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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줍줍]전환사채로 지배력 강화하는 진양곤 HLB회장

  • 2023.06.09(금) 10:06

HLB제약, 지주사격 HLB에 100억원짜리 CB발행, 이자율 1%
HLB가 보유한 100억원 CB, HLB생명과학에 237억원에 팔아
HLB생명과학, CB 절반은 주식전환…절반은 제3자에 매각

HLB그룹의 계열사이자 의약품 제조업체인 HLB제약이 지난 2일 전환청구권 행사라는 제목의 공시 2건을 올렸어요. 

▷관련공시: HLB제약 6월 2일 [정정]전환청구권행사
▷관련공시: HLB제약 6월 2일 [정정]전환청구권행사

두 건의 공시는 지난달 5월 18일~19일 처음 올렸던 전환청구권 행사 공시를 정정한 내용인데요. 정정 내용은 전환청구권 행사로 발행하는 신주의 상장예정일이 뒤로 밀렸다는 것이에요. 

전환청구권 행사는 전환사채(CB)를 가진 채권자가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겠다고 회사에 요구했다는 뜻이에요. 전환사채는 주식연계채권으로 회사가 전환사채를 발행해 일정 금액의 돈을 빌리고 이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추후 다시 돈으로 돌려받거나 아니면 빌려준 돈 만큼 회사의 주식(신주)으로 바꿔갈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이 권리를 실제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전환청구권 행사. 

전환청구권 행사 공시를 볼 때는 누가 주식으로 바꿔 가는지 즉, 채권자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번 HLB제약 전환청구권행사 주체는 'HLB생명과학'이예요. 그런데 2020년 HLB제약이 전환사채를 발행할 당시만 해도 채권자는 HLB였다는 점. 

▷관련공시: HLB제약 2020년 10월 7일 [정정]주요사항보고서(전환사채권발행결정)

참고로 HLB그룹은 지주사격인 HLBHLB생명과학HLB제약 순으로 이어지는 지분구조예요.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전환청구권 행사 주체가 HLB가 아닌 HLB생명과학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이번 전환청구권 행사가 HLB, HLB생명과학, HLB제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세 곳 회사의 주주들은 이번 공시를 어떻게 바라봐야하는 지 짚어볼게요. 

HLB제약, HLB그룹의 주요계열사

HLB제약의 전신은 '메디포럼제약'이란 곳인데요. 이곳은 원래 HLB그룹 계열 회사는 아니었고, 2020년 HLB가 계열사인 HLB생명과학을 통해 인수한 곳이에요. 이후 사명도 HLB제약으로 바꿨어요. 

인수 당시 HLB생명과학은 메디포럼제약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최대주주로 올랐고 동시에 HLB도 메디포럼제약이 발행한 전환사채 100억원어치를 샀어요. HLB는 피인수기업인 메디포럼제약에 자금을 지원하는 동시에 추후 지분확보용으로 전환사채를 인수한 것으로 보여요. 

인수 이후 HLB제약은 HLB그룹 상장 계열사 중 가장 많은 매출액을 올리고 있는 곳으로 자리잡았는데요. 올해 1분기 지주사 격인 HLB의 매출액(별도재무제표 기준)은 184억원인데 반해 같은 기간 HLB제약의 매출액은 324억원이에요. 지배구조상 할머니보다 손자가 더 돈을 잘 버는 것이죠. 

물론 기업규모를 측정하는 또다른 잣대인 시가총액 기준으로 보면 HLB가 4조7000억원 가량으로 HLB제약(4400억원 가량)보다 훨씬 규모가 커요.

또 HLB 연결재무제표에 HLB생명과학의 재무는 포함하지 않아요. 마찬가지로 HLB생명과학 연결재무제표에 HLB제약 재무도 포함하지 않아요. HLB제약과 HLB생명과학 모두 HLB의 종속기업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 지분율이 50%를 넘어야 재무제표 상 종속기업에 해당해요. 

다만 진양곤 HLB 회장은 HLB생명과학과 HLB제약의 사내이사 및 이사회의장도 맡고 있어요. 따라서 진양곤 회장 등 총수일가가 HLBHLB생명과학HLB제약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HLB그룹의 전환사채 주식전환 후 지분율 변화 비교. 주식전환 후 HLB생명과학의 HLB 지분율이 늘어났고 HLB제약에 대한 HLB생명과학 지분율도 강화됨./그래픽=비즈워치

주요계열사 지배력 확대가 관건

진양곤 회장 등 총수일가HLBHLB생명과학HLB제약 순으로 이어지는 지분구조이지만, 사실 그룹의 지주사 격인 HLB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배력은 강하지 않아요. 

1분기 기준 HLB의 최대주주는 진양곤 회장이지만 지분율이 7.38%에 불과해요. 부인인 이현아씨와 자녀들 및 HLB생명과학, HLB셀 등 계열사 보유 지분을 모두 합해도 9.76% 수준. 

다양한 곳에서 투자를 받아 의약품 연구개발을 해야 하는 제약바이오기업 특성상 잦은 주식연계채권 발행과 유상증자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희석됐기 때문이에요. 

