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만의 주거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전세'인데요. 기원을 찾으려면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랫동안 우리의 주거 문화로 자리 잡은 제도입니다.
전세는 갈수록 외면받고 있습니다. 수년 전부터 월세를 선호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는데요. 최근에는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최근 월세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죠. 매매가와 전셋값은 내려가는데 월세로 수요가 쏠린 영향으로 풀이되는데요. 그런데도 월세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는 이유는 뭘까요.
금리 인상에 부담 커진 전세…월세 전환 가속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의 월세 거래량은 107만 3094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월세 거래량이 연간 100만 건을 돌파한 것은 통계가 처음 기록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처음인데요. 9개월 만에 벌써 기록을 달성한 겁니다.
같은 기간 전세 거래량의 경우 101만 1473건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월세 거래보다 적은 규모입니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올해 처음으로 월세 거래량이 전세 거래량을 넘어서게 됩니다.
최근 월세 수요가 많아지는 것은 금리 인상이 주된 이유로 꼽힙니다. 올해 들어 전 세계적으로 가파른 금리 인상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한국은행 역시 지난 12일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으며 기준금리가 연 3%가 됐습니다.
3%대 기준금리는 2012년 10월 이후 10년 만에 처음입니다.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 연속 인상한 것도 한국은행 역사상 최초라고 하는데요. 더욱이 한국은행은 당분간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처럼 금리가 지속해 오르니 대출을 받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 수년간 매매가를 따라 전셋값도 크게 오른 만큼 대출을 끼고 계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요.
그러다 보니 전세를 선택하기가 더욱 꺼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에 전세를 살던 이들은 금리 부담에 월세로 전환하기도 하고요.
전세, 금리 부담에 전세 사기까지…매력도 떨어져
그런데 최근에는 월세 가격 역시 지속해 오르고 있습니다. 반면 전세는 매매가격을 따라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고요.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지수는 올해 1월 104.5에서 8월에는 103.6으로 하락했습니다. 반면 월세의 경우 같은 기간 102.5에서 104로 올랐고요. 결국 올해 들어서는 전세금 부담은 줄고 월세 부담은 늘었다는 건데요.
그런데도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빨라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월세의 경우 전세대출 금리에 비해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금리는 경기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세자금 대출 중 변동금리는 93%를 넘어서는데요. 그만큼 금리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월세의 경우 계약에 따라 금액이 정해져 있으니 충분히 예측 가능하고요.
집값이 떨어지면서 이른바 깡통전세와 전세 사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점도 이런 흐름에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혹여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리스크를 감당하기보다는 월세를 내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아울러 최근에는 주식 등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도 다양화하고 있는데요. 목돈을 집주인에게 맡겨놓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투자해 자산을 늘리려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최근에는 예금금리가 오르면서 높아진 월세 부담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기도 하고요.
전세가 더 이상 내 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전세 계약을 할 때 세입자가 전세금을 전부 마련해 맡기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최근에는 전세대출이 활성화하다 보니 정작 본인 돈은 많지 않은 경우가 흔합니다. 전세조차 은행이 내준(?) 돈으로 살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전세와 월세는 주거 비용을 어디에 내느냐만 다른 모양새가 됐습니다. 전세는 은행에 다달이 돈을 내는 거고, 월세는 집주인에 다달이 돈을 내는 거겠죠. 이러다 보니 전세의 매력은 앞으로도 갈수록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의 경우 아무리 보증 제도가 있다고 해도 결국은 사금융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특히 전세 대출이 활성화하면서 과거처럼 내 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기능도 약화한 만큼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