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이 SK그룹에 비주력사업인 전자소재사업부문을 넘긴다. 이 사업은 연 4조원에 달하는 금호석유화학 전체 매출의 1% 남짓밖에 되지 않는 작은 규모다. 매각금액도 400억원으로 대기업 사이의 거래치고는 작다. 하지만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이번 매각에 유독 애틋한 심정을 드러내 관심을 끈다.
금호석유화학은 7일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전자소재사업부문을 SK머티리얼즈로 매각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SK머터리얼즈도 이날 가칭 'SK퍼포먼스머터리얼즈'라는 자회사를 이달 말까지 새로 만들어 400억원에 금호석화로부터 전자소재사업부문을 인수하고, 여기에 운영자금으로 100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반에 익숙하지 않은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 PR)'는 반도체 원판(웨이퍼) 위에 회로를 인쇄할 때 쓰는 감광액이다. 작년 일본이 한국으로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 세 가지 반도체 핵심 소재(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폴리이미드) 중 하나로 그나마 대중에 알려졌다.
매트릭스 고분자, 감광제, 첨가제, 용제로 구성된 이 소재가 빛이나 방사선에 노출되면 용해도 변화가 생긴다. 이를 이용해 미세한 패턴의 반도체 회로의 본을 뜰 수 있다. 특히 반도체가 점전 고집적화하면서 극미세한 패턴 구현이 요구되고, 3차원(3D) 낸드의 적층 경쟁이 심화돼 반도체 시장에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금호석화는 사업을 다각화하기 위해 전자소재부문을 설립한 이래 2005년 국내최초로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양산에 성공했다. 또 3D 낸드 공정용 불화크립톤(KrF) 포토레지스트, 반사방지막(Bottom Anti-Reflection Coating, BARC) 등 다양한 포토레지스트 소재와 부재료의 개발 공급도 해왔다.
다만 아직 극자외선(EUV)용 등 미세공정에 적합한 기술수준에는 이르지 못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업체에 본격적으로 공급하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관련 사업 매출도 미미한 편이었다.
하지만 일본과의 무역 분쟁이 터지자 금호석화로부터 포토레지스트를 납품받던 SK하이닉스와 SK머티리얼즈는 금호석화에 이 사업부문 매각을 제안했다. 직접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수직계열화 속 대규모 지속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을 앞세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화학전문기업인 금호석화에서보다 더 크게 키울 수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오랜 요청을 받아온 금호석유화학 측은 고심 끝에 '대승적'이라고 자평하는 매각 결정을 내렸다.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던 사업이지만 두 회사의 사업 구조를 비교해 볼 때나, 국내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를 SK에 넘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은 "우리 손으로 직접 꽃 피우지 못해 아쉽다"며 이 사업을 넘기는 애틋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그동안 고생해준 직원들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SK머티리얼즈가 맡게 되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최고의 포토레지스트 제품을 만들어 전세계를 석권해 달라"고 당부했다.
SK머티리얼즈 이용욱 사장은 "성장 잠재력이 큰 포토레지스트 소재 사업을 지속적으로 키워 소재 국산화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적기에 양산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신규 소재 연구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국내외 기업과의 활발한 협력을 통해 진정한 소재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