총수일가의 HLB에 대한 지분율도 낮은 편인데다 HLB가 가지고 있는 HLB생명과학 지분율도 19.35%로 20%에 못 미쳐요. 또 HLB생명과학의 HLB제약 지분율도 진양곤 회장 등 총수일가의 지분율을 모두 더해도 17.41%(HLB생명과학 지분율은 12.83%)수준이에요. 

전반적으로 주요 계열사에 대한 총수일가 직접 또는 간접 지분율이 모두 낮은 만큼 이 회사들은 언제든지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따라서 진양곤 회장 등 총수일가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조금씩이라도 주요 계열사의 지분율을 늘릴 필요가 있는 것이죠. 

시세보다 비싸게 제약 주식 확보한 생명과학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전환청구권 행사는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특히 HLB제약이 전환사채를 발행할 당시 최초 채권자였던 HLB가 직접 전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계열사 HLB생명과학에 채권을 넘겨 행사했다는 점을 주의 깊게 봐야하는데요.  

이번 100억원 전환사채는 2020년 HLB에 발행됐던 것이지만 지난 2022년 8월 HLB가 HLB생명과학에 전환사채를 팔았어요. 

▷관련공시: HLB제약 2022년 8월 12일 임원ㆍ주요주주특정증권등소유상황보고서

위의 공시는 HLB생명과학이 HLB로부터 전환사채권을 장외에서 샀다는 내용이에요. 이 전환사채의 전환가격(주식으로 바꿀 시 1주당 주식 가격)은 발행 당시 6689원이었지만 이후 HLB제약 주가가 오르자 HLB는 HLB생명과학에 주당 1만5852원에 채권을 팔았어요. 전환사채를 사고팔 때는 주식가치의 현재 시세를 반영해 거래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결과적으로 HLB생명과학은 100억원짜리 채권을 237억원을 주고 사온 것이죠. 

1주당 6689원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을 주당 1만5852원에 팔았으니 HLB가 남긴 차익은 단순계산해도 1주당 9163원이에요. 반면 HLB생명과학은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가격대임에도 HLB로부터 전환사채를 사들였어요. HLB생명과학과 HLB가 전환사채를 거래할 당시 HLB제약의 주가(종가기준)는 1만5750원이었어요.  

HLB생명과학이 사들인 전환사채는 오는 9월 19일까지 전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기간이 지나면 현금으로 돌려받는 방법밖에 없어요. 따라서 전환청구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 HLB생명과학이 지난달 18일 전환청구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여요.

HLB생명과학은 주당 1만5852원에 사들인 전환사채 가운데 절반(74만7495주)은 HLB제약 주식으로 전환했고, 절반(74만7495주)은 제3자에게 매각했어요. 

전환청구권 행사 공시가 2건 올라온 만큼 HLB생명과학으로부터 전환사채를 사간 제3자도 주식으로 바꿔간 것으로 보여요. 

HLB생명과학은 HLB로부터 주당 1만5852원에 채권을 사왔지만 전환 당시(5월 18일)주가는 주당 1만5480원(종가기준)이었어요. 결국 HLB생명과학은 사온 가격보다 372원 낮은 가격에 주식을 바꾼 셈이죠. 이는 회계 상 평가손실로 잡혀요. 

생명과학 중심으로 HLB, 제약 지배력 확대

HLB가 직접 주식전환을 해도 되는 것을 굳이 전환사채를 HLB생명과학에 넘긴 뒤 사온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주식전환을 한 이유는 HLB생명과학을 중심으로 HLB, HLB제약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함으로 보여요. 

애초 메디포럼제약을 인수할 당시 HLB생명과학은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HLB는 전환사채를 사면서 투트랙으로 인수에 나섰다면, 이제는 지분을 생명과학으로 일원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미 HLB생명과학이 HLB제약 지분 12.83%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HLB가 전환청구권을 행사해 HLB제약 지분을 취득하기 보단 생명과학이 지분을 늘리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 셈이죠. 

또 HLB생명과학은 제3자에게 전환사채 절반(74만7495주)을 매각하면서 얻은 자금으로 HLB주식을 확보했어요. 전환사채는 합리적 이유가 없는 한 시세대로 평가해 매각해야 해요. 따라서 HLB생명과학도 전환사채의 절반을 제3자에게 시가 평가해 매각했을 것으로 보여요. 

이를 통해 HLB생명과학은 약 116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중 80억원을 활용해 HLB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 HLB셀이 가지고 있던 HLB주식 23만7100주를 사들인 것이죠. 

결과적으로 이번 전환청구권 행사와 전환사채 매각으로 HLB생명과학의 HLB제약 지분율은 기존 12.83%에서 14.25%로 늘었어요. 또 HLB에 대한 HLB생명과학 지분율도 기존 1.31%에서 1.5%로 소폭 늘었어요. 

지난달 22일 HLB는 HLB생명과학의 HLB 주식 취득 관련, 보도자료를 내면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지분매입을 했다고 밝혔는데요. 회사가 말하는 기업가치는 총수일가로부터 이어지는 지배력 강화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겠죠.  

HLB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이 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부사채 등 다양한 주식연계채권을 발행한 상태이기 때문에 주주들은 회사가 채권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공시를 통해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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