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장배추가 급등한 요즘, 곽대환 이마트 채소바이어는 1000원대 배추를 내놓았다. /그래픽: 김용민 기자 kym5380@ |
"배추 한통에 1680원이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도 이 가격에 판매하는 건 김장철 대표품목으로서 상징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이마트는 가장 저렴하다'는 각인 효과를 주는 것이죠."
지난 21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만난 곽대환(42) 채소바이어는 '배추 마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거짓말처럼 들릴 수 있다는 걸 안다"며 웃었다.
이마트는 김장철을 맞아 지난 17일부터 일주일간 김장배추 한묶음(3포기)을 5040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가락시장 도매가(21일 기준, 1만925원)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 가격에 배추를 내놓은 것이다.
포기당 1680원은 제휴카드 할인을 적용할 때의 가격이다. 카드할인이 없더라도 이마트의 배춧값(정상가격 포기당 2100원)은 홈플러스나 롯데마트와 비교해 포기당 300원 가량 저렴하다.
이마트가 저렴한 배추를 내놓은 건 사전 계약재배 덕분이다. 김장배추는 8월초 재배농가와 계약을 맺어 판매하는데 이 때 김장철 배춧값이 얼마나 될지 예측이 필요하다. 배춧값이 뛸 것 같으면 값이 오르기 전 미리 배추를 확보하는게 좋다.
반대로 배춧값이 떨어질 것 같으면 계약재배 물량을 줄이는 게 유리하다. 미리 웃돈을 주며 사놨는데 나중에 배춧값이 형편없이 떨어지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정은 온전히 바이어의 몫이다. 13년간 배추와 무 등 채소만 다뤄온 곽 바이어에게 올해는 베팅을 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는 "바이어 생활을 하면서 대략 70%는 맞힌 것 같다"며 "나머지 30%를 줄이는 게 내게 맡겨진 과제"라고 말했다.
채소바이어 개인의 역할뿐 아니라 회사가 얼마나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이마트는 경기도 이천에 농산물 장기보관이 가능한 '후레쉬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배춧값이 떨어지면 이곳에 저장해 나중에 팔면되기 때문에 농산물 시세변동에 따른 위험 부담이 덜하다. 이마트가 후레쉬센터 건설에 투자한 돈은 1000억원에 달한다. 저렴한 배춧값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 투자가 있었다.
현재 이마트는 김장배추를 '품절제로' 품목으로 정해놓고 있다. 행사기간 중 배추를 사러 왔는데 없으면 열흘 이내 동일한 가격으로 배추를 공급키로 약속한 것이다.
만약 이마트가 확보한 물량마저 소진됐다면 도매시장에서 배추를 사 소비자에게 미리 약속한 가격에 판매한다. 이마트 입장에선 한통에 3000원이 넘는 배추를 도매시장에서 산 뒤 매장에서 1000원대에 파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곽 바이어는 "그래서 준비한 물량만큼 팔리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올해 준비한 김장배추는 60만포기. 넉넉한 물량을 확보해 품절사태까지 벌어지진 않았다. 여기에는 절임배추나 포장김치로 김치에 대한 수요가 이동한 영향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곽 바이어는 "가격경쟁력은 충분한데도 배추 원물 대신 절임배추나 포장김치를 찾는 고객이 생각보다 많다"며 "편의성을 중시하는 추세가 점점 강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배추 자체도 예전엔 일반 배추가 많이 팔렸지만 지금은 기능성 배추가 30% 가까이 팔린다"며 "식생활과 소비패턴이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이마트는 최근 베타카로틴 성분이 일반 배추보다 140배 많이 함유된 '베타후레쉬' 배추를 내놨다. 김장배추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개발한 것이라고 회사측은 설명했다.