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결국 코로나19 피해를 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받은 대출의 만기연장과 이자상환유예 조치를 연장하기로 했다. 애초 이 조치는 3월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 조치의 연장 필요성이 제기된 영향이다.
이에 대출 만기연장, 이자상환유예 등의 혜택을 받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고정지출에 대한 걱정을 한숨 덜게 됐다.
하지만 금융권 이들에 대한 대출지원은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라는 지적도 여전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이 갚아나가야 하는 빚의 양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빚은 갚으라'던 스탠스를 명확히 하던 고승범 금융위원장 역시 이번에 한달여 만에 태도를 바꾼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결국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공세에 못이겨 그간 제시해왔던 길을 벗어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정부, 코로나19 대출지원 결국 연장
28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시중은행장 간담회에서 "코로나19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만기연장, 상환유예 조치를 한차례 더 연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애초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올해 초만 하더라도 원래 계획대로 이 조치를 내달 종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강조했었다. 지난달 19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금융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갖고 "만기연장, 이자상환유예 조치가 근원적 해결방안은 아니다"라며 "상환능력이 낮아진 잠재부실 채권이 지속해서 누적되면 금융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입장을 한 달만에 뒤바꾼 셈이다.
고승범 위원장이 입장을 선회한 이유는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지원 조치를 연장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여야는 최근 소상공인,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지원 조치를 연장하는데 합의했고 21일 국회에서는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부대의견으로 달기도 했다.
고 위원장 역시 "정부 역시 현재 자영업자들이 당면한 어려움에 공감하고 여야 합의에 따른 국회의 의견을 존중한다"며 이번 연장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빚 갚으라던 고승범…대선에 방침 선회했나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취임 이전부터 '빚은 갚아나가야 한다'라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그 결과 취임직후 가계부채총량관리를 엄격하게 시행하기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차주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은행권 도입 등을 통해 대출의 문턱을 대폭 올려놨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도 이같은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당장 지난달 열렸던 전문가들과의 간담회에서 "(대출지원 정책을 펼친)지난 2년간 자영업 부채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훌쩍 뛰어넘었다"며 "적극적인 유동성 지원으로 자영업자가 상환해야 할 빚이 늘어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상환 필요성을 전달한 셈이다.
이런 태도를 보이던 고승범 위원장이 자영업자·중소기업 대출 지원 연장에 동의한 것은 결국 다음달 있을 대선 영향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정부는 정부가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도 방역체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3월 도입 예정이었던 식당,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전체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아울러 사회적 거리두기를 추가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향후에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회복세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대출지원 연장이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동의하기로 한 것은 내달 있을 대선과 '표'를 위한 여야의 정책에 금융당국이 따라가게 된 것이라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 교수는 "결국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인에 대한 표를 얻기 위해 여야가 합의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며 "전문가들이 이제는 종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금융당국의 수장 역시 이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뒤집은 것 가장 큰 이유가 대선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 꼬집었다.
실제 서정호 금융연구원 부원장은 "금융지원조치가 소상공인들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에는 큰 힘이 됐다"면서도 "금융지원조치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는 없으며 조치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영일 NICE평가정보 리서치센터장도 "만기 연장·상환유예 조치가 이미 3차례 연장된 바 있고, 지속연장시 부실위험이 과도하게 누적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더 이상 숨길수 없다
은행권에서도 더이상 숨기기 어려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부실을 외면하려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 채권에 대해서는 정리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는 이유에서다.
28일 기준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에서 현재까지 코로나19 대출 지원명목으로 나간 유동성은 141조 수준에 달한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앞으로 갚아나가야 할 빚이 141조에 달한다는 얘기다.
현재는 만기연장, 이자상환유예 때문에 은행들이 이 대출들에 대해 원론적으로는 모두 '정상' 여신으로 구분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부실화가 크다고 보고있다.
실제 주요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27% 수준으로 아주 건전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은행 한 관계자는 "만기연장, 이자상환유예 조치 등이 진행된 대출들이 모두 회수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내부에서도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고 이들이 빚을 온전히 갚아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 등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대출중 40%이상은 부실채권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며 "신용 대출로만 범위를 좁히면 부실률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출 지원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차주들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며 "이자는 계속 늘어나고 금리마저 오르고 있는데 이들이 빚을 잘 갚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금융권의 노력으로만은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코로나19 이전으로 일상이 되돌아간다고 하더라도 회복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애초 계획대로 빚을 갚을 여건이 되면 서서히라도 빚을 갚아나가도록 유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