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웨스틴 조선 서울 20층의 이그제큐티브 라운지 '웨스틴 클럽'에 100여 명의 투숙객들이 모였다. 김장철을 맞아 열린 '김치 만들기' 시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시연의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휴대폰을 드는 투숙객부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투숙객들까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시연을 지켜봤다.
시연 후에는 김치를 자신의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지, 이 신맛이 어디서 오는 건지 묻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해외에 오래 거주한 한국인 투숙객들이 "김장은 원래 여자들만의 문화였는데 요즈음은 남자들도 많이 도와준다"며 외국인들에게 김장 문화의 변화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제는 외국인들도 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문화적 배경까지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장터가 된 라운지
지난 27일 오후 6시. 두 번째 김치 시연을 보기 위해 웨스틴 조선 서울을 방문했다. 웨스틴 클럽 라운지 입구부터 배추와 고추 모형이 달린 머리띠가 놓여 있어 김장 시연이 이뤄지는 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외국인 투숙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마련된 소품들이었다. 직원들도 유니폼에 배추잎과 고추 모양 뱃지를 달고 나와 이벤트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김치 시연은 김병오 조선호텔앤리조트 김치생산팀장이 맡았다. 김 팀장이 한국어로 설명하면 통역을 맡은 직원이 바로 영어로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시연 테이블 위에는 배추부터 젓갈 등 주요 재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진열해뒀다.
김 팀장이 이날 선보인 김치는 '겉절이'였다. 김 팀장은 먼저 "일반적으로 겉절이는 일반 배추를 찢어서 사용하지만 오늘은 이 알배기 배추를 칼로 썰어서 사용하겠다"고 소개했다. 이어 젓갈, 찹쌀풀, 고춧가루 등 김치의 또다른 재료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찹쌀풀은 양념을 잘 버무릴 수 있게 해주고 유산균의 먹이가 돼서 좋은 발효가 일어나도록 돕는다"며 김치의 '발효'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또 고춧가루를 설명할 때는 "원래 김치는 조선시대 중반까지만 해도 하얀 김치였지만 고추가 들어오면서부터 빨갛게 변했다"는 역사적인 설명도 곁들였다.
김 팀장이 미리 만들어둔 양념을 배추에 붓고 버무리기 시작하자 투숙객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김 팀장은 "로메인이나 치커리로도 이렇게 김치를 만들 수 있다"며 외국인들에게 친숙한 재료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갓 만든 겉절이는 즉시 접시에 담겨 투숙객들이 맛볼 수 있도록 했다. 겉절이가 담긴 접시를 받아가며 많은 외국인들이 김 팀장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시연 테이블 바로 옆에는 배추김치, 오이소박이, 백김치, 알타리 김치, 파김치 등 5가지 김치가 준비돼 다양한 김치를 맛보는 것도 가능했다.
이날 참석한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에드워드 투로비치(Edward Turovich) 씨는 "매우 훌륭한 문화적 경험이었으며 김치 구성도 좋고 정통적인 맛이 인상적이었다"며 "특히 알타리무김치와 오이 소박이 김치를 정말 맛있게 즐겼다"고 밝혔다. 투로비치 씨는 조선호텔 김치의 해외 배송이 가능한지도 궁금해 할 정도였다. 메르히(Merhi) 씨도 "뜻밖에 멋진 저녁 시간이었고 김치 테이스팅 스테이션도 훌륭했다"며 "김치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이 매우 유익하고 교육적이었다"고 말했다.
라운지의 음식들도 김치 시연에 맞춰 제공됐다. 김치 시연 첫날에는 겉절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수육이 제공됐다. 이튿날에는 닭갈비와 동치미가 테이블에 올랐다. 떡갈비, 전통주 등 다양한 한식 메뉴도 함께 마련했다.
관광 넘어 체험으로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이런 문화 체험 이벤트를 시작한 건 코로나19가 회복 추이를 보인 2023년부터다. 초기만 해도 한국 음식 하나와 전통주 한 잔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K콘텐츠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벤트 규모도 점점 커졌다. 웨스틴 클럽에서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테마 이벤트를 열어 한국 전통 문화를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 4월과 9월 진행된 '조선문방구'가 대표적이다. 라운지를 레트로 콘셉트로 꾸미고 뽑기 이벤트를 곁들여 소떡소떡, 호떡 같은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했다. 옛날 교복까지 준비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또 6월에는 '조선주막'을 테마로 공기놀이, 팽이,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와 함께 맥적구이, 파전, 도토리묵 같은 음식을 준비해 호응을 얻었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소맥 제조법부터 복분자 칵테일까지 한국 전통주의 다양한 즐기는 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호텔리어가 직접 소맥을 말아주고 고객들이 그대로 따라 만들어보면서 한국 주류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지난달에는 해금과 가야금 공연을 열어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전통악기로 연주해주기도 했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최근 한국 전통 목욕 문화인 '세신' 서비스를 결합한 패키지도 마련했다. 세신 서비스는 앞서 조선호텔앤리조트의 또 다른 호텔인 레스케이프에서 먼저 선보였는데 반응이 뜨겁다. 처음엔 세신이 낯설어 거부감을 보이던 서양권 고객들도 한번 경험한 후에는 시간을 더 추가해 즐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조선호텔앤리조트가 K콘텐츠 이벤트를 확대하는 배경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패턴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명동이나 경복궁 등 쇼핑과 관광명소 방문에 집중하는 여행객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정형화된 관광에서 벗어나 김치 담그기, 한복 체험, 전통차 시음 등 실제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려는 니즈가 급증하고 있다. 'K드라마'와 'K팝' 등을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외국인들이 단순한 관광을 넘어 '한국인처럼 살아보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이런 K컬처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음달에는 '조선 윈터 파티'라는 이름으로 가면 무도회를 연다. 한국 전통 무늬가 들어간 종이 가면을 쓰고 레드카펫을 걸으며 칵테일 타워와 함께 연말 파티를 즐기는 콘셉트다.
김준엽 웨스틴 조선 서울 객실팀장은 "코로나19 이후부터 한국의 음식, 문화 등 K콘텐츠 자체에 대한 고객들의 궁금증이 높아 K컬처 체험 이벤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며 "11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대표 호텔로서 한국을 대표해서 알리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