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miele)·헹켈(henckel) 등 독일의 강소(强小)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흔들림 없이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창업 초기부터 차별화된 기술과 품질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거뒀다. 에이서(Acer), 에이수스(Asus), HTC 등 대만의 IT기업들도 일찍이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해외 시장 개척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다. 국내 기업들도 인건비·생산원가 절감을 위한 수동적 해외진출에서 벗어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신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정치적 불안이 높은 지역에 진출하는가 하면 글로벌기업의 경쟁이 치열한 곳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신시장 개척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고 있는 셈이다. [편집자]
1999년 6월 삼성SDS 사내벤처에서 시작된 네이버. 당시 사명은 네이버컴(주) 이었다. 네이버컴은 곧바로 이듬해 일본 네이버 법인인 네이버재팬을 설립했다. 사업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노크한 것. 하지만 네이버재팬의 검색서비스는 야후재팬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05년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물론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네이버는 2006년 검색엔진업체 첫눈을 인수, 서비스를 개편한 뒤 일본 시장 재도전에 나섰다. 결과는 역시 신통치 않았지만 도전은 계속됐다.
이렇다할 성공사례가 없어 고심하던 2011년 6월 첫눈 개발진들이 만든 라인(Line)이 대박을 쳤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속에서도 한국으로 철수하지 않고 남아 있던 직원들이 서로 편리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 것이 라인이다. 일본에서 라인이 인기를 끌자 사명도 네이버재팬에서 라인(주)으로 바꿨다. 일본 진출 11년만의 성과였다.
라인은 4월말 현재 전 세계 가입자 4억2000만명을 확보했다. 일본을 넘어 동남아시아, 남미, 인도, 미국, 스페인 등 다양한 지역에서 신규 가입자가 늘고 있다. 가입자 수가 1000만명을 넘는 나라만도 10여개국에 달한다. 덕분에 네이버의 해외매출 비중도 올해 1분기 28%로 늘었다. 전년동기 대비 10%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인터넷 서비스로 타국에서 자리잡는다는 것이 무척 힘들어, 한 때는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징검다리 역할이라도 하자고 직원들에게 말했다"면서 "그런데 놀랍게도 마지막 절박함이 있을 때 성공이 찾아왔다"면서 드라마틱한 성공신화를 설명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액은 금융위기 이후 위축됐다. 지난 2005년 70억8000만 달러였던 해외직접투자액은 2008년 229억1000만 달러로 급성장한 이후 수년간 지속된 국내외 경기침체 및 회복세 지연으로 둔화됐다. 급기야 2012년부터는 해외직접투자액이 전년비 감소현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해외직접투자 신규법인 수는 2776개로 전년비 10.1% 증가했다. 이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신시장 개척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네이버가 라인을 만들기까지 11년이 걸렸듯이 신시장 개척은 쉽지 않다. 사업 아이템부터 타이밍, 자본력, 기술력 등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시장 개척의 성패는 회사 전체의 경영성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시장 개척은 기업의 필수 과제이기도 하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난제이기도 하다. 신시장 개척의 성공 전략을 무엇일까.
▲ [자료=한국수출입은행] |
◇ 개척자 아닌 지배자 되어라
전문가들은 신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신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최초 시장진입 기업은 후발기업에 비해 여러가지 강점을 갖는다. 고객 인지도, 유통 지배력, 용이한 자원확보 측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첫 개발품을 소비자가 받아들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또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시대를 앞서나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즉 블루오션을 찾는 게 전부가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잡을 그물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스마트폰은 애플 아이폰이 최초가 아니었다. 애플은 소비자의 니즈가 부풀어오를 때 아이폰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아이폰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앱스토어 생태계를 구축한 점이 주효했다. DSLR 카메라도 코닥이 처음 개발했지만 현재 코닥의 시장점유율은 미미하다. 오히려 후발주자인 캐논, 니콘, 소니 등이 대부분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드시 먼저 내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때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는 것이 성공의 핵심요소다"고 설명했다.
▲ [자료=삼성경제연구소] |
◇ 민첩한 조직 만들라
시장 지배자가 되기 위해선 기업조직을 민첩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쟁사보다 얼마나 빨리 기회를 찾고 필요한 자원을 확보해 사업을 추진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은 신시장·신사업일수록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의사결정과 민첩한 실행력은 중요하다.
김치풍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조직민첩성은 조직이 환경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적시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역량을 의미한다"면서 "변화무쌍한 환경과 트렌드를 신속히 감지해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선 전략적 민첩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자원을 신속하게 확보·배분하고 시장변화에 따라 제품과 사업군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포트폴리오 민첩성, 제도·조직·IT자원 등 관리시스템을 유연하게 운영해 사업계획을 신속하게 실행할 수 있는 운영민첩성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함께 우회전략도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환경에서 취약한 부분을 보강한다고 해서 태생적으로 강한 기업과 맞서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경쟁우위 요소를 찾거나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시장에 먼저 진출한 뒤 경쟁시장으로 확산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네이버 라인도 왓츠앱과 경쟁하고 있지만 바로 북미시장에 집중하지 않고 일본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유럽으로 서비스를 확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