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법정관리 신청 1년을 한 달 여 앞두고 생존 기로에 섰다. 회생 계획의 핵심인 긴급운영자금(DIP) 대출 조달이 불투명해지면서다. 직원 급여 지급조차 어려울 정도로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면서 청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미온적인 이유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에서 총 6000억원을 확보해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3000억원 규모의 긴급운영자금(DIP) 대출과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을 통해 각각 3000억원씩을 조달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전국 10개 점포를 매각해 1000억원 이상을 추가로 확보하면 운영이 가능하다는 게 홈플러스의 입장이다.
이 계획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DIP 조달이다. DIP는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이 사업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받는 긴급 자금을 말한다. 홈플러스 대주주 MBK파트너스는 자신과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 산업은행이 각각 1000억원씩 분담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하지만 회생계획안 제출 후 한 달이 넘도록 DIP 조달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금 분담을 요청받은 메리츠금융그룹와 산업은행이 모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은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메리츠증권을 대표 채권자로 하는 홈플러스 채권자협의회는 지난달 6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계획안의 수행 가능성과 청산가치 보장 원칙 준수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안이 실제로 수행 가능한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메리츠금융그룹이 이런 입장일 수밖에 없는 것은 홈플러스의 청산이 회생보다 유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지정한 조사위원 삼일회계법인이 지난해 6월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3조6816억원)는 계속기업가치(2조5059억원)보다 높다. 홈플러스가 계속 사업을 영위하는 것보다 청산하는 쪽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1조원 이상의 채권을 보유한 메리츠금융그룹으로서는 홈플러스의 회생계획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경우 원금 회수조차 어려워질 수 있어 추가 자금 지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도 DIP 대출 참여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통상 DIP 대출은 기존 채권자나 주채권은행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홈플러스의 채권단이 아니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먼저 나서기도 어렵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민간 유통기업 지원에 대한 명분도 부족한 상황이다.
먼 갈 길
DIP 조달이 불발될 경우 홈플러스가 청산으로 갈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 회생계획안에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구상도 담겨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가를 과거 8000억원 수준에서 3000억원으로 대폭 낮춰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전국 290여 개 점포를 3000억원에 판다는 건 상당히 낮은 가격이다. 그만큼 홈플러스가 회생에 대해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 홈플러스가 필요로 하는 운영자금은 이보다 훨씬 많다.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는 지난달 21일 국회 긴급 좌담회에서 "올해 홈플러스의 1년 운영 자금은 줄어든 점포 규모를 고려할 때 6000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DIP 3000억원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3000억원을 합쳐야 홈플러스의 1년 운영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설령 DIP 조달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이 모두 이뤄진다 하더라도 홈플러스의 완전한 회생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는 점이다. DIP는 회생기업의 긴급 운영자금인 만큼 통상 시장금리보다 높은 이자율이 적용되는 고금리 단기 자금이다. 미래 현금흐름을 앞당겨 쓰는 수준에 그친다는 의미다. 결국 홈플러스가 사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수익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부채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
악화일로
홈플러스의 현장 상황은 이미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현재 홈플러스는 세금 1400억원을 체납하고 있다. 협력업체들의 납품 중단도 이어지고 있다. 대금 지급 지연이 반복되면서 거래처들이 공급을 꺼리기 시작해서다. 매장마다 매대가 비어가면서 고객 이탈도 심화하고 있다. 유통업 특성상 상품 조달에 차질이 생기면 매출이 즉시 감소해 결국 다시 현금흐름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도 가속화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2일 인천 계산점과 천안 신방점 등 5개 점포의 영업을 추가로 종료했다. 인력 구조조정도 본격화됐다. 홈플러스는 본사 차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접수를 시작했다. 심지어 직원 급여 지급도 밀리고 있다. 홈플러스는 최근 내부 공지를 통해 직원들의 1월 급여 지급을 무기한 유예한다고 통보했다. 명절마다 지급해오던 상여금 지급도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과 임대점주, 납품업체들은 DIP 조달과 정부 지원을 간곡히 요청하고 있다.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지난 2일 정부와 국회를 대상으로 긴급운영자금 지원을 촉구하는 청원을 진행했다. 홈플러스 임대점주 약 2100명과 납품업체 약 900곳도 지난달 30일과 지난 3일 각각 국회와 금융위원회, 대통령실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홈플러스가 무너질 경우 3900개 임대점주와 홈플러스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의존하는 2071개 납품업체가 함께 무너질 것이라는 호소다.
반면 민주노총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와 전단채 투자 피해자들은 DIP 대출에 반대하고 있다.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책임지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이유에서다. 마트노조는 지난달 26일 김광일 홈플러스 공동대표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소했다. 이들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리매각과 회생계획안에 반대하며 MBK파트너스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 전단채 투자 피해자들도 MBK파트너스의 실질적 자구책이 없는 회생계획안을 반대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매달 필요로 하는 운영자금을 감안하면 DIP 조달 지연은 회생계획 전체를 흔들 수 있다"며 "익스프레스 매각도 성사 여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지금이 고비"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