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기차표를 사고 커피를 주문하는 세상은 참 편리하죠. 하지만 기술의 진화 속도는 노화하는 우리가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릅니다. 지금은 쉬운 기술이 나중에도 그럴 것이란 보장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으로 커피를 살 때 쌓이는 정보는 빅데이터가 되어 서비스에 반영되고 궁극적으로는 법·제도 개선까지도 이어지지만, 현금으로 커피를 사는 사람의 정보·의견은 외면됩니다. '디지털 정보격차'는 취약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디지털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는 [디지털, 따뜻하게]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들었을까요?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 스피커, 디지털 키오스크, 인터넷TV(IPTV) 등 새로운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디지털 기기와 서비스는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첨단 기술을 적용하다보니 선뜻 구매할만한 가격도 아닙니다.
과거엔 휴대폰이나 TV를 구입한 후 사용법을 한 번 익히면 문제 없었습니다. 최근엔 기기 내에 들어있는 소프트웨어(SW)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기 때문에 기능은 향상되지만 디지털 소외계층은 사용법을 다시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가격이 부담돼서, 때로는 귀찮아서, 때로는 어려워서 새롭게 등장하는 디지털 기기나 서비스를 활용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간의 '불편함'만 참으면 되기 때문이었죠.
이제는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시대가 되다보니 디지털 발전으로 인한 정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 경제적 격차로 이어지게 됩니다.
낮은 디지털 활용은 낮은 혜택으로
스마트폰과 TV가 집에 없고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던 한 빈곤층 가정은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소식을 뒤늦게 전달받았습니다. 긴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지급받지 못해 결국 고금리 사채를 쓰게 됐죠. 또 인터넷으로 마스크를 구매하지 못하는 고령층들은 일회용 마스크를 며칠씩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가입하면 더 많은 금리를 주는 금융 상품들을 스마트폰이 없거나 앱 사용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기술의 발전은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더 편리하고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지만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더 불리한 사회가 됩니다.
통상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더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더 젊은 층이 기술을 더 잘 활용합니다. 디지털 정보를 통해 생산되는 부가가치는 다시 이들에게 몰리게 됩니다. 지원과 혜택이 더 많이 필요한 빈곤층이나 고령층, 장애인 등 사회 소외계층은 디지털 기술과 정보 활용도가 낮아 혜택에서 소외되죠.
편리해지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 일부에겐 편리하지만 일부에겐 더 불리해지게 되는 셈이죠.
실제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4대 취약계층(장애인, 저소득층, 고령층, 농어민) 중 고령층(50대 이상)의 디지털 접근성 및 활용도가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 발전한 기술에게 희망이
그럼에도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있습니다. 계속 발전하는 기술은 디지털로부터 소외됐던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SK텔레콤의 AI 스피커는 어른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디지털 기기에 거부감을 가졌던 노인들에게 그들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안겨줬습니다.
'인공지능 돌봄 서비스'를 운영 중인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지 못했던 고령층도 검색을 하고 용어를 배우면서 나도 첨단 기기를 사용할 줄 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서 "스마트폰은 정보가 너무 많고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찾아가야 해서 어렵게 느껴지는데 AI 스피커는 사용자가 필요한 걸 스피커에게 말로 물어보면 되기 때문에 스마트폰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엔씨문화재단은 언어 표현과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보완대체의사소통 앱인 '나의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를 개발했습니다. 구어를 통해 의사소통 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상징이나 문자로 말하기와 이야기 만들기 등의 기능이 있습니다. 기술을 통해 '말'이 아니더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한 것이죠.
SK텔레콤이 출시한 창덕궁 증강현실(AR) 가이드 앱인 '창덕 아리랑(ARirang)'은 장애인이나 어린 아이,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창덕궁 내에 계단이나 턱이 없는 길을 안내해줍니다.
기술이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한 발전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발전한 사례들입니다.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는 아직 먼 길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기술로 인해 디지털이 완전하게 따뜻해진 건 아닙니다.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가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또 기술 발전만으로 포용의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이 따뜻하게 될 수 있었던 중심에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구' 였습니다. 고령층이 SK텔레콤의 AI 스피커를 잘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노인들이 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어려워하는지 가까이서 연구하고 케어매니저가 1대1로 맞춤 지원을 한 덕분입니다.
엔씨문화재단이 AAC 앱을 만들기 위해 언어 표현을 상징적인 그림으로 만든 것에만 그친 건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장애인이 필요한 표현들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많이 사용하는지, 환경 등도 고려한 연구가 필요하죠. 엔씨문화재단은 우리나라에는 AAC에 대한 개념이 생소한 2012년부터 연구 개발을 해 2014년에 무료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디지털 포용을 위해서는 기술 개발이나 기기 지원 등의 환경 조성만으로는 안된다"면서 "연령대에 맞는, 환경에 맞는 필요한 부분을 지원해주는 것이 디지털 디바이드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며 사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포용하기 위해 기술은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디지털 포용의 길은 멉니다. 황종성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위원은 "기술을 통해 디지털 디바이드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면서 "여전히 디지털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해야 한다는 방식의 접근으로는 디지털 정보 격차는 해소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