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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人워치] 강력계 형사서 이마트 보안관으로

  • 2016.10.27(목) 09:56

주차장 범죄 막는 파수꾼, 박광기 보안관
"33년 경찰생활에서 익힌 노하우가 큰힘"

지난 24일 오후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차된 차량을 살펴보던 박광기(62) 씨가 5층 주차장 구석에 있는 남녀 화장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10초 가량 서있었을까. 박 씨가 다시 발길을 옮겼다.

-왜 서있던 겁니까?
"소리를 들은 거죠. 다른 층은 여자화장실만 있는데 거기는 남녀 화장실이 붙어 있어요. 사람들이 뜸할 땐 아무래도 범죄에 취약한 곳이 될 수 있죠. '도와달라',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지 잠시 듣는 겁니다."

 

박 씨는 치안의 사각지대로 꼽히는 주차장 내 범죄예방을 위해 이마트가 배치한 주차장 보안관이다. 이마트는 아파트나 마트, 백화점 주차장에서 여성을 상대로 강력범죄가 잇따르자 경찰청과 협약을 맺고 지난 6월부터 전국 125개 점포에 주차장 안전관리를 전담하는 순찰인력을 배치했다. 보안관 대부분은 퇴직 경찰관 중에서 뽑았다.


▲ 이마트 구로점 주차장을 순찰 중인 박광기 씨. 그는 33년간 숱한 강력사건을 다룬 경찰 출신이다. /이명근 기자 qwe123@


박 씨도 2014년말 경감으로 정년퇴직하기까지 33년간 경찰에 몸담았다. 현직에 있을 땐 강력계와 형사계, 실종수사팀 등에 근무하며 주로 강력사건을 다뤘다. 그는 2004년부터 2년여간 여성과 어린이 등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범 정남규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정남규는) 사이코패스였습니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을 때 보니 범죄소설과 범죄영화 등 웬만한 범죄물은 다 섭렵했더군요. 피해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얼마나 한이 됐겠습니까."

박 씨는 경찰 재직시 다룬 사건에 대해 더이상의 얘기를 꺼렸다. 그는 "경찰로 있을 땐 대문 밖 방범을 책임졌다면 이제는 대문 안 범죄예방이 내게 맡겨진 일"이라며 "보안관으로서 현재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구로·금천·양천·동작 등 주로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경찰 생활을 했던 박 씨는 지금은 이마트 구로점에서 지상 3층부터 8층까지 차량 570여대가 주차하는 공간을 자신의 관할구역으로 삼고 있다. 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시간마다 6개층을 순찰한다.

 

▲ 박광기 씨는 주차된 차들의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등을 주의 깊게 살폈다. /이명근 기자 qwe123@


-다 돌아보면 걷는 거리가 꽤 될 것 같습니다.
"주차장 내에는 제가 사인해야할 순찰표가 13개 있어요. 왔다갔다하면 하루에 대략 1만5000보를 걷습니다. 제 보폭이 70㎝니까 10㎞ 조금 넘는 거리를 순찰한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빠른 걸음 속에서 박 씨의 눈이 승용차 사이사이를 훑었다.

-무엇을 그렇게 보십니까?
"차량 문이나 트렁크가 열려있는지를 주로 봐요. 또 요즘 차들은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백미러가 접힙니다. 만약 백미러가 접혀있지 않다면? 절도범들은 그걸 보고 '저 차 문이 열려있구나'라고 여겨 범행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런 걸 일일이 체크하는 거죠. 방금 주차한 차량에서 '삐빅'하며 차량 문닫는 소리가 안들리면 '문닫고 가세요'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주차장 보안관이 실제 범죄예방 효과가 있습니까?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범죄가 일어났는데 방치하면 또다른 범죄가 생긴다는 건데요. 한번 깨진 유리창을 놔두면 더 깨지는 것처럼 말이죠. 주차장 범죄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런 범죄를 막으려면 저같은 보안관이 있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 박광기 씨는 매시간 3층부터 8층까지 주차장 곳곳을 순찰한다. 그가 하루에 걷는 거리는 10㎞가 넘는다고 했다. /이명근 기자 qwe123@

 

박 씨는 빨간불이 들어오는 30㎝ 크기의 경광봉을 손에 쥐고 순찰을 돌았다. 내가 여기 있으니 혹시 범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포기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허리에는 호신용 3단봉을 찼다.

"이 봉이 겉보기에는 그냥 봉 같지만 손잡이 끝에 쇠로 된 돌기가 있어요. 차안에 사람이 갇혔다면 응급상황에서 이 돌기로 차유리를 깨고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 말과 함께 그는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 크기의 '도루코칼'을 꺼냈다.

"이건 안전벨트를 자르기 위한 용도로 제가 만든 건데요. 그렇게는 안써봤고, 박스에 붙일 테이프가 잘 안끊어질 때 고객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그 때 쓰게 되더라고요.(웃음)"

박 씨가 지닌 장비 중에는 100원짜리 동전도 있었다. 그는 작은 비닐봉지 안에 동전 3개를 담아놓았다.

-동전은 왜 갖고 다니십니까?
"아이를 데리고 혼자 마트에 오는 주부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카트 반납할 때 어떻게들 하죠? 아이 혼자 차에 놔두고 반납장소로 카트 끌고 가는 주부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 때 주부는 물론 혼자 떨어진 아이도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손님에게는 제가 100원을 드립니다. '카트는 제가 반납할테니 아이와 함께 계시라'는 의미로요. 서비스라면 서비스고, 범죄예방이라면 범죄예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주차장 보안관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박광기 씨. 최근엔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이명근 기자 qwe123@


박 씨가 이마트 구로점으로 출근한 뒤 그의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마트 매장음악을 흥얼거리고, 신문에서 이마트 기사라도 나오면 저절로 관심이 간다고 했다. 그는 "몽골 이마트에서 우리의 노란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비결을 아느냐"며 이마트 카트의 장점을 신나게 설명하기도 했다.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던 제게 좋은 기회가 된 거죠. 경찰생활을 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다시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박 씨는 얼마전부터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쇼핑하러 여기까지 온다"며 "화장실 위치 정도는 내가 직접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 기초적인 회화를 익히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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