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해 HBM(고대역폭 메모리) 비중을 늘려 수익성 회복에 집중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AI(인공지능) 메모리를 경쟁사 대비 빠른 실적 개선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효자'로 꼽았다. 올해는 HBM 제품 비중을 두 자릿수로 확대해 이익 폭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AI가 불러온 훈풍 수혜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27일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제76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작년에 D램 판매량 중 AI 제품의 비중은 한 자릿수였지만, 올해는 HBM 판매 비트(bit) 수가 두 자릿수로 올라와 수익성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며 "HBM의 경쟁력을 강화해 수익을 극대화하겠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DDR5(더블데이터레이트5)를 비롯한 고부가 D램 시장도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며 수익성 개선에 보탬이 될 전망이다. 곽 사장은 "D램 가격도 작년 4분기를 기점으로 턴어라운드했기 때문에, 일반 D램도 올라가고 있어 전반적으로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날 곽 사장은 작년 AI 메모리 선두 주자로 올라서며 경쟁사보다 빠르게 실적을 개선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전년 대비 투자를 축소하고 재고 수준이 높고 수익성이 낮은 제품을 중심으로 감산을 진행하는 한편, AI 메모리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업계 선두의 경쟁력을 가진 AI 메모리 제품의 판매를 확대했다"며 "이를 통해 하반기부터 경쟁사 대비 빠른 실적 회복세를 나타내며 전사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SK하이닉스의 지난해 실적은 매출 32조7657억원, 영업손실 7조7303억원이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26.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돌아섰지만, 4분기 흑자를 기록하며 손실 규모를 소폭 줄였다. 4분기 영업이익은 3460억원으로 메모리 업계 최초로 흑자로 돌아섰다.
이는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작년 내내 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과는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작년 △1분기 4조5800억원 △2분기 4조3600억원 △3분기 3조7500억원 △4분기 2조18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연간 적자 규모만 14조8700억원에 달한다.
SK하이닉스의 남다른 성장에는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 확대가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수익성 향상에 기여한 제품은 HBM이다. 지난해 반도체 업계는 상반기 전반적인 세트 수요 약세와 고객들의 재고 조정으로 메모리 수요가 부진했지만, 하반기부터 AI향 메모리 제품의 수요가 성장하고 공급업체들의 감산 영향이 반영되며 업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하반기부터 업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실제 지난해 SK하이닉스의 HBM3 매출액은 전년 대비 5배 이상 성장했다. 전 세계 HBM 시장점유율에서도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작년 전 세계 HBM 시장에서 점유율 53%로 1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38%로 뒤를 쫓고 있다.
AI 시대 이끌 퍼스트 무버
SK하이닉스는 올해도 확고한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AI시대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AI 리더십을 확실히 해 HBM 시장에서 1등 리더십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까지 분위기는 좋다. 곽 사장은 "내년 HBM도 수요도 타이트하다"고 자신했다.
차세대 HBM 등을 통한 미래 준비도 지속한다. AI 시대에는 대용량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메모리 기술 혁신이 요구돼, 미래 시장에 맞춰 다양한 고객 요구와 기술 변곡점에 대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곽 사장은 이를 위한 제품으로 "차세대 HBM4, 고용량에 적합한 CXL D램, AI 추론에 특화된 PiM 제품"을 꼽았다. 그는 "고객의 컴퓨팅 환경에 따라 다양한 메모리 니즈가 증가하고 있어, 회사는 고객 맞춤형 메모리 플랫폼을 통해 고객별 차별화된 AI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D램 대비 회복 속도가 느린 낸드 사업의 경우 기존 점유율 중심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해 반전을 꾀한다. 재무 여력과 투자 수익성을 고려해 낸드 투자 프로세스를 강화하는 한편, 낸드와 솔루션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SK하이닉스는 시장 상황에 맞춘 양산 규모 조정을 통해 수익성과 투자 효율성을 높여갈 계획이다. 신규 제품은 적기 개발하고 고수익 제품 비중을 확대하면서도, 장기적인 성장과 재무 안정성의 균형을 고려해 양산 규모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운턴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업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곽 사장의 목표다.
곽 사장은 "어려운 경영환경 극복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 사이클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경쟁력을 보유한 회사, 내실 있는 회사를 만들어 가겠다"며 "올해는 이러한 꿈과 목표를 향한 여정의 첫 번째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주총에서는 △재무제표 승인 △정관 변경 △사내이사 선임의 건(안현 솔루션개발 담당) △사외이사 선임의 건(손현철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기타비상무이사 선임의 건(장용호 SK㈜ 사장)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양동훈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 △이사 보수한도 승인 △임원 퇴직금 지급 규정 개정 승인 등 7개 안건이 원안대로 가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