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에 불이 붙은 가운데 고려아연·베인케피탈 연합과 영풍·MBK 연합이 공개매수 재원의 80% 가량을 빚으로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측이 공개매수 가격을 추가로 올릴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누가 이겨도 상처뿐인 승리가 되는 '승자의 저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끌' 고려아연 공개매수
7일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자금 중 자기자금이 1조5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줄고, 차입금은 1조1635억원에서 2조1635억원으로 늘었다고 정정 공시했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총액(2조6635억원)은 그대로지만 자금 조달방식이 자기자금에서 차입금 위주로 바뀐 것이다. 고려아연이 투입하는 공개매수 자금 중 부채의 비율은 기존 43.7%에서 81.2%로 늘었다. 공개매수 자금 81% 이상을 빚으로 마련했다는 얘기다.
지난 3일 기준 고려아연이 보유한 자기자금은 7600억원이다. 당초 공개매수에 자기자금 1조5000억원을 쓰겠다는 계획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고려아연은 자기자금 7600억원의 65.8%(5000억원)를 공개매수에 쏟아붓게 된다.
이번에 새롭게 늘어난 차입금 1조원은 메리츠증권으로부터 지난 2일 조달했다. 무보증 사모사채 금리는 6.5%, 만기는 1년이다. 기존 고려아연은 공개매수를 위해 하나은행·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부터 1조1635억원을 빌려 둔 상황이었다. 금리는 하나은행 고정금리 5.5%,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변동금리 4.67%였다. 이번 차입과정에서 금리가 더 올라간 것이다.
MBK파트너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MBK파트너스 특수목적법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쓰는 2조5024억원 중 차입금은 1조9596억원이다.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보유한 자기자금은 5462억원에 머무는 것이다. 한국기업투자홀딩스의 공개매수 자금 중 78.3%는 빚으로 마련했다는 얘기다.
차입금 1조9596억원은 ▲NH투자증권 1조5785억원 ▲영풍 2713억원 ▲MBK파트너스육호사모투자 1097억원 등으로부터 조달했다. 조달 금리는 NH투자증권·영풍 5.7%, MBK파트너스육호사모투자 4.6%이다.
MBK파트너스 측은 사모펀드의 자금 조달 과정은 일반 법인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MBK파트너스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지분 투자한 특수목적법인이 차입으로 자산을 사고 난 뒤 외부에 펀드 투자자를 찾는 펀드레이징(출자사업)을 거치게 된다"며 "이를 통해 펀드가 구성되면 부채는 자기자금 성격이 된다"고 설명했다.
공개매수 가격 인상 가능성…빚 부담 가중
빚으로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는 경쟁은 앞으로도 가열될 수 있다. 지난달 13일 한국기업투자홀딩스가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66만원으로 처음 제시한 뒤 지난달 26일 75만원, 이달 4일 83만원으로 2차례 인상했다. 지난 4일 고려아연은 자기주식 공개매수(주당 83만원) 방식으로 맞불을 놨다. 업계에선 이번 주에 고려아연이 한 차례 더 공개매수 가격을 올릴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게 되면, 추가 재원은 부채를 통해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일 기준 자기자금 7600억원 중 공개매수 자금으로 책정된 5000억원을 제외하면 남은 자기자금은 26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경영권 분쟁을 위해 급조한 부채는 분쟁이 끝난 뒤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해 수천억원대의 이자가 예상되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주주를 위한 배당 등의 재원이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가 예고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