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진도준이 고용승계를 반대하는 할아버지 진양철 회장에게 '정도경영(正道經營)'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진 회장의 답은 이랬습니다.
"내한테는 돈이 정도(正道)다."
극중 순양그룹은 현실 속 여러 기업이 그렇듯 정도경영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편법승계·비자금조성·경영권분쟁 등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진 회장에게 정도란 돈을 버는 것이고, 이를 위해 경영자는 욕심·의심·변심을 달고 살아야한다는 걸 손자 앞에서 숨기지 않습니다.
드라마의 인기로 정도경영을 강조해온 현실의 기업들은 난감한 처지에 빠졌습니다. 지배구조를 다듬고 윤리를 강조하며 지역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려는 노력이 평가절하될 수 있어서입니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경영이념을 더는 찾아보기 어렵듯 정도경영이라는 단어 또한 용도폐기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다 색다르게 해석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바를 '정(正)' 대신 솥 '정(鼎)'을 넣어 정도경영을 설명한 건데요. 동아쏘시오그룹 얘기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외국계기업과 합작사로 여길 수 있는데 1932년 서울 종로구 중학동 '강중희 상점'에서 출발한 토종 기업입니다. 사명의 쏘시오는 '사회(SOCIO)'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박카스를 생산하는 동아제약, 포카리스웨트를 생산하는 동아오츠카가 동아쏘시오그룹에 속해있습니다.
동아쏘시오그룹의 정도경영(鼎道經營)은 솥단지에서 출발합니다. 창업주인 고(故) 강중희 회장이 집을 찾아오는 손님 누구에게나 가마솥(鼎)으로 지은 밥을 손수 대접했듯 덕과 믿음으로 사회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 그룹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제목을 '가마솥'으로 달고 있습니다. '바르다'라는 추상적 기준보다 구체적이고 무게감이 있는 단어로 정도경영을 못박은 것입니다.
동아쏘시오그룹도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있었고 그룹 회장이 제약사 리베이트 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등 드라마에 나올 법한 소재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변화에 대한 절실함이 더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계열사 대표들이 모여 인권경영 선포식을 했습니다.
오너체제에서 계열사 대표의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느 그룹에서 최고경영자들이 서약서를 들고 '인증샷'을 남긴 사례가 얼마나 될까요. 사진 한 장이 주는 무게가 남다릅니다.
진도준은 재벌집 막내아들로 환생하기 전 오너의 궂은 일을 마다않던 비서실의 잘 나가는 팀장이었습니다. 그 비결을 묻는 후배의 질문에 "거절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승승장구하는 비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맹목성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이 됩니다.
동아쏘시오그룹의 인증샷은 각 계열사 대표에게 무거운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걸 의미합니다. 선포식을 통해 돈이 정도라는 순양그룹 같은 맹목적 분위기를 거부할 명분을 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진 한장을 기억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도경영의 가치가 허물어지는 시기, 가마솥 경영이 부디 성공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