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편집자]
*본 리뷰는 기자가 제품을 직접 구매해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살풀이
'삼양1963' 출시 기자간담회가 열린 지난 3일은 삼양식품에게 매우 중요한 하루였다. 단순히 신제품 하나를 선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1989년 이후 삼양식품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우지파동'이라는 네 글자를 떼어 내기 위한 날이었다. 이날 행사는 김정수 부회장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발표에 나섰다. 신제품 출시 간담회에 그룹의 수장이 직접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삼양식품이 이 행사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는 의미다.
김 부회장은 이날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여론 속에서 공업용 우지라는 단어가 우리를 무너뜨렸고, 공장에 불이 꺼지고 수많은 동료가 떠나야 했다"고 회상했다. 김동찬 삼양식품 대표도 "그 당시 이런 일들이 익명의 투서 한 장에서 시작됐다"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참 무책임한 일이었고 이 일로 한 기업이 무너질 뻔했다"고 말했다.
삼양식품이 이날 신제품 발표회 장소를 남대문 시장 인근으로 정한 것도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라면 개발을 결심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은 이날 AI로 복원한 전 명예회장의 영상을 띄우고 우지파동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이 신제품을 맛보는 모습도 공개했다. 날짜 역시 우지 파동과 관련된 고소장이 검찰에 접수된 '11월 3일'로 정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삼양1963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36년 만에 소기름으로 튀긴 라면이 부활했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다. 우지라면, 아니 삼양1963은 과연 이야기된 것만큼 대단한 맛이었을까. 아니면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신제품 중 하나가 될까. [슬기로운 소비 생활]에서 맛보기로 했다.
햄 없는 삼양라면?
삼양1963의 네이밍에 쓰인 '1963'은 삼양라면이 처음 나온 해다. 당초 삼양라면이 우지로 튀긴 라면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제품명 옆에도 한자로 소 우(牛)자를 새겼다. 이 때문에 이 라면이 기존 삼양라면과 비슷한 베이스에 면만 우지로 튀겼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많다.
사실 삼양1963은 삼양라면의 후속 혹은 업그레이드라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라면이다. 햄 베이스의 고소하고 기름진 국물이 특징이었던 삼양라면과 달리 삼양1963은 칼칼한 매운 맛이 강조됐다. 새로 만든 액상스프와 후첨스프 역시 베이스가 사골, 육류, 버섯, 대파 등이 중심이 돼 있다.
특히, '햄'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기존 삼양라면의 분말스프가 '부대찌개베이스'와 '햄맛 분말'을 중심으로 맛을 잡은 것과 비교된다. 날이 갈수록 매워지는 라면 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해 '순한 맛'인 삼양라면보다 맵고 칼칼한 맛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맛을 봐도 삼양라면과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삼양식품이 강조한 우지와 팜유의 차이점을 찾기에 앞서 국물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삼양식품이 강조한 '면'의 차이를 느끼기엔 국물 베이스의 차이가 너무 커서 이 맛의 차이가 우지와 팜유의 차이인지 스프의 차이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문제는 결국 '햄맛'이다. 국내 '3대 국물 라면'이라 부를만한 신라면, 진라면, 삼양라면은 모두 자기만의 개성이 확실하다. 신라면은 진한 표고버섯 풍미, 진라면은 깔끔하고 칼칼한 맛, 그리고 삼양라면은 '햄맛'이다. 2000년대 후반 삼양라면의 '햄맛'이 사라졌다는 내용의 '햄맛 파동'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삼양라면의 정체성이 '햄맛'에 있다는 방증이다.
'삼양라면' 브랜드를 따로 떼 놓고 신제품의 맛만 보자면 착실하게 최근 프리미엄 라면의 트렌드를 반영했다. 국물은 액상스프에 후첨스프를 더해 진한 맛과 풍미를 강조했다. 비슷한 구성의 농심 신라면 블랙이 후첨스프로 다소 걸쭉한 농도의 스프를 구현했다면 삼양1963은 후첨스프를 쓰면서도 맑고 깔끔한 국물을 유지한 게 특징이다. 삼양라면의 캐치프레이즈인 '깔끔한 감칠맛'을 잘 살렸다. 삼양라면의 햄맛을 선호하지 않던 소비자가 '신제품 프리미엄 라면'으로 접근한다면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
아쉬운 마음에 새로운 조합을 시도해 봤다. 오로지 '우지 면'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기존 삼양라면의 스프에 삼양라면1963의 우지 면을 넣어 끓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개인적으로 기존 삼양라면이 약간 '묽은 맛'이라고 생각해 선호하지 않았는데 우지 면과 섞이니 진한 맛이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기존 삼양라면의 풍미는 유지하면서도 진한 맛이 보강돼 더 '요즘 라면'에 가까워졌다.
'프리미엄 라면'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을까. 삼양라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지라면을 복원하는 것을 넘어 액상스프와 후첨스프라는 새로운 시도까지 더한 게 과유불급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가격까지 치솟았다. 대형마트 기준 기존 삼양라면이 개당 736원꼴인 데 비해 삼양1963은 1538원으로 배 이상 비싸다. 삼양식품은 '우지'를 앞세워 오리지널리티를 복구했다고 생각해 '1963'이라는 이름을 붙였겠지만, 햄 없는 삼양라면을 맛보고 나면 '이건 나의 삼양라면이 아니야'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