서는 별도 화장품 매대를 두고 기초, 색조 화장품을 선보이고 있다. 화장품 외에도 노브랜드에서는 식기세척기 세제, 염색약 등 '비식품' 상품도 인기가 높다. 정용진 이마트 회장이 과거 자신의 SNS에서 홍보했던 골프장갑도 인기 아이템이다.
국내 넘어 해외로
이런 과정을 거쳐 노브랜드는 매달 20여 개의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10년간 가장 인기를 끈 제품은 판매 수량 기준 '노브랜드 미네랄 워터'다. 10년간 무려 4억개나 팔렸다. 누계 매출 기준으로는 '굿모닝 밀크'가 가장 많이 팔렸다. 누적 매출은 2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 굿모닝 밀크의 경우 이마트와 중소기업의 협업이 빛난 사례다. 굿모닝 밀크 제조사는 부산우유다. 경상 지역 기반 기업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그런데 노브랜드 우유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판로를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김 팀장은 "우유는 신선해야 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유통하기 까다로운 상품"이라며 "처음 부산우유와 거래할 때 모든 생산품을 이마트가 다 직매입해서 소진해주겠다는 조건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중소기업인 부산우유가 생산 부담을 덜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사례는 당시까지 한국에서 없었다고 한다.

부산우유의 사례처럼 노브랜드는 여러 중소기업 협력사와 함께 성장해왔다. 10년간 노브랜드가 협업한 국내 중소기업은 300여 곳에 이른다. 현재 노브랜드 상품의 70% 이상을 중소기업에서 만든다. 최근 노브랜드의 판로는 이마트, 250여 개 전문점 외에 이마트24와 이마트에브리데이로 확대되고 있다. 노브랜드는 이마트24와 이마트에브리데이 전용 상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특히 노브랜드는 해외 수출을 늘리며 중소기업의 판로 역할을 하고 있다. 노브랜드는 2016년부터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파라과이, 베트남, 몽골, 필리핀, 라오스,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 2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 중이다. 이 중 몽골은 이마트에서 판매 중이며, 필리핀과 라오스는 노브랜드 전문점 형태로 진출했다. 지난해 말 오픈한 라오스 1호점의 경우 오픈 당일 최고 매출을 쓰며 큰 화제를 모았다. 현지 고객과 교민들의 반응이 뜨거워 현재 2호점 출점을 준비 중이다.

이렇게 노브랜드는 지난해 매출액 1조39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론칭 첫해 매출(234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60배 가량 성장했다.
10주년을 맞은 노브랜드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김 팀장은 "앞으로 20년, 30년 장수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노브랜드의 가성비 철학으로 소비자분들에게 삶의 혜택을 줄 수 있는 이 마음이 변치 않고 잘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수출 등으로 통해 중소기업에게 도움이 되는 브랜드가 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