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올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동시에 지난해 연이은 금리인상의 영향이 본격화되는 만큼 물가·경기·금융안정간 상충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아울러 한은이 최근 내걸고 있는 핵심가치인 물가안정을 위해 올해에도 기준금리 인상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태도도 유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신년사를 내놨다.
먼저 이창용 총재는 올해 국내 경기를 둘러싼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미국 연준을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개 양상에 따라 국제원자재 가격이 급등락할 수 있고 중국의 방역조치 완화 및 감염병 상황 변화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며 대외여건에 대해 짚었다.
이어 대내상황에 대해서는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관련 금융시장의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금리인상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물가, 경기, 금융 안정간 상충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이 총재는 이 때문에 "경제부처간 정교한 정책 조합이 그 어느땜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철학자 헤겔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운 유일한 교훈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운적이 없다는 점'이라는 격언을 인용하며 "위기 극복의 DNA가 있는 만큼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올해 한국은행의 역할에 대해서는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예측을 꼽았다. 아울러 적극적이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경제상황과 정책방향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도 했다.
통화정책과 관련해서는 "물가가 목표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정책기조를 지속할 것"이라며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에둘러 표현했다.
다음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신년사 전문.
한국은행 임직원 여러분!
오늘은 2023년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먼저 지난 한 해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해주신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직원들이 직장에서 성실히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가족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계묘년 새해, 여러분과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는 세계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 한 해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심화 등으로 글로벌 정치·경제 구조의 블록화가 가속되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의 저물가 기조가 끝나고 글로벌 고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2년 넘게 장기화되면서 경제주체들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다양한 영역에서 양극화도 심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경제는 높은 물가 오름세와 금융·외환시장 불안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월 하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국제원자재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물가도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었습니다.
그 결과, 7월 중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6.3%를 기록하였습니다. 9~10월에는 미 달러화 강세의 심화로 환율이 급등하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10월 이후에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신용 경계감이 확산되면서 단기자금시장에서 유동성 사정이 악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면서도 금융안정과 취약부문 지원에도 유의하며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였습니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인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우리도 기준금리를 3.25%까지 인상하였습니다.
금리상승으로 국민들의 어려움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되고 장기적으로 경제 전반에 더 큰 손실이 초래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금융·외환시장의 불안에는 미시적 시장안정화 조치를 통해 적극 대응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대응 등에 힘입어 물가 오름세가 둔화되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으며, 단기금융시장의 신용경색도 다소나마 완화되고 있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올해도 우리 경제 안팎에 높은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녹록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 연준을 비롯하여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수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개 양상에 따라 국제원자재가격이 급등락할 수 있으며, 중국의 방역조치 완화 및 감염병 상황 변화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국내에서도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관련 금융시장의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금리인상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물가·경기·금융 안정 간 상충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므로, 더욱 정교한 정책 조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는 성장둔화에다 공급망 재편까지 겹쳐 많은 전문가들이 역대 어느 때보다 심각한 복합위기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두운 면, 부정적인 측면만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서 희망적인 부분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중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우선 우리 경제의 대외건전성이 개선되었다는 점을 지난해 확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작년 하반기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반까지 급등하면서 일부에서는 과거 위기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간 여러 위기를 극복해 오는 과정에서 정부·기업·금융기관의 위험관리 시스템이 개선된 결과, 환율이 점차 안정되면서 우려와는 달리 외환부문의 불안이 완화되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위기 발생 가능성은 경계하되 지나친 우려로 지레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부동산 시장의 위축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인 국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안하면 올바른 정책대응을 통해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 걱정이 많지만 이는 국제원자재가격 급등에 따른 수입 증가에 주로 기인한 것으로, 지난해 우리 수출은 역대 최대 규모를 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반도체 수출이 단가하락으로 부진하였지만, 여타 주력 품목들은 지난해 증가를 이어간 점에 비추어 볼 때 대외여건이 회복되면 무역수지도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울러, 국제무역의 분절화, 높은 금리 수준 등이 향후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그간 미뤄왔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장 다변화 등을 통해 중국 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고금리 환경 역시 높은 가계부채의 수준을 낮추고 부채구조를 개선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부동산 관련 금융은 오랫동안 형태만 달리하면서 반복적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관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거시건전성 규제가 예방적 차원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운 유일한 교훈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번만은 헤겔이 지적한 잘못을 반복하지 맙시다. 안팎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위기 극복의 DNA가 있지 않습니까! 어려움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사람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경험있는 전문가를 찾게 됩니다. 비행시 기상악화로 시계가 불투명한 데다 활주로마저 좁아 연착륙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어느 때보다 숙련되고 믿을 수 있는 파일럿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축적된 경험과 균형잡힌 시각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파일럿 중 하나가 되어 한국 경제의 연착륙에 기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각 경제주체들의 지나친 우려로 자기실현적 불안이 초래되지 않도록 적극적이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국민들께 경제상황 및 정책방향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혜를 모으고 중앙은행으로서의 선도적 역할을 강화한다면 정책의 유효성이 높아지고 한국은행에 대한 신뢰도 제고될 것입니다.
앞서, 올해는 어느 해보다 정교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국민의 생활에 가장 중요한 물가가 목표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므로,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에 중점을 둔 정책기조를 지속해야 하겠습니다.
금융·외환시장의 안정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대내외 리스크 요인의 전개양상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시에는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관계당국간 긴밀한 협업을 통해 정책대응 방안을 조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시장불안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 감독당국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며, 한국은행도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외부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우리의 역할에 대해 보다 진취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부혁신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신년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올해는 조직혁신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 고민과 논의를 거쳐 마련한 조직혁신 방안을 실행하는 만큼 직원들이 조직문화 개선과 내부경영 혁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손에 잡히는 결과물이 없을 경우 회의적 견해가 확산되면서 혁신의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 있으므로 작은 성과라도 하나씩 이루어나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워크 다이어트’를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에 핵심역량을 집중함으로써 업무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임직원 여러분!
지난해 힘든 상황에서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성심껏 노력해 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민원 응대, 시설 운영, 안전 관리, 업무지원, 화폐 정사 등 잘 드러나지 않는 위치에서도 묵묵히 현업업무를 위해 애써주신 여러분의 노고에 힘입어 한국은행이 본연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 지역본부의 직원들이 한국은행의 앰배서더로서 역할을 강화해 주신 데 대해서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한편 지역사회의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 한국은행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지난 수년에 걸쳐 진행된 본부 공사가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몇 달 후면 1950년 이후 우리가 일해 온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수고해 주신 모든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한국은행이 새로운 환경에서 힘차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며, 새해를 맞아 모쪼록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