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과 증권사 간 영역 다툼이 치열하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와중에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을 계기로 자본시장으로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어서다. 기회를 잡은 증권사들은 공격의 고삐를 죄고 있고, 은행들은 방어에 여념이 없다. 주요 쟁점들을 짚어봤다. [편집자]
최근 증권업계에서 오랜 숙원으로 꼽히는 '법인지급결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법인지급결제 도입을 통해 법인 고객 서비스를 확대하고 증권사 퇴직연금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을 자연스럽게 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본여력은 '다 갖췄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재 증권사들은 개인지급결제 업무는 가능하나 법인자금의 지급결제 업무는 불가능하다. 금융결제원 내부 규약상 해당 업무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금결원의 전자상거래 지급결제 중계업무규약에는 '금융투자회사는 법인이 PG(결제대행)업무를 이용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돼 있다.
법인지급결제란 기업의 각종 경제활동에 따라 발생하는 거래당사자 간의 채권·채무 관계를 금융사를 통해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제품 판매대금을 지급하거나 근로자 월급통장에 돈을 송금하는 일이 모두 법인지급결제에 해당한다.
증권업계에서 법인지급결제 업무는 해묵은 숙원 사업 중 하나다. 자본시장법상 증권사에 허용된 업무지만 지난 2007년 해당 법 제정 이후 14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실제 진행은 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은행권의 강한 반발로 금결원 규약에 따라 증권사는 법인을 제외한 개인에 한해서만 지급 결제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후 지난 2017년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이 재임 당시에 법인지급결제 허용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결국 불발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부 증권사들 사이에서 다시금 법인지급결제 업무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기자본 확충 등을 통해 자금 지급 여력도 탄탄해진 만큼 더는 법인지급결제 업무를 막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다.
앞서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허용 요구가 불발된 지난 2017년 말 기준 자기자본 상위 10개사(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메리츠증권·신한금융투자·하나금융투자]·대신증권·키움증권)의 자기자본 합계는 약 37조원이었다. 이들 10개사의 올해 6월 말 기준 자기자본은 약 49조원으로 3년 반 동안 12조원이나 늘어났다.
무엇보다 증권사들은 앞서 지급결제망 이용을 위해 3000억원이 넘는 특별참가비를 냈고 매년 이용료에 상응하는 분담금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법인지급결제 업무는 제외돼 있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WM사업과 시너지 효과 기대
증권사들은 법인지급결제 허용 시 새로운 영업 활로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의 급여통장을 증권사가 확보하게 되면 신규 고객을 늘릴 수 있고 퇴직연금 등 자산관리(WM) 서비스와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특히 법인고객군이 큰 증권사들은 고객 편의를 위해서도 법인결제업무 허용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증권사의 법인 고객은 업무 처리를 위해 은행의 가상계좌를 이용해야 한다. 증권사도 고객도 일 처리를 이중으로 진행해야 하는 셈이다.
법인의 기업공개(IPO) 수요예측 참가 시 업무 처리도 간편해진다. 현재는 법인이 IPO 수요예측 참가 시 가상계좌나 당좌계좌를 통해 자금을 입금하고 이때 증권사는 일일이 수작업으로 계좌 입출금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단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의 키를 쥐고 있는 한국은행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의 키를 쥐고 있는 한국은행과 금결원은 10년째 요지부동"이라며 "증권사의 자금 여력이 커지면서 앞서 은행권이 우려하던 유동성 리스크가 해소됐음에도 법인지급결제를 막아두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증권사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되더라도 활성화가 되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증권사가 법인지급결제 업무를 하기 위해선 은행에 순채무한도를 설정해야 한다. 순채무한도 설정을 위해 은행에 제공해야 하는 담보가 증권사들에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