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BRICS는 글로벌 자본시장을 달군 핫한 키워드였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새롭게 떠오르는 경제 신흥 대국 5곳의 영어 이름 앞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인도 역시 BRICS 국가 중 하나로 당시 인기에 편승해 글로벌 자금을 빨아들였다. 그러나 예상보다 더딘 발전 속도, 통화절상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수익률이 고꾸라졌고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잊혀졌던 인도가 다시 전성기에 올랐다. 인도 대표지수인 니프티50 지수(인도국립증권거래소(NSE)에 상장한 우량주 50개를 가중평균 산출)는 지난 1년간 27%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9% 오른 것과 비교하면 3배에 달하는 성장세다. 33% 뛴 미국 S&P500 지수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사실 인도는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 3월 이후로 쭉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니프티50 지수의 최근 5년 상승률을 계산해보면 120%에 달한다.
인도 시장의 뜨거운 인기를 감지한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인도에 투자하는 상품들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치열하다. 시장점유율 4위인 한국투자신탁운용도 이 대열에 뒤늦게 합류했다. 작년 말 인도 '빅5' 그룹에 투자하는 공모펀드 1종을 출시한데 이어 지난 9월 ETF 2종을 내놨다. 공모펀드와 비슷한 컨셉으로 5대 그룹에 투자하는 'ACE 인도시장대표BIG5그룹액티브'와 가전·자동차·헬스케어 등 대표 소비재에 투자하는 'ACE 인도컨슈머파워액티브' 이렇게 2가지다.
눈에 띄는 건 운용 라인이다. 12년간 중국 상해 리서치 사무소장을 맡았던 중국 전문가 현동식 해외비즈니스본부장과 함께 인도 지역학 전공자인 송한나 책임매니저가 합류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10월 초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신탁운용 사무실에서 송한나 책임매니저를 만났다.
거리에 소가 사라졌다
인도어 전공은 우리나라에 몇 없는 희귀한 학과다. 2012년 대학 캠퍼스에 발을 들인 송한나 매니저는 제1전공으로 인도어로 택했다. 그는 인도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인도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도어과에 들어오면 취업은 탄탄대로라는 선배들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송 매니저가 실제로 마주한 인도는 '성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송 매니저가 7년 전 목격한 인도 수도 뉴델리에는 도로 한복판에 소와 차가 함께 돌아다니고 있었다.
송 매니저는 "2017년 취업준비를 하다가 인도 여행을 갔는데 소들이 차도를 돌아다니고 비행기는 레이저 장비가 없어 착륙하지 못하고 한참 하늘을 뺑뺑 돌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런데 최근 출장을 다녀온 (현동식) 본부장님이 상품 준비를 위해 뭄바이로 출장을 갔을 땐 소를 보기 어려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를 신성시 여겨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두는 게 인도의 일상인데 나렌드라 모디 정부에서 도로정비와 도시환경 개선에 힘쓰면서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힘들게 취업 경쟁을 뚫고 송 매니저가 처음 자리잡은 곳은 인도어 전공과 무관한 외국계 은행이었다. 한국증시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를 지원하는 업무였다. 그러다가 직접 펀드를 운용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한투운용으로 옮겼다.
한투운용에서 처음 책임 운용역으로서 맡게 된 펀드는 올해 1월2일 출시한 '한국투자인도5대대표그룹펀드'였다. 이 상품은 타타·인포시스·HDFC·릴라이언스·바자즈 등 현지 5대그룹에 집중 투자하는 상품이다. 돌고 돌아 다시 인도와 연을 맺게 된 셈이다. 이후 출시한 2종의 인도 액티브 펀드에도 부책임 운용역으로 참여하고 있다."인도 증시 버블 아니다"
송한나 매니저는 인도가 성장 궤도에 안정적으로 올랐다고 판단했다. 이미 숫자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프티50 지수는 연간누적기준(YTD) 16% 상승했고 금리 인하 기대감 속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2만5500선을 돌파했다.
