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가격 인상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10일 '공개매수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통주식물량은 15% 안팎으로 추산된다'는 자료를 배포했다.
고려아연의 유통주식 물량은 30.7%(최씨·장씨 일가 지분 및 우호지분 제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패시브펀드(5.9%), 국민연금(7.83%), 자사주(2.4%)는 공개매수에 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외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감안한 실제 유통물량은 알려진 30.7%의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자료 배포 다음날 고려아연은 공개매수 가격 인상(83만원→89만원)과 함께 최대 매입 물량도 18%에서 20%로 늘렸다. 그러면서 "공개매수 가격과 최대 매입 물량 확대로 시중 유통 물량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주들은 청약 불발에 대한 걱정할 필요없이 안전하게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강조했다.
공개매수가격 인상 하루 전 발표한 자료는 MBK파트너스에 맞서, 자신들이 진행중인 자사주 공개매수에 참여하면 더 안정적으로 청약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던 셈이다. MBK 공개매수의 최대 매입 물량은 14.61%로 고려아연보다 적다.
다만 고려아연이 유통물량을 모두 흡수할 수 있다는 근거 중 하나로 주장한 '패시브펀드는 공개매수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패시브펀드'는 운용역의 판단으로 투자하는 '액티브펀드'와 다르게 특정 기초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다. 고려아연은 '패시브펀드는 해당 지수에서 고려아연을 제외하지 않는 이상 공개매수에 응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실제로 고려아연 주식을 보유한 패시브펀드를 굴리는 자산운용사의 운용역(펀드매니저)들은 공개매수 참여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기초지수를 추종해야 하기에 해당 종목을 펀드에 계속 보유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공개매수에 참여한 후 다시 주식을 매집해 차익거래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특정 지수를 추종하기 때문에 포함된 종목이 사라지면 안 되는 것은 맞지만 공개매수에 참여하고 다시 시장에서 매수해 비중을 채우면 된다"며 "일반적으로 공개매수는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나오기 때문에 차익을 추구할 수 있어 패시브펀드라도 운용역 판단에 따라 공개매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자산운용사 운용역도 "이번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참여하려는 운용역도 있고 모멘텀을 활용해서 현·선물 차익거래를 노리는 운용역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오히려 패시브펀드들이 공개매수 기회를 활용해 추가 수익을 내려는 추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고려아연의 설명과 다르게 패시브펀드가 보유한 물량도 현실적으로 공개매수에 참여 가능하다. 패시브펀드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보유지분도 공개매수에 접근 불가능한 주식이 아니다. 직접 공개매수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국민연금이 최근 주가 상승기에 장내에서 일부 차익을 실현했다면 실질 유통물량은 늘어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10일 고려아연은 공개매수가격을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인상하면서 최대 매입 물량도 기존보다 2%포인트 늘린 20%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유통물량이 15%수준에 불과하다면 매입 물량을 기존 18%에서 추가로 늘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MBK의 공개매수 마감(14일)이 거래일 기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양측의 조건에 대한 투자자 판단이 공개매수의 결과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MBK는 영풍과 함께 주당 83만원에 최대 14.61%를 사들이고, 고려아연은 베인캐피탈과 함께 주당 89만원에 최대 20%를 매입한다.
공개매수는 세금을 고려해야한다. 장외거래여서 개인투자자도 양도세를 낸다. 다만 고려아연이 진행중인 자사주 공개매수는 소각이 뒤따르기 때문에 배당 행위와 유사하다고 간주(의제배당), 양도세가 아닌 배당세를 적용한다.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원 이하인 소액 개인투자자는 22% 양도세(MBK 공개매수)보다 낮은 15.4%의 배당세를 적용받는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가격도 유리한데다 세금도 덜 내는 것이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대한 소송 이슈가 남아 있긴 하지만, 조건만 따지면 개인투자자는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가 한층 유리하다.
다만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저울질이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와 조세협약을 체결한 나라에 법인을 두었다면 대부분의 경우 주식양도차익에 과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도차익과 다르게 배당소득은 모든 경우에서 원천징수한다.
조세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 설립한 외국 법인에는 배당소득의 22%를 원천징수한다. 만약 조세조약을 체결한 나라에 설립한 외국 법인이라면 국가별 제한세율에 따라 배당소득의 10~22%를 원천징수한다. 이는 최종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따라서 공개매수를 통한 차익거래를 검토하는 해외 기관은 고려아연이 제시한 89만원보다 낮더라도 세금을 고려, 일정이 먼저 끝나는 MBK의 공개매수(83만원)에 일부 참여하려는 수요를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MBK의 공개매수 마감일인 14일 주가가 83만원에 얼마나 근접하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