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재계는 간단치 않은 경영 환경을 맞고 있다.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은 풀리지 않았고 주요 기업 내부에도 해결할 과제가 산적했다. 소의 해, 신축(申丑)년을 호시우보(虎視牛步)로 뚫어야 할 대기업집단 총수들의 머릿속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 과제와 판단의 방향을 신년사 등에서 엿보이는 열쇳말과 함께 들여다봤다.[편집자]
혁신과 성장.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이 결정되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내놓은 2기 경영 방침이다. 상투적일 수 있는 구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달라진 의중을 읽을 수 있어서다. 2018년 취임 후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었다. '수익뿐 아니라,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찾겠다'던 그였다. 3여년 만에 경영의 축을 '공존과 공생'에서 '혁신과 성장'으로 옮긴 것이다.
◇ "가장 중요한 것, 혁신과 성장"
최정우 회장은 연임 도전에 나선 작년 말부터 혁신과 성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작년 말 최고경영자(CEO)후보추천위원회 면담 때 제시한 2기 경영 방향이 '혁신과 성장'이었다. 경영관리의 체질을 개선하고 철강 등 사업은 양적인 성장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차기 CEO 후보로 낙점된 직후 그는 혁신과 성장에 무게를 둔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산업가스·수소사업부와 물류사업부를 CEO 직속으로 신설했고 철강사업의 체질개선을 위해 '창의혁신TF(태스크포스)'도 만들었다. 올해 신년사에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혁신과 성장"이라고 재차 방점을 찍었다.
취임 이후 그가 줄곧 강조한 경영방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었다. 취임사에선 "포스코 스스로가 사회의 일원이 되어 경제적 수익뿐만 아니라,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시민'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경영비전으로 '위드(With) 포스코'를 제시했다.
'공존과 공생'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 지난해 출범이 무산된 물류통합 법인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그룹 내 분산된 물류사업부를 합쳐 물류통합 운영법인(포스코GSP)을 출범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국내 물류회사들의 반대에 부딪혀 계획을 접었다. 비용 절감과 사업 효율성을 위해 최 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한 사업이었지만 결국 그가 앞세운 경영철학 앞에 좌절되고 말았다.
'위드 포스코' 전략으로 거둔 성과는 적지 않다. '기업시민실'을 CEO 직속으로 뒀고 이윤 창출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기업시민위원회'도 가동했다. 하지만 '숫자'로 평가받는 CEO에겐 이러한 성과는 '반쪽짜리' 성적표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는 숫자에 가장 예민한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다.
◇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2기 경영 출범을 앞두고 경영 방향을 튼 것은 실적 개선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다. 질적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인 영업이익률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작년 1~3분기 포스코의 영업이익률은 3.6%다. 최 회장 임기 기간에 포스코 영업이익률은 8.5%(2018년), 6%(2019년) 등으로 매년 하락하고 있다. 수익성 악화는 포스코만의 문제는 아니다. 철광석 가격 상승, 미·중 무역 분쟁,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으로 전 세계 철강회사들의 수익성이 일제히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CEO가 여건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관련기사☞ '철강 그 이상' 꿈꾼 포스코 최정우의 공과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최 회장은 2018년 취임 당시 2023년엔 매출 85조원, 영업이익 7조4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영업이익률은 8.7%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그가 2기 경영에서 이 목표를 달성해야 포스코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2018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제시한 2030년 목표인 매출 100조원과 영업이익 13조원이다.
경영방침이 바뀌었다고 완전히 새로운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최 회장은 취임 때부터 강조한 WTP(월드톱프리미엄) 제품에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매년 신년사마다 모빌리티, 강건재, 친환경에너지 강재 등 WTP 제품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존 철강 제품은 수요 정체와 가격 하락으로 수익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계열사들도 작년 말부터 성장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년 말 포스코는 그룹내 이차전지소재사업을 맡고 있는 포스코케미칼에 1조원을 증자하고 2030년까지 매출 23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내놨다. 아울러 포스코는 수소사업에서 2050년까지 매출 30조원을 내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수소 전문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이를 위해 그룹의 핵심 인력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