'인도의 성장이 계속될 수 있다고 확신하냐'는 질문에 송 매니저는 "인도증시는 버블이 아니다. 견고한 성장이 뒷받침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인도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8%를 기록 중이며 증시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8%에 달한다. 미국 22%, 한국 10%인걸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라며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도 15%를 유지하고 있는 등 기업실적 개선 기대도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인도가 고부가 가치 산업 육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수혜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만큼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코스피를 밀어 올렸던 동학개미 만큼이나 인도 개미들의 화력도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송 매니저는 "지난 8월 블랙먼데이가 왔을 때도 니프티50지수는 2%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개인 수급이 핵심 요인 중 하나"라며 "개인들이 적립식으로 매수할 수 있는 SIP(Systematic Investment Plan) 펀드 자금은 400조원으로 3년 만에 124%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인도 NSE에 따르면 등록된 개인투자자수는 무려 1억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인도를 바라보는 시장의 인식이 이전보다 나아진 건 맞지만 아직까지 심리적 장벽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2011~2012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 결국 50%의 손실을 입힌 브라질 국채가 국내 개인투자자들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투운용 상품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있기도 한 아다니그룹이 최근 미국 행동주의펀드 힌덴버그로부터 주가조작, 분식회계 혐의 지적을 받아 변동성이 대폭 커졌다. 이로 인해 아다니그룹의 시가총액은 한화기준 약 211조원 증발했다. 최근 하락폭을 많이 회복하긴 했지만 힌덴버그 측에서 내부제보를 통해 조사를 맡은 인도 SEBI와 아다니그룹 간 유착을 연달아 폭로해 여전히 안심하기 어렵다.
송 매니저는 이 사태에 대해 "인도 주식시장이 더 커질 때를 대비해 점검하는 계기라고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을 1992년에 개방하고 나서 기업 정보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라며 "현지 기업은 가족경영이 대부분인데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을 인지하고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국제적인 투자기준에 부합하는 시장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은 가족경영이라고 했을 때 상속·증여 등 이슈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인도에서는 기업이 노동자를 챙기고 지역 경제에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 지역 공동체와 신뢰관계가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을 보면 인도가 보인다
현재 인도는 외국인 기관의 직접투자만 허용하고 있어 개인들이 직접 현지 증시에 상장된 주식을 살 수 없다. 국내투자자도 펀드를 통해서만 투자자 가능한 셈이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어떤 상품으로 인도에 투자해야 할까. 송 매니저는 처음 인도 시장을 접한다면 니프티50나 센섹스 등 인도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상품에 먼저 투자해보고, 이후 포트폴리오에서 인도 투자 비중을 늘리고 싶다면 수혜 업종에 집중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송 매니저는 "요즘 고객들에게 인도 상품을 소개하려고 PB센터에 가보면 대표 지수들은 금융업종 비중이 크기 때문에 성장 수혜 업종만 골라 담기엔 어려워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며 "컨슈머파워ETF를 만들게 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투운용이 가전·헬스케어·자동차 등 소비재를 테마로 지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비교 모델인 중국을 분석한 결과 양국이 유사성을 가장 많이 보이는 섹터라고 설명했다. 송 매니저는 "인도와 중국은 인구도, 성장전략도 비슷하다"며 "두 국가가 유사한 발전 과정으로 성장할 확률이 높아 보이는 가운데 중국의 성장 시나리오를 되짚다보면 초과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업종과 종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인도도 1인당 소득 2000달러를 넘으면서 필수소비재를 넘어 자유소비를 하는 성장 가속 구간에 진입했다"며 "더우면 에어컨을 켜고 싶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 치료할 여유가 생기고, 더 편한 차를 타고 싶어지는 건 국가나 문화를 떠나 인간의 본성상 자연스러운 결과"이라고 했다.
인프라 투자에 사활…건설·에너지 분야 주목
올 6월 총선에서 승리한 모디 정부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된 가운데 송 매니저는 인프라 분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모건스탠리는 향후 5년간 인도의 인프라 투자 금액은 연 평균 15% 이상 증가하고, 정부의 인프라 부문 총 누적 지출액이 약 2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송 매니저는 "인구가 늘면서 2030년까지 7만가구의 신규주택이 필요하고 도시 개발과 교통 시설 확충 등 인프라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건설 프로젝트로 수주 규모가 커질 것"이라며 "인도 부동산 시장이 2047년에는 5조원 넘게 팽창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도시화로 부동산 시장은 활성화가 되면서 업종별로는 상장된 건설 업종이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분야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송 매니저는 "인도 전략 생산량은 중국의 20% 수준이라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재생 에너지를 발전하는 게 급선무"라며 "해외투자도 활발히 이뤄지면서 건설, 인프라와 함께 전력분야 직접투자(FDI)가 작년대비 2배 가까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다만, 올해 말까지는 금리인하 이벤트가 대기하고 있는 만큼 분할 매수 전략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다. 송 매니저는 "인동 중앙은행이 당장 10월에는 금리를 동결하겠지만 12월 회의에서는 인하할 것이라는게 시장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미국부터 금리 인하를 시작하면 신흥국(EM)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미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에서 9월 말 기준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를 넘겼다. 가장 덩치가 큰 중국(27.8%)과 비교해도 8%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송 매니저는 "7~8월 증시 견인한 건 개인이었다면 이제는 외국인 수급에 힘입어 대형주 중심으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연말까지 관심을 둬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