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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로봇벤처' 투자리스크 짊어진 정의선

  • 2020.12.15(화) 08:55

[워치전망대-이슈플러스]
현대차그룹+정의선,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구글·소프트뱅크 손 거쳤지만 적자 1000억 넘어
'정의선 사재 투자'로 그룹 재무부담 덜어

현대자동차그룹이 추진하는 로봇 개발 회사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합병(M&A)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2가지다.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3년 만에 투자금의 배 이상을 회수하는 벤처 투자 잭팟을 터뜨렸고, 정의선 회장은 개인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는 투자임에도 과감하게 앞에 나섰다는 점이다.

'28년째 유망주'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그간 구글, 소프트뱅크 등의 손을 거치며 성장 가능성은 인정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당기순손실이 1000억원이 넘을 정도로 아직 사업적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회사와 함께 리스크를 짊어진 정 회장의 책임경영이 투자 성과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 소프트뱅크 6억달러 회수하고도 지분 20% 남겨

이번 M&A 거래를 종합해보면 인수구조는 크게 2단계로 짜여졌다. ①보스턴 다이내믹스가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을 상대로 진행하는 3자 배정 유상증자 ②소프트뱅크(외 개인 2명)가 자신이 보유한 보스턴 다이내믹스 주식을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에 파는 지분 매각이다.

우선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을 대상으로 354만3162주를 유상증자한다. 신주 배정 물량은 현대차 108만6306주(1018억원), 현대모비스 72만4204주(679억원), 현대글로비스 36만2102주(339억원) 등이다. 정 회장은 137만550주(1285억원)를 받을 것으로 추산된다.

유증 후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이 확보하는 지분은 28%다. 반면 증자에 참여하지 않은 소프트뱅크의 지분은 100%에서 72%로 희석된다.

유증이 완료되면 소프트뱅크는 보유 중인 보스턴 다이내믹스 주식 중 665만813주(전체의 52%)를 판다. 매각 대상은 현대차 273만7492주(2566억원), 현대모비스 182만4994주(1711억원), 현대글로비스 91만2497주(855억원) 등이다. 정 회장은 117만8647주(1105억원)를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①신주 증자와 ②구주 매각이 완료된 후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은 소프트뱅크에는 20%만 남고 나머지는 현대차그룹이 80%를 쥔다.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정의선 회장 20%, 현대글로비스 10% 등이다.

자금흐름으로 보면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이 투입하는 9559억원 중 3321억원이 유상증자를 통해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수혈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입장에선 연구개발(R&D)이나 운용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한 셈이다. 나머지 6238억원은 구주를 매각한 소프트뱅크가 손에 쥔다.

2018년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소프트뱅크는 현대차그룹의 투자로 잭팟을 터뜨렸다. 외신에 따르면 당시 소프트뱅크는 알파벳(구글 모회사)로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1억달러(1090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3700만달러(404억원)를 추가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자본금이 2018년 779억원, 2019년 2789억원, 2020년 9월 3129억원 등 매년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프트뱅크는 보유 기간 동안 총 2500억원가량의 추가 투자를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에 현대차그룹으로부터 6000억원이 넘는 구주 매각 대금을 받아 3400억원 투자금의을 배로 튀겨 회수하면서 여전히 지분 20%도 남긴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80% 지분을 9559억원에 확보한 것을 고려하면 2400억원 가량으로 평가할 수 있는 지분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 스스로 '안전장치'된 정의선

이보다도 M&A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정 회장의 직접 투자다. 정 회장은 2390억원을 투자해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20%를 확보한다. 대기업 M&A에서 오너가 자기 돈을 투자하는 것은 흔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오너가 M&A에 직접 투자하는 사례가 있지만 국내에선 드물다"고 전했다.

정 회장이 직접 인수 자금을 댄 것은 로봇 사업에 대한 강력한 투자 의지이다. 작년 10월 정 회장은 "미래사업의 50%는 자동차, 30%는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지난 10월 회장 취임 땐 "로보틱스 등 상상 속의 미래 모습을 빠르게 현실화하겠다"고 말했는데, 이 '약속'을 2개월 만에 직접 현실화한 셈이다. 관련기사☞ 정의선, '새로운 장의 시작' 선언했다

책임경영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성장 가능성만큼 실패 가능성도 큰 미래 투자 사업에 직접 자금을 투자하면서 회사와 함께 투자 리스크를 분담하겠다는 의지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평가되지만 아직 재무적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2018년 686억원, 2019년 1121억원, 2020년 1~3분기 650억원 등 당기순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매출은 8억, 30억원, 91억원에 불과하다. 1992년 미국 대학 내 벤처로 시작한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2013년 구글, 2018년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을 거쳐왔지만 30년이 되도록 '유망주'라고 평가되는 이유다.

올 9월 기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부채비율은 42.6% 수준. 지속된 적자에도 안정적인 부채비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대주주의 자금 지원 덕분이다. 자본금은 2018년 779억원에서 올해 9월 3129억원으로 매년 늘었다. 앞으로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흑자전환에 성공하지 못하면 현대차그룹도 추가 자금 수혈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 회장이 책임 경영에 나섰다는 점은 반대의 경우를 가정해 보면 명확해진다. 만약 대기업이 재무적으로 탄탄한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데 오너가 '숟가락'을 얹었다면 비난받을 가능성이 크다. 배당, 기업공개(IPO) 등에서 오너가 '대박'을 낼 수 있고 이 경우 회사 M&A를 도구로 삼아 사익을 편취했다는 역풍까지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정 회장의 투자는 수년째 적자가 누적된 회사 M&A에 오너가 직접 자금을 태우며 회사의 재무적 부담을 줄였다는 점에서 정 회장 특유의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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