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추진할 땐 목표를 확실히 세워야 돼요. 가령 대한민국에서 1등 아파트 단지를 만들겠다거나 입주 시점을 확 앞당기겠다는 목표요. 조합장은 입주와 재산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요."
신반포1차 재건축은 '한강변 최고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추진했다. 목표를 설정한 뒤엔 수시로 설명회를 열어 조합원에게 비전을 설명하고 인허가기관과 협의했다. 난관이 생기면 삭발 투쟁을 벌이는 등 과감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추진한 재건축은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 아크로리버파크(2016년 8월 입주)로 재탄생했다.
요새 그 누구보다 바쁘다는 한형기 신반포1차 조합장(조합 해산 안된 상태. 조합장 지위 유지)의 얘기다.
최근 부동산 규제, 시공사의 수주경쟁 과열 등으로 조합장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정부의 겹겹이 규제로 재건축 사업 진행에 난관이 많아지면서 한형기 조합장과 같은 성공한 경험이 있는 조합장에 대한 러브콜(?)도 쏟아지는 듯하다.
한 조합장은 "정부와 서울시의 부동산정책이 점점 강화되면서 정상적으로 (정비) 사업을 진행하는 조합이 얼마 없다"며 "이 밖에도 시공사가 조합과 계약 체결 후 '슈퍼 갑'으로 돌변했거나 조합 내 세력이 난립해서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경우 설명회나 특강을 요청해 온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을 비롯해 경기도, 재건축‧재개발을 넘어서 리모델링 조합에서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통에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목동신시가지, 성산시영, 과천6단지 등 그동안 그가 다녀온 설명회나 특강만 50회가 넘는다.
신반포1차 조합 사무실에서 그를 직접 만나 조합장으로서의 고충 등 조합장의 세계와 재건축 뒷얘기들을 들어봤다.
-최근 조합 설명회 요청을 많이 받고 있는데
▲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분양가상한제 등의 규제로 정비사업 추진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자문을 구하는 곳이 많아졌다. 설명회만 세 번 진행한 곳(과천6단지)도 있고 조합이 재건축 붐을 조성해달라고 해서 재건축 추진 이유를 설명해주러 간 곳(여의도 삼부)도 있다.
설명회는 무조건 조합원 절반 이상이 참석할 때만 하는데 설명회가 끝나고 나면 사업이 급물살을 타는 곳도 있다. 최근엔 경기도나 리모델링 조합에서도 연락이 많이 온다. 워낙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급한 단지 위주로만 수락하고 있다. 설명회를 갈 땐 해당 조합에 대해 공부하고 문제점을 파악한 뒤 PPT 자료를 만들기까지 열흘 이상 홀로 준비한다.
-조합장은 언제 처음 하게 됐나
▲ 삼성물산, 대우건설, 건설사업관리회사(CM) 등에서 25년여간 근무하면서 부동산 투자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1994년에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했다가 데인 적이 있다. 당시 1년 동안 고군분투하면서 처음으로 조합장까지 맡았다. 조합장 하는 한 달 동안 사업 추진을 완전히 정상화해서 입주시켰다. 회사에 다녀야 해서 조합장은 짧게 경험했지만 그때 조합 아파트 인허가 절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파악했다.
1998년엔 한남대교 인근에 재건축 아파트를 두 채 사면서 조합 임원으로서 시공사 변경 등을 진두지휘했다. 2006년엔 아내와 자녀가 있는 영국으로 가서 5년 정도 있을 생각이라 (당장 입주하지 않아도 되는) 재건축 아파트인 신반포1차를 매입했다. 신반포1차가 재초환 첫 적용단지가 될 위기에 처하면서 조합원들이 도움을 청해왔고 결국 귀국해서 조합장까지 하게 됐다.
-신반포1차를 추진하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
▲ 신반포1차는 관리처분인가가 반려되면서 당시 처음으로 시행됐던 재초환을 적용받게 됐다. 조합이 관리처분인가 반려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에서 모두 패소하면서 34평형 기준 10억원 정도의 재초환 부담금을 내야 될 상황이었다. 현직 판‧검사를 지내던 조합원들도 1‧2심 결과가 대법원에서 바뀔 확률이 2%도 안 된다고 봤다. 이 얘기를 영국에서 전해 들었는데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귀국했다.
인가를 내주지 말라고 주장하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설득하고 법원과 서초구청 등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2010년 4월 기적적으로 파기환송을 받으면서 같은 해 8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재초환이 면제됐다.
서울시와의 갈등도 있었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기부채납 25%를 요구했는데 조합원들이 반대하며 2년 동안 인허가가 안났다. 그 과정에서 조합장이 해임됐고 새로운 조합장 입후보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자 등 떠밀려서 우연찮게 조합장을 하게 됐다. 결국 오세훈 시장과 합의해서 설계안을 만들어놨는데 갑자기 시장이 바뀌면서 또 문제가 생겼다. 박원순 시장은 기존 62층을 35층 이하로 요구했다. 2013년 3월에 대규모 집회를 열고 삭발, 1인 단식 농성 등을 벌여 마침내는 38층으로 상향하고 층고를 30cm 더 높여 짓게 됐다. 그렇게 1994년부터 18년간 표류하던 사업을 도시계획심의부터 입주까지 4년8개월 만에 완료했다.
-조합원과의 신뢰가 중요해 보인다
▲ 조합장은 조합원과 소통을 잘해서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사업의 목표를 세운 다음 조합원들에게 우리 조합이 시급한 게 무엇인지 알리고 빠른 입주, 재산권 보장 두 가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각종 인허가 진행 스케줄 3년 반~4년치를 조합원들 우편으로 보내 구체적으로 보고했다. 만약 계획보다 2개월 이상 일정에 차이가 생기면 조합원에게 따지라고 했다. 또 공사 진행에 따른 이익, 손해 내역도 3개월 단위로 고지했다.
-요새 재건축 사업을 차지하기 위한 시공사들의 수주 경쟁이 심한데
▲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해 건설사가 말라죽게 생겼다. 건설사들의 수주 물량이 2003년에 100%라면 2023년엔 10%로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건설사 입장에선 일단 수주할 수밖에 없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위반 등으로 걸려도 정부에서 아웃(시공사 선정 취소 등)시키지 않는 점도 문제다. 검찰 수사가 유야무야 되는 경우도 많다. 조합도 시공사들을 부추길 게 아니라 설계 입찰할 때 특화 설계 등 과도한 제안을 하지 못하도록 의지 표명을 확실히 해야 한다. 그게 조합의 책임이자 역할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
▲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미 재초환 하나로 강남 정비 사업들이 사실상 중단됐다. 분양가상한제도 마찬가지다. 정비사업 단지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앞으로 계획은
▲ 정비사업 토탈 컨설팅 회사를 낼 계획이다. 조합이 컨설팅을 주면 적정한 보수를 받고 조합을 관리하는 사업이다. 최근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정비사업 단지 중 연봉 10억원 이상의 조합장 영입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조합장으로 가서 작품을 만들어볼까 하는 욕심도 있지만 사실 두 번 다시 조합장은 하고 싶지 않다.
조합들이 정부와 서울시의 부동산 규제로 힘들어지면서 누군가의 전문적인 컨설팅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 CM이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메이저 설계사 소속이라 아쉬운 부분이 있다. CM보다 더 광범위하게 조합 업무를 관리해서 조합장은 열중쉬어 하고 있어도 될 정도의 사업을 구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