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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금호석유화학, 빼앗긴 배지는 언제 오나

  • 2019.09.30(월) 16:01

친형 금호가와 상표권 분쟁 등 자체로고 요원
아시아나 매각 본입찰 주목…결별 가시화 관심

삼성, LG 등 대기업그룹 직원들은 입사와 동시에 그룹 배지를 받습니다. 옷깃에 간편히 달고 다닐 수 있게 그룹 상징을 조그맣게 새긴 물건입니다. 반짝이는 배지는 취업준비생에겐 동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뿌리인 박삼구 전 회장, 박찬구 회장의 금호일가는 여기서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노란 빨간색 꺽쇠가 박힌 배지를 쓰지만, 금호석유화학그룹은 배지 자체가 없습니다. 금호석유화학그룹 임직원들이 '배지를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 'K'에서 '날개'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로고 변천사/사진=금호아시나 홈페이지 갈무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86년부터 전 계열사에 그룹이미지(CI)를 적용합니다. 빨간색 바탕에 금호그룹의 영어 첫 단어인 'K'를 흰 음각으로 판 형태죠. 각 계열사들은 2006년을 시작으로 해당 CI 바탕에 회사 이름을 새깁니다.

빨간색과 흰색이 섞인 금호고속 버스 외관을 보면 과거 CI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임직원들이 다는 배지도 이때 같이 생겨났죠.

금호고속 전세버스/사진=금호고속 홈페이지 갈무리

지금의 빨간색 꺽쇠 모양 CI가 형성된 건 그로부터 20년 뒤입니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립 6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형태의 CI를 선보입니다. 날개 모양이 금호계열사 옆에 위치해 '금호'와 아시아나'의 만남을 설명한다고 그룹은 설명합니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애정이 표현된 거죠.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대한항공에 이은 제2민간항공사로 출발합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자산총액 11조4350억원(올해 기준) 가운데 85% 비중인 9조7116억원을 담당하는 아시아나그룹 주력사입니다. 지금은 금호석유화학을 필두로 화학계열사가 밀집한 금호석유화학그룹도 이 CI를 썼던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는요.

◇ '형제갈등' 9년의 역사

왼쪽이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오른쪽이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자산총액이 5조8320억원으로 55위입니다. 11개 계열사가 밀집한 대규모 화학 그룹사입니다.

같은 금호일가임에도 금호석유화학은 배지가 없는 이유로는 형 박삼구, 동생 박찬구 사이의 오랜 갈등이 있습니다. 10년 전인 2009년 박찬구 당시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박삼구 회장의 무리한 경영 확대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형이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금호가를 위기에 빠뜨렸고, 부실계열사에 강제로 자신의 주식을 매도했음을 외부에 폭로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2009년 7월 박삼구 회장은 동생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했고, 이듬해 3월에 들어서야 박찬구 회장은 경영일선에 간신히 복귀했습니다.

형제 간 쌓인 앙금으로 CI에도 불똥이 튀었습니다. 박찬구 회장은 그해 말부터 꺽쇠 CI와 로고 사용 중단을 결정했습니다. 명함은 물론 외부 홍보물 모두에서 CI를 삭제했습니다. 금호석유화학을 비롯한 화학계열사에 꺽쇠 로고가 박힌 배지도 그때부터 자취를 감췄습니다. 2015년 금호석유화학을 필두로 8개 계열사가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부터 분리되며 아시아나를 상징하는 꺽쇠 로고 및 배지가 쓰일 가능성은 더 사라졌습니다.

◇ 금호 타이틀도 사라질까

금호석유화학 CI/사진=금호석유화학 홈페이지 갈무리

금호석유화학에는 그럼에도 여전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흔적이 남아있긴 합니다. 회사명을 적은 글씨체가 정자체인 것, 'beyond the best'에 일부 빨간색이 들어갔고 꺽쇠 모양이 다른 형태로 존재합니다.

금호석유화학그룹 입장에선 얼른 이같은 잔재도 끊어내고 싶은 눈치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같은 흔적을 남기고 있는 건 아직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연결고리가 남았기 때문입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지주사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은 상표권 분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금호산업이 2010년 금호석유화학을 대상으로 상표권 사용료를 내고, 상표권 공유 지분을 이전하라는 내용으로 소송을 냈습니다. 1, 2심 모두 금호산업이 패했고 대법원 판결만 남았습니다. 상표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마무리 돼야 사명 변경, CI 형성 작업도 탄력을 받겠죠.

다른 요인은 아시아나항공과 남은 지분관계입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분율이 11.12%로 아시아나항공 2대 주주입니다. 금호석유화학은 여러 차례 지분을 매각하려 했지만 제값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해 카드를 접었습니다. 다만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이 벌어지며 재무적 투자자(FI)들과 협업해 동반매각요청권(드래그 얼롱) 등으로 지분매각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습니다.

금호석유화학 입장에선 FI들이 향후 지분매각시 자사 보유분을 같이 매각하면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얹어 값비싸게 매각해 서로 '윈-윈'할 수 있겠죠. 실제 지난 3일 열린 예비인수전을 앞두고 여러 FI들이 금호석유화학에 접촉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곧 기업실사가 끝나고 아시아나항공 본입찰 장이 열립니다. HDC현대산업개발그룹, 애경그룹만이 아닌 다른 대기업의 참전 가능성도 거론되는 등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합니다. 금호석유화학은 성공적으로 지분을 정리하고 자체 로고가 담긴 배지를 임직원들에게 선물